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Jul 02. 2020

왕도가 있다

#8 아내의 도전_소묘 4단계 마지막 점검

차마 믿기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서기 2020년 7월 1일(현지시각) 오전 8시 45분경, 우리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뷔아 치알디니 (Via Cialdini) 거리의 깐띠나 델라 스퓌다(Cantina della Sfida) 앞을 걷고 있었다. 매주 아내(이하 '하니'라 부른다)의 그림 수업이 시작되는 날은 의례히 이 거리 앞을 지나게 된다. 관련 브런치에서 언급했지만 깐띠나 델라 스퓌다는 이 도시의 상징과 다름없는 역사적인 장소로 '벨레노의 집'이라고 불리는 역사적인 여관이 위치한 곳이다. 


전통에 따르면 이 장소에서 디에고 디 멘도사(Diego di Mendoza) 선장을 포함한, 스페인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프랑스인들을 기리기 위해 기사들의 관습에 따라 연회가 열린 곳이다. 이곳에서 포로로 잡힌 프랑스 기사들이 이탈리아 동맹국들을 폄하하고 자극한 일이 생겼다. 


그들은 이탈리아인들(통일 이탈리아 이전의)을 향해 무능 이하의 표현을 서슴지 않게 된 것이다. 따라서 1503년 2월 13일 이탈리아 기사 13명이 프랑스인들과 결투(13:13)를 벌이게 됐다. 이 결투는 오늘날의 바를레타가 탄생한 유명한 일화로 바를레타의 결투(Disfida di Barletta)라 부른다. 




디스퓌다와 스퓌다(Disfida o sfida).. 이탈리아어 결투와 도전으로 해석되는 비슷한 두 단어의 의미 중에,  후자를 선호하는 의미 있는 일이 뷔아 치알디니를 지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다. 결투(決鬪)란 무기를 가지고 정해진 규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건 싸움이다. 따라서 패배란 곧 죽음을 뜻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 그러나 도전의 일반적인 의미를 참고하면 실패해도 목숨까지 버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이 던지는 의미는 결투와 다름없는 대단한 각오가 필요할 것. 



우리가 피렌체서 이곳 바를레타로 거처를 옮긴 이유는 순전히 '아내의 도전' 때문이며, 하니의 그림 선생님 루이지 라노떼(Luigi Lanotte) 때문(덕분)이었다. 어느 날 피렌체의 삐아짜 데이 치옴피(Piazza di ciompi)에서 그와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바를레타로 이사를 할 결심을 굳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운명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해가 바뀌고 잠시 한국으로 떠났던 아내가 바를레타로 돌아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하니의 그림 수업이 시작되면서 운명적인 만남이 동시에 시작된 것이다. 루이지와 하니의 만남이 이루어진 결정적 이유는 루이지의 화풍 때문이었다. 그를 만난 장소에 전시해둔 그림이 하니의 눈길을 끈 것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하니의 눈높이는 만만치 않았다. 



루이지는 바를레타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가까운 폿지아(Foggia) 공립학교에서 7년 동안 그림 수업을 했다. 그리고 다시 피렌체 예술학교에서 3년간 전문교육을 받은 인재였다. 그게 벌써 20년 전이므로 그는 미술공부만 10년째 했으며, 그림지도를 10년째 해오고 있는 베테랑 예술가였다. 그런 그의 실력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린 작품이 전부였다. 


하니의 그림 선생님 루이지 라노떼(Luigi Lanotte)가 들고 있는 초상화는 목탄으로 그린 것으로 피렌체 예술학교에서 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런데 하니의 그림 수업이 진행되면 될수록 그의 지도법이 탁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니가 한국에서 전혀 듣보잡이었던 지도법이 적용되면서, 그야말로 일취월장의 눈부신 속도로 하니의 그림실력이 도드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한 달이 조금 더 지난 오늘 아침 소묘 4단계를 거의 완성하면서 우리는 루이지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차마 믿기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루이지도 동시에 놀라워했다. 그가 피렌체 예술학교에서 노심초사 완성했던 작품들이 하니의 손놀림에 의해 하나둘씩 탄생하고 있는 것. 우리는 수업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리스의 수학자 에우클레이데스(Euclide)가 말한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쁘똘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eus) 1세의 질문 "원론 보다 간편한 방법으로 기하학을 배울 수 없는가?"에 대한 유클리드의 답변으로 알려진 유명한 이 말은 여러 형태로 쓰이고 있다. 무슨 일이든 지름길은 없다는 말과 다름없는 것. 하니의 절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명언이 하니의 운명을 짓누르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동안 한국화단에서 그림을 그리고 배워오면서 느껴왔던 갈증이 루이지를 만나면서부터 해갈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화단의 문제점을 찾아 "왕도가 있다"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 그림 수업을 받거나 받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필요할 텐데.. 하니는 그런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안 가르친 게 아니라 못 가르치고 있었다고 아예 대못을 박아버린 사건이 이날 일어난 것이다. 



4단계 소묘 수업은 지금까지 진행되어왔던 3단계 수업과 달리 목탄(까르본치노_Carboncino)을 사용하는 수업이었다. 하니는 즈음이 걱정되었지만 막상 수업이 시작되자 단 2회에 걸쳐 과제를 해결하는 놀라운 일이 생긴 것이다. 루이지의 탄성과 칭찬이 이어졌다. 선생님이 잘 지도하면 "왕도가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인 사건이 일어난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일주일에 두 차례(6시간 동안) 이루어진 목탄 소묘 과정의 정정(지도) 과정을 영상으로 편집해 봤다. 꽤 많은 분량이었지만 피곤한 줄 모르고 작업했다. 곁에서 작업을 지켜보던 하니는 "수업 과정이 너무 재밌다"며 행복해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동시통역으로 그림을 배운 사람은 내가 처음일 것"이라며 나를 추켜 세우기도 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하루였다. (흠..이런 걸 자화자찬(自畵自讚)이라지 아마..!! ^^)



LA SFIDA DI MIA MOGLIE_Studio LUIGI LANOTTE  
il Primo Lugli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무념무상_無念無想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