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내의 도전
2020년 6월 12일 오전, 아내에게 일어난 특별한 사건..!!
저만치 한 여인의 뒷모습이 뷰파인더에 잡혔다. 그림 수업을 받기 위해 화실로 가는 아내의 뒷모습이다. 아내는 바를레타 역사지구(Centro storico) 중심부 뷔아 치알디니(Via Cialdini)를 걸어가고 있다. 뷔아 치알디니는 바를레타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지역이다. 아내의 왼편으로 빠니퓌치오 라 디스퓌다(Panificio la Disfida)라는 간판이 보인다. 우리말로 '디스퓌다 빵집'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곳은 그냥 빵집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품고 있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이곳에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깐띠나 델라 스퓌다(CANTINA DELLA SFIDA, BARLETTA)가 위치해 있는 것이다. 링크된 자료 등에 따르면, 이곳 깐띠나(지하실 혹은 지하 저장고)에서 바를레타는 물론 이탈리아 민족의 탄생을 기념하는 첫번째 사건이자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이곳을 통치하고 있던 프랑스인들과 이탈리아인들이 깐띠나에서 매우 특별한 제안을 통해 결투(Disfida)를 벌이게 되는 것이다. 양측에서 선발된 13명의 기사들이 결투를 벌이고 이긴자가 영토를 차지하는 매우 특별한 결투(Disfida di Barletta)였다. 안드리아와 꼬라또 사이의 평원(nella piana tra Andria e Corato)에서 열렸던 이 결투에서, 이탈리아 기사들이 승리를 거둠에 따라 바를레타의 진정한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 역사적인 사건의 기념물이 지하에 보관되어 있고, 이곳에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곤 하는 것이다.
지인의 안내로 들어가 본 지하실에는 당시의 물품과 함께 고대 타베르나(Taverna del Sole)의 철기 간판이 눈에 띄었다. 이때부터(1503년) 시작된 바르레타의 역사가 현재에 이르므로, 바를레타의 역사는 517년에 이르고 있는 것.
아내가 걷고있는 바를레타 중심부는 역사적인 장소와 함께 바를레타인들이 사랑하는 장소로 해마다 2월 13일이 되면 전 시민이 참여하는 성대한 축제가 열리곤 한다. (우측의 자료 사진은 <13 febbraio 1503, la disfida di Barletta> 당시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이날 아침, 우리는 그림 수업에 가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지나간 것은 아닌데.. 사진첩을 열어보니 어쩌다 이곳에서 기록을 남기게 된 것이다. 이날은 뜻 깊은 날이었다. 아내의 그림 수업이 시작된 이래 여섯 번째 날이자 이날은 두 번째 작품(과정)이 탄생하는 날이었다. 그러니까 사흘에 한 점씩 연필 소묘 작품이 완성된 것이다.
한 번에 3시간씩 이어지는 수업이므로 대략 9시간의 적지않은 시간동안.. 점과 점이 선으로 이어지고, 선과 선이 면으로 이어지며, 면과 면이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내면서.. 아내는 그 공간 깊은 곳으로 빠져들며 흡족해 했던 것이다. 아내는 그 과정이 너무 행복하다고 실토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은 한국에서 배웠던 소묘와 다른 기법이 적용되었고 전혀 새로운(?) 기법은 아내를 흡족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림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빈틈이 없었다. 학생에게 빈틈을 보여주지 않았다. 빈틈이 보일 때마다 동시통역자인 나의 목소리는 보다 커지곤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아내의 두 작품이 완성된 것이다. 비록 기초과정에 불과하지만 한국에서 봐 왔던 소묘와 다른 작품이 완성되었으므로, 나또한 기쁠 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 또한 매우 흡족해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가 피렌체서 바를레타로 거처를 옮기게 된 것은 '아내의 그림 수업 때문'이라고 관련 브런치에 여러번 언급했다. 우리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장소가 바를레타였던 것이며, 아내의 그림을 지도하는 선생님의 화실이 이곳 중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것이다. 집에서부터 걸어서 5분에서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지근거리에 화실이 위치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곳까지 올 때까지 과정을 생각하면 까마득 하다. 아내는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당신이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을 하고 싶어했는데.. 글쎄, 그게 어느덧 20년 남짓한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아내는 국내의 내로라 하는 작가(화백)들을 만나 그림 수업을 하며 당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갔다. 그런데 그과정은 마치 꿈속 한 장면 혹은 무지개를 쫓는 아이들 같았다고나 할까..
가까이 다가서면 저만치 멀어지는 당신의 꿈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곳이 바를레타였던 것이다. 세상은 늘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한 계단 올라서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부터 퉁과의례를 요구하고 있었던 것. 돌이켜 보면 우리가 바를레타까지 올 때까지만 해도 그런 의례를 여러차례 치루었던 것이다. 내가 요리사의 조리복을 입은 것도 아내와 우리를 위한 선택이나 다름없었다. 별 것 아닌 거 같아도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인고의 세월을 필요로 하는 통과의례가 있었던 것이다.
작가노트
어느날 아침, 아내와 나는 바를레타 중심의 거리를 걸으며 연필 소묘의 마지막 부분을 완성하기 위해 집을 나선 것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바를레타가 목숨을 건 대표선수의 기사들에게 모든 것을 맡긴 것처럼, 우리는 아내의 평생의 꿈이자 소원인 그림 수업에 모든 것을 건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이런 선택은 우리로 하여금 조국으로부터 멀어진 것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평생을 살고 쌓았던 삶을 접고 이국만리 먼 나라로 이민자와 다름없는 새로운 삶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 첫걸음이 아내의 여섯 번째 그림수업으로 이어지며 함께 흡족해 하는 것이다. 그게 이틀 전의 일이자 통과의례가 막 끝나는 지점이었다. 바를레타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도시이며, 중심 도로에는 검은 대리석을 깔아놓았다. 그곳은 선택된 자들이 살아간 곳이자, 선택된 삶을 살고싶어했던 사람들이 걸었던 특별한 길이었다. 그렇게 자평한 날이었다.
Nota dell'autore
E una mattina, io e mia moglie abbiamo camminato per le strade di Barletta e abbiamo lasciato la casa per completare l'ultima parte del disegno a matita. Proprio come Barletta, dove viviamo, ha affidato tutto ai cavalieri del protagonista che è morto, non eravamo diversi dall'appendere tutto nella classe di pittura, il sogno di una vita e il desiderio della mia moglie. Questa scelta non era diversa dalla nostra. Dopo aver vissuto e accumulato la vita in Corea, ha scelto una nuova vita come immigrato come un paese straniero.
Il primo passo è condurre alla sesta lezione di pittura della mia moglie e accontentarsene. Fu due giorni fa e il punto in cui il rito di passaggio era appena finito. Barletta è una città fatta di marmo e marmo nero è posato sulla strada principale. Era un luogo in cui vivevano gli eletti e un percorso speciale seguito da persone che volevano vivere la vita scelta. È stata una giornata così tranquilla.
Cerimonia di passaggio_La sfida della moglie
il 13 Giugn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