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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28. 2020

아내의 고장난 시계

-돌아선 그대 등 뒤로 저녁노을 쏟아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조~기 바닷가 언덕 조기까지만..?

안 돼.. 안 돼요 안돼요돼요돼요..!




작가노트


서기 2020년 4월 26일 오후 5시경 아내와 나의 전혀 불필요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이 같은 신경전이 벌어진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지금은 비루스(COVID-19) 시대, 이탈리아는 물론 지구별이 통째로 비루스 감염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최초 중국 우한으로부터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신종 비루스는 이후 서해를 넘어 한국에 상륙하면서부터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 본 한국은 우왕좌왕 난리법석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런 동양인이 후진국의 참모습인 것처럼 여기고 있었다라고나 할까. 전염병이 옮겨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마당에 선후진국 따질 겨를도 없었다. 그 가운데 아내는 이탈리아에서 일시적으로 한국으로 귀국해 있었다. 한국의 비루스 사태는 주로 언론과 아내로부터 전해 듣고 있었다. 


매일 아침 산책을 나가면 통화 중에 비루스 사태가 빠질 날이 없을 정도로, 한국의 비루스 사태는 그야말로 6.26 때 난리는 난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당시 아내는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으므로 빠르게 마무리한 후 이탈리아행 비행기를 언제쯤 탈 것인가 등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중국과 한국의 비루스 사태가 악화되면서 여행사의 예매 취소와 환불이 이어졌다. 


아내는 주춤거렸다. 이탈리아행 티켓을 끊어야 하나 마나 시름이 깊어가던 중 딸내미가 "엄마, 빨리 이탈리아로 넘어가"라며 결정을 거들었다. 이때부터 아내는 바빠졌다. 평소 거래하던 여행사에 연락을 취해 비행기표를 알아보는 한편, 인천공항발 2월 23일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하는 비행기표를 구하게 됐다. 


그동안 우리는 대략 7개월 동안 홀아비와 과부의 등 시린 밤을 보내고 있었다. 생각보다 길어진 아내의 한국 일정 때문에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는 속담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침 산책 때 아내의 이탈리아행 결정을 전해 들으며 행복해했다. 세월은 빠르게 흘렀다. 


보름 남짓 기다림의 시간은 더딘 듯 얼마나 빠른지.. 나는 어느덧 로마로 향하는 급행열차 속에서 아내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한 나는 당일치기로 바를레타로 돌아오기 위해 기차 시간표를 사전에 알아보는 등 공항에서 가장 빠른 동선을 찾아내기도 했다. 아내가 출국장에 모습을 나타나면 그 즉시, 아내를 신줏단지 모시듯 VIP 모시듯 자~알 모시고 마지막 기차에 올라야 했다. 


공교롭게도 바를레타행 기차 시간은 아내가 도착하는 시간과 거의 같은 시간이었다. 서둘러야 했다. 지난 2월 23일 오후 5시 30분경.. 이때만 해도 천년고도 로마는 비루스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출국장을 나서는 아내를 발견한 즉시 "여보~"하며 큰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아내는 나의 목소리를 듣고 반가워하며 큼직한 짐가방이 든 손수레를 멈추고 돌아봤다. 


반가운 마음을 담은 짧은 포옹과 함께 입국장을 나서면서 나는 아내더러 "마스크 벗어도 돼"라고 말했다. 아내는 그 즉시 사방을 둘러보더니 마스크를 벗었다. 입국장 주변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탈리아는 천년고도의 모습을 지닌 아름다운 나라일 뿐만 아니라 비루스 조차 넘보지 못하는 나라였을까.. 


한국에서 비루스 난리를 겪은 아내는 그제야 한 숨을 쉬며 탈출에 성공한 기쁨을 맛보았다. 그리고 바를레타행 기차에 오른 후 한국에서 공수해온 식재료 자랑에 침이 마르지 않았다. 그 모두가 홀아비 사정을 간파한 과부의 배려가 아니었던가..(흐미 기분 좋은 거..^^) 


큰 가방 세 개에 나뉘어서 가져온 토종 식품들은 인천공항에서 벌금까지 문 것(오버챠지)으로, 양도 양이지만 벌금도 만만치 않았다. 아내는 긴장이 풀렸던지 기차에 오르자마자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곧 급행열차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 역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그동안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살아갈 밑그림을 그려놓고 채색 준비를 하는 등 준비과정에 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돌아오면 곧 후반전 휘슬이 불 것이고, 우리는 바빠질 것이며 뷰파인더는 새로운 세상을 매 순간 넘보며 찰칵찰칵 귀여운 소음을 낼 것이었다. 바를레타 역에 도착하자마자 "야호~" 하고 속으로 외쳤다. 곧 우리의 시대가 열릴 예정이었다. 열려야 한다. 열려야 마땅했다. 당근..!! 그런데 희한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누가 지구별의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일까.. 아내가 이탈리아로 다시 귀국한 이후 우리는 꿈같은 날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 습관에 따라 내가 개척해 둔 바닷가 산책로를 따라 매일 데이트를 했다. 거의 매일 뒷산으로 운동을 다녔던 아내 앞에 나타난 아드리아해의 풍경은 아내에게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근사한 무대를 제공하고 있었다. 아내는 "너무 예쁘다"며 바닷가 산책로에서 느낀 감흥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탈리아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가 속을 드러내 보였다. 이런 된장..!! 3월 초순경 이탈리아는 올림픽 선수가 메달을 향해 온 몸을 불태우는 것처럼 비루스 사태 순위를 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이 초반 2위에 머물렀다면 단박에 전세는 역전되어 3위로 밀리는가 싶더니 이탈리아가 불명예스러운 선두로 나선 것이다. 이때부터 아내의 고민은 깊어졌고 나 또한 무슨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그동안 한국은 메달권(?) 바깥으로 밀려나며 비루스를 잠재우고 있었던 것이다. 속 타는 아내의 모습이 긴장과 후회로 섞인 표정으로 변했고 급기야 공포로 다가온 것이다. 속히 대책 마련에 나서야 했으므로 주이탈리아 대사관과 이탈리아 한인 홈피에 들러 한국행 비행기가 언제쯤 출발하는지 등에 대해 문의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세계의 하늘길이 차단되는 한편 각국은 자국의 하늘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그런데 탈출을 위한 마지막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탈리아 교민들을 위한 특별기 수요를 조사하고 정부에서 특별 전세기를 띄운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동안 한국은 비루스 메달 순위에서 10위권 바깥으로 벗어나는 놀라운 약진을 거듭하고 있었던 것이다. 


1위에 오르면 오를수록 불명예스러운 희한하고 이상한 경기(?)에서 한국은 하루가 다르게 추락을 거듭하며 국민들을 기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잘난 척하던 G7은 물론 유럽의 대표선수들이 선전을 거듭하며 금은동메달 전부를 꽤 차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는 어느덧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고수하고 있었다. 미국과 스페인 프랑스 영국 독일 등도 이에 질세라 선두 탈환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참 이상한 풍경.. 


그 가운데 아내는 (나를 떼어놓고ㅜ)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되돌려 보내야 했으므로 특별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아내는 한 달여만에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갈 형편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운명은 아내 편이 아니었다. 특별기 편 수요를 조사가 끝날 때쯤 바를레타 역으로 나갈 일이 생겼다. 이탈리아가 하늘문을 걸어 잠그고 국내에 비상사태를 선언했기 때문에 전국의 교통편이 모두 두절된 상태였던 것이다. 


매표소 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로마로 가는 차편은 봉쇄되어 있었다. 누가 그딴 말을 했던가.. "모든 길을 로마로 통한다"라고 말이다. (웃기지 마..!!ㅜ) 아내는 급실망했다. 죽으나 사나.. 사나 죽으나 한 때 과부 홀아비 신세를 겪었던 인연을 다시 이어나가야 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그 넘의 비루스 사태 통계표를 들여다보며 이제나 저제나 비루스가 모두 사라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어느덧 두 달이 더 지난 것이다. 그때마다 아내는 절망에 빠져 어깨가 축 늘어지고 삶의 의욕을 잃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이런 세상이 이어질 수는 없는 법이지.. 지난주부터 이탈리아를 잔인한 4월에 묶어 두었던 비루스 사태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아내의 방콕 출감을 향한 욕망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맨 처음 집 앞에서 볕을 쬐는가 싶더니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거리를 늘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홀로 바닷가를 다녀오곤 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어쩌자고 그래..!"라며 말려도 그때뿐이었다. 그렇다고 계속 나무랄 수도 없는 법. 걱정이 된 나는 이때부터 동행을 핑계로 합세했다. 아예 바닷가 언덕길을 따라 시내를 한 바퀴 도는 것. 


슬슬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까이꺼.. 사회적 거리두기만 잘하면 될 게 아닌가" 하면서 그럴듯한 핑계까지 동원한 것이다. 그런 어느 날.. 그러니까 어제 오후 5시경 마침내 올 게 오고 말았다. 아내와 함께 바닷가 언덕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저녁노을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시각 정확히 우리 앞으로 경찰차 한 대가 멈추어 섰다. 


경찰차 여순경: (차창을 내리며) 아저씨 거기서 머하세욤?

나: 아.. 네.. 지금 막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요. (긁적긁적)

경찰차 여순경: (손가락을 좌우로 저으며) 반칙하시면 안 돼요. 알았죠?

나: 아.. 네.. 지금 집으로 돌아간다니까요. ^^


우리는 아드리아해 바닷가가 저만치 내려다 보이는 언덕길까지 진출하여 일몰을 감상하다가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원치 않은 일이 코 앞에 닥친 것이다. 이날 따라 시내에는 순찰차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거나 순찰이 강화됐다. 이탈리아 꼰떼 총리(Presidente Conte)가 담화를 통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기로 한 조치가 우리 앞에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날 아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조~기 바닷가 언덕까지만 갔다 올게


단속 차량이 자리를 뜨자마자 셔터를 몇 번 연속으로 눌렀다. 아내의 등 뒤로 황금빛 저녁노을이 쏟아져내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괜히 아내에게 미안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한국에 있으라 그럴 걸 그랬나..ㅜ  아내의 고장난 시계를 두 달 뒤로 돌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간절했다고..!! 끝!!!



* Coronavirus in Italia: 199,414(확진자+1,739) casi, 26,977(사망자+333) morti, 66,624(치료자(+1,696) i guariti -Il bollettino al 27 Aprile. (출처: www.worldometers.info

Coronavirus in Italia: 197,675(확진자+2,324) casi, 26,644(사망자+260) morti, 64,928(치료자(+1,808) i guariti -Il bollettino al 26 Aprile. (출처: www.worldometers.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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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Spiaggia della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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