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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18. 2020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무맛

-세상의 맛 중에 하나를 더한 맛 

우리는 맛의 세계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브런치를 여는 순간 한 할머니께서 무엇인가 다듬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할머니가 무를 다듬고 계신 곳은 서울 강남의 한 산기슭이다. 할머니는 이곳에 사시면서 당신이 직접 기른 무와 푸성귀를 내다 파는데 주요 고객은 등산객들이다. 시내 중심에 살고 있던 등산객들이 아침운동 겸 산책에 나서서, 집으로 귀가하는 동안 주로 야채를 구매해 가는 것이다. 할머니의 좌판을 차지하고 있는 야채들은 싱싱할 뿐만 아니라 유기농법을 사용해 기른 것으로 제철 야채가 주를 이룬다. 


그래서 혹한의 날씨 등 천재지변이 없는 한 등산객들은 하산길에 야채를 사들고 집으로 가는 것이다. 무가 좌판에 널린 풍경은 가을에 만난 것으로 무 이파리와 줄기가 싱싱해 입맛을 당긴다. 나는 싱싱한 무를 보는 순간 유년기를 단박에 떠올리는가 하면 무맛이 절로 생각나는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무맛 때문에 뷰파인더가 저절로 무로 향하게 되는 것. 그렇다면 무맛은 대체 어떤 맛일까.. 





유년기를 행복하게 만든 무 서리의 추억


무 사진을 찍은 날짜를 참고하면 무서리를 알게 된다. 무서리는 늦가을에 처음 내리는 묽은 서리를 말하는 것으로 24절기상 상강에 해당된다. 서리가 내린다는 뜻의 상강(霜降)은 24절기 중 하나이며, 양력으로는 10월 24일경에 해당된다. 그러니까 가을의 절기인 입추(立秋), 처서(處暑), 백로(白露), 추분(秋分), 한로(寒露)에 이어 마지막 절기인 것이다. 사진이 촬영된 시점이 10월 21일이었으므로 무서리가 내릴 시기에 만난 풍경인 것이다. 


이 시기 나의 유년기를 돌아보면 요즘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백주에 버젓이 행해지고 있었다. 이른 아침 혹은 해 질 녘에 친구들과 함께 무밭을 호시탐탐 노리며 무 서리 작당을 한 것이다. 과일 서리는 많이 들어봤어도 무 서리는 잘 들어보지 못하신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무서리무 서리는 서로 다른 말이다. 전자의 경우는 설명해 드린 바 상강 절기에 무밭에 내린 서리이며, 후자의 경우는 말이 좋아 서리이지 '도둑질'인 셈이다. 


그것도 그냥 도둑질이 아니라 사전에 계획된 도둑질이므로 발각이 되는 즉시 엄벌에 처해질 나쁜 짓이며 절도의 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나의 유년기 때만 해도 이런 정도의 서리는 용서받을 수 있었으며 널리 퍼진 유행병 같은 것이었다. 수박, 복숭아, 참외, 사과 등 과일들이 이런 유행병의 대상이 된 후, 세월이 흐르면서 나중에는 절도죄로 처벌받기에 이른 것이다. 



아무튼 유년기 시절 무 서리는 친구들과 작당을 한 것으로 무맛을 아는 녀석들이었다. 무밭에 가 보면 밭이랑이 사이로 삐져나온 무 윗부분이 새파란 색깔을 띠게 된다. 무가 자라면서 볕에 노출된 부분은 파랗게 변하는 것. 무맛을 아는 아이들의 도벽을 자극하는 색깔이자 무맛이 농축된 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 녀석이 무밭 근처로 지나치면서 고무신을 신은 발로 툭 차 쓰러뜨리면, 뒤따라가던 한 녀석이 냉큼 러닝 셔츠에 주워 담는 것이다. 


이렇게 포획된 무는 앞동산 위에서 시식(?)을 하게 되는데 이때만 해도 물에 씻어먹었던 게 아니라 금잔디에 쓱싹 닦아 이빨로 껍질을 벗긴 다음 한입 듬성 베무는 것이다. 이때 달짝지근한 무즙이 입안 가득 해지며 아싹아싹 무 삼매경에 빠져들게 되는 것. 


우리가 무맛과 함께 완전범죄에 심취해 있는 동안 정작 우리 범죄의 대가는 아버지께서 떠맡고 계셨다. 어디 무뿐이었겠는가..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진 이런 서리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그만한 대가를 늘 지불하고 계셨다. 농사를 지으시는 분은 아버지와 잘 아시는 분으로 우리의 범행이 끝나면 차근차근 메모에 두었다가 아버지께 고발(?)을 해 왔던 것이다. 




무의 영양 성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어쩌다 우리 집에서 만난 과수원지기 혹은 밭주인을 만났을 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 아버지와 그분은 씩 미소를 지으시는 것이다. 두 분 앞에는 막걸리 주전자가 놓여있었다. 우리가 훔친 무며 과일에 대한 값을 아버지께서 치르시고 계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나쁜 짓을 단 한차례도 나무라지 않으셨다. 속담에 '바늘 도둑 소 도둑'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아실 것이었지만, 당시의 이런 행태는 도둑으로 치부될만한 일이 아니었을까.. 


이때 맛 본 무맛은 사는 동안 무를 감별하는 표준이 되었다. 그 어떤 무든 맛을 보는 순간 단맛 대신 매운맛이 더 강하면 음식의 결과물까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음식은 영양 성분만으로 먹지 않는다. 주로 맛으로 먹는다. 맛없는 음식이 선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도 이 같은 경우의 수이다. 그렇지만 영양 성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영양가 없는 음식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에는 어떤 성분이 함유되어 있길래 무와 배추가 찰떡궁합을 이루며 한민족의 사랑을 받아왔던 것일까. 



무의 영양 성분 등 효능을 살펴보니 무에는 위산을 억제해 속 쓰림을 예방하고 위 통증과 위궤양을 예방하고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숙취 해소에도 도움이 되므로 애주가들은 꼭 알아두어야 할 보약 같은 것. 다만 무를 소화제 용도로 사용할 때는 소화효소가 파괴되지 않게 생식을 해야 한단다. 그런가 하면 무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3대 영양소) 모두를 소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한다. 


나의 브런치에 쓴 세상에 마약 막국수도 있다 편에 등장한 동치미는 그냥 등장한 게 아니라 글루텐이 함유된 밀가루 음식을 잘 소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한 것. 이 외에도 무는 감기 예방에 좋다고 하고 흡연은 물론 변비와 피부미용까지.. 그리고 항암작용까지 한다고 하므로 우리 선조님들이 꾸준히 섭취해온 배추와 무는 후손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 최고의 음식이 아닌가 싶다. 


그런가 하면 무는 조리방법과 먹는 방법에 따라 만병통치약처럼 작용하는 것. 어떤 명의는 무를 산삼에 견주기도 했다. 무에 소량의 산삼 성분이 깃든 것이다. 그래서 무는 입이 마르도록 예찬의 노래를 불러도 끝도 없이 우리 몸에 이로운 식재료가 틀림없다.  그렇다면 무맛은 정확히 꼭 집어서 '이런 맛이다'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무맛 


예로부터 전해진 음식들은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음식이다. 영양이나 맛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들이 주로 식탁을 차지해 온 것. 맛도 맛 나름이다. 우리가 아는 맛의 종류는 단맛짠맛매운맛신맛쓴맛에 감칠맛이 더해졌다. 맛이라 하면 주로 다섯 가지 맛을 들었지만 어느 때부터 감칠맛이 더해진 것이다. 감칠맛이란 식욕을 당기는 맛으로,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도록 돕는 맛을 말한다. 


그런 한편 1908년에 개발된 향미 증진제인 MSG(Monosodium Glutamate)는 강한 감칠맛이 난다고 하나, 별로 권장할만한 맛의 세계는 아닌 듯하다. 글루탐산은 유제품, 육류, 어류, 채소류 등과 같은 동. 식물성 단백질 함유 식품에 천연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나 굳이 자연에서 쉽게 취할 수 있는 식재료 대신 화학성분이 짙은 맛까지 사랑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아는 맛 가운데 서구의 사람들이나 요리 천국 이탈리아인들이 잘 모르는 맛을 정리하면서 글을 맺도록 한다. 



유년기에 내가 목격한 바에 따르면 어른들이 밥을 먹다가 혹은 술잔을 기울이며 한 마디씩 내뱉는 말에 호기심을 가졌다. 뜨끈한 국물 혹은 탕을 앞에 두고 맛을 보면서 "크.. 시원하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누가 이런 말을 이해하겠는가. 자칫 입안이 델 수도 있는 뜨거운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시원하다니.. 이게 말이나 될법한가. 


그러나 이 같은 표현은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단박에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무에는 움추린 온몸을 단박에 편안하게 만드는 시원한 맛이 깃들어있었던 것이다. 또 무를 넣고 끓인 음식에 고춧가루를 넣으면 얼큰한 맛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도 나중에 안 사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맛짠맛매운맛신맛쓴맛감칠맛 시원한 맛 얼큰한 맛 끼어들게 된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비스러운 무맛이 탄생한 것이며, 우리 선조님들이 애용해온 무김치는 배추김치에 이어 일약 최고의 식품으로 거듭나고 있었던 것. 


생으로 먹어도 좋고 발효시켜 먹으면 더 좋은 식재료.. 여기에 자연산 식재료 한 두 가지만 곁들이면 굳이 감칠맛을 따로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된다. 지난 2월 23일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귀국한 아내는 짐보따리 가득 우리 선조님들이 드시던 식재료를 공수해 왔다. 그 속에는 멸치, 다시마, 김 그리고 몇 가지 젓갈이 포함돼 있었다. 요리천국 이탈리아에서 한국인의 입맛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자, 최고의 맛 때문이란 걸 따로 설명해야 할까.. 무는 무한 확장 가능한 맛의 세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식재료임에 틀림없다. 끝




*아래는 참고로 페이스북 친구들을 위해 실어둔 결론부 번역본이다.

È buono da mangiare cruda, fermentalo e mangiarlo meglio. Se si aggiungono solo un paio di ingredienti naturali, non è necessario cercare il sapore del cibo solido. Mia moglie, che è tornata in Italia dalla Corea il 23 febbraio scorso, ha portato in aria il materiale alimentare che i nostri antenati avevano mangiato. Tra questi c'erano acciughe, alghe, Saccharina e un paio di Jeotgal(젓갈). Devo spiegare separatamente che è uno sforzo per preservare il gusto coreano in Italia e il gusto migliore. Il ragno deve essere un materiale commestibile che crea un olio dal nulla, un mondo infinitamente espandibile di sapori.


il gusto di uno dei sapori del mondo
il 18 Maggi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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