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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n 04. 2020

아내의 소묘

#2 아내의 도전

세 번째 수업에서 완성된 소묘 한 점..!!



서기 2020년 6월 3일 오전 10시 30분경, 아내에게 그림 수업을 지도한 아티스트 루이지 라노떼(이하 '루이지'라 부른다)와 우리는 하이 파이브를 하며 아이들처럼 기뻐했다. 그림 수업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소묘 한 점이 완성된 것이다. 결과물을 놓고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과정은 치열했다. 일주일에 두 번, 한차례에 3시간의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한 눈 팔 시간적 여유 조차 없었다. 빠르게 진행되는 동시통역을 따라 아내의 오감은 백지장 위에 집중되어야 했다. 첫 수업의 풍경은 이렇게 썼다.


지금까지 보고 느끼며 배우며 감상했던 순수미술의 세계는 머릿속에서 하얗게 지워야 했다. 당신의 삶을 야금야금 좀 먹으며 허영으로 채워진 예술세계에 새로운 영감과 기운을 불어넣어야 했다. 나는 그 과정을 함께 헸다. 동시통역으로 빠르게 진행된 수업은 3시간이었지만, 마치 3년의 세월을 보낸 듯 찰나의 순간이 백지 위에 하나의 점으로, 선으로, 면으로, 공간으로 확대되어 갔다. 우리나라에서 결코 만날 수 없었던 기초 과정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첫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는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새처럼 날아다닐 듯한 표정으로 아이들처럼 기뻐했다. 나도 덩달아 기분 좋아진 거 있지..! ^^



그림을 전공한 미술학도들에게 이런 과정은 따로 설명할 필요 조차 없을 것이다. 이미 입시 준비과정에서 입학에 필요한 소묘를 열심히 그렸을 것이며, 그런 바탕 위에 당신의 예술세계를 펼쳐나갔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불세출의 예술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도 다르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10살이 되던 해 피렌체의 프란체스코 우르비노 학교에 입학했지만 공부보다 그림에 빠져들었다. 당시만 해도 예술가의 길은 가문의 수치로 여겼을 정도로 예술가의 삶은 가시밭길이었다. 그런 그가 처음 시도한 일은 지옷또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나 마사초(Masaccio)의 그림을 모방하여 스케치하는 것. 공부를 잘하여 공무원이 되길 바랐던 그의 아버지의 뜻은 점점 더 멀어져 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는 13살이 되던 해에 피렌체의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Domenico Ghirlandaio)에게 도제 수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기를란다이오는 당시 부유한 피렌체 시민계급의 생활을 명쾌하고도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화가였다. 그의 화실에서 미켈란젤로는 화가로서 갖추어야 할 일반적인 교양과 기법을 쌓았다고 전한다. 이때부터 미켈란젤로는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며 당대에 일반적이던 세련된 미술을 거부하고 기념비적이고 강한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아내의 그림 선생님 루이지의 화실로 가는 아내의 발걸음이 가볍다.


그리고 1489년부터 피렌체의 조각 학교에서 베르똘도 디 지오반니(Bertoldo di Giovanni)에게 조각을 배웠다고 전한다. 그는 7년 후인 1496년에 그 유명한 삐에따(Pietà vaticana) 상을 제작하고,  1504년에는 다비드(David di Michelangelo) 상을 완성한 이래 수많은 걸작품을 남기며 죽을 때까지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당신의 생애는 오직 당신의 삶을 노래한 영웅이라고나 할까.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의 시간은 결코 길지 않으며 또 짧지도 않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일 하나 배우려면 평생 해도 모자란다(Vita brevis, ars longa, occasio praeceps,..)"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당신의 어록을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며 오역을 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미켈란젤로의 삶을 돌아보면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이 귀에 솔깃해질 것 같다. 



오늘 아침 아내의 소묘 한 점이 완성되며 기뻐한 배경에는 그림 때문에 허투루 보낸 세월이 단박에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아내는 우리나라에서 당신이 그토록 배우고 싶어 한 그림 수업을 제대로 배울 수 없었다. 그동안 아내에게 그림 수업을 지도한 선생님들 대부분은, 미켈란젤로의 어린 시절은 고사하고 소묘 하나 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거나 생략한 게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당신이 그린 그림들 다수는 늘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구석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마치 잘 못 지어진 건축물이 남긴 하자(瑕疵) 같은 것이랄까. 


뿐만 아니라 기초공사가 부실한 건축물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태의 불안정한 느낌이 작품 속에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피렌체서 만나게 된 루이지의 작품에서 아내는 보석을 발견해내는 안목으로 그를 따라나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수업에서 새로 짓기(?) 시작한 건축물의 기초과정 일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내의 그림 선생님 루이지(Luigi Lanotte)와 그가 지도한 소묘 한 점..


나는 동시통역 과정에서 아내의 그림 선생님이 된 루이지로부터 많은 것을 다시 배우게 됐다. 그의 나이는 아들 벌로 어리지만 그가 가슴에 품은 미학과 철학은 귀가 솔깃해질 정도로 신선하고 충격적인 것들이었다. 그동안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던 그림 수업 가운데 알짜배기를 듣게 된 것이다. 그는 소묘를 할 때 "대상을 복제할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 달라"며 같은 말을 수 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대상을 향해 "왜 그런지를 항상 생각하며 이해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 달라"라고 부탁했다. 당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에 대한 이해를 통해 소묘 한 점이 완성되었다. 아내는 짧은 과정이었지만 "너무 행복했다"라고 말했다. 살아가는 동안 당신이 가진 취미 생활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만큼 더 소중한 게 있을까.. 


아내의 그림 선생님 루이지의 화실 앞 풍경.. 피렌체서 만난 아내의 분홍색 신발이 눈에 띈다.


오래전 앙리 샤리에르(Henri Charrière)의 실화를 다룬 영화 빠삐용(Papillon)에서 주인공은 조국 프랑스의 사법부로부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게 된다. 그런 그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기아나의 지옥 같은 감옥에서 하고 싶었던 일은 감옥에서 탈출하는 일이 전부였다. 탈출 이후에 당신이 억울하게 쓴 누명을 세상에 떳떳하게 공표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온갖 고초를 다 겪는다. 


그리고 벼랑 끝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코코넛 포대에 의지하여 바람과 파도에 떠밀리며, 마침내 지옥 같은 감옥으로부터 탈출에 성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지옥 같은 감옥을 탈출한 후에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복수심 보다,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낭비한 죄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그는 감옥에 갇힌 후로 처음으로 가슴을 후벼 파는 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감옥생활을 통해 젊은 날의 초상을 뒤돌아 보게 하는 것이다. 




작가노트


뒤늦게 새로 시작한 아내의 그림 수업을 통해, 그동안 겪은 시행착오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아무한테나 주어지는 게 아니었던 것. 기회는 준비한 자의 몫이었다. 그리고 결과물은 당신의 생애를 통해 완성한 작품의 수가 아니라, 하나의 작품이 당신에게 일러주는 작은 메시지 하나.. 그것으로 행복하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흠.. 오늘은 그렇게 의미심장(意味深長)한 날이었다고..!! ^^)


* 아래 영상은 아내의 그림 수업 도중 화실 옥상에서 만난 풍경으로 '자유(Libero)'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는 이맘때가 되면 제비들의 천국으로 변한다.


Nota dell'autore


Attraverso la lezione di pittura di mia moglie, che ha iniziato tardivamente, la prova e l'errore che ha attraversato nel corso degli anni stava suggerendo molto. L'opportunità è data a chiunque, ma non a chiunque. L'opportunità è stata una parte di chi si è preparato. E il risultato non è il numero di opere che hai completato nella tua vita, ma un piccolo messaggio che un pezzo ti manda. (Se fossi felice con questo, cosa mi piacerebbe di più. E' stato un giorno così importante..!! ^^)

Attraverso la lezione di pittura di mia moglie
il 03 Giugno 2020, Citta' di Barletta_da Stidio di Luigi Lanotte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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