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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화가가 된 게임 박사

여성 지식인과 업(業) - 여섯번째 이야기

by 유랑인

나는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문화콘텐츠가 학계에서 하나의 연구분야로 도입된 것은 2008년부터이다. 한양대학교 에리카(안성캠퍼스) 대학원 문화콘텐츠 석사과정이 생긴 것이 그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후 서울권과 지방권 대학에서도 한 두개씩 생겨나기 시작하여 지금은 인문대학(문과대학)에 문화콘텐츠학과가 광범위하게 분포하게 되었다. 문화콘텐츠 분야는 인문학의 산업적 활용성을 계발하게 위해 생겨난 방법론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독립적인 연구방법론이 마련되지 못해서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이다. 그보다는 '기획론'과 같은 콘텐츠 기획의 방법(process)이나 분석방법이 주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나는 기존에 쌓은 지식들을 사회적으로 활용가능한 방법을 공부 하기 위해 이 과정을 택했다.


나의 박사 동기 가운데 한 명으로 연극영화과 출신의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렸는데 대학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했고, 석사과정에서는 공연예술 관련한 산업을 연구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나도 평범치 못한 개성이지만, 그녀 역시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였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논리를 벗어나 4차원으로 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화가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하튼 일반적 사고를 하는 여성은 아니었다. 예술계 종사자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런 여성을 거의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었다. 그녀는 박사과정에서 무엇을 연구할 지 목표가 뚜렷하진 않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게임 분야를 연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새로 부임한 교수가 게임 전공자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 그 교수는 게임을 직접 개발하는 공학도 출신이 아니고, 게임을 사회학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연구자였다. 즉, 게임의 몰입에 대한 연구나 게임 몰입의 정서적 효과, 게임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연구하는 분이었다. 그녀는 새로 오신 교수의 수업을 한 번 듣고는 완전히 매혹되어 게임 분야를 연구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게임이 연극(drama)의 메커니즘과 매우 흡사한 방식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연극영화과에서 무대미술을 공부하고 졸업 후에도 무대미술 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많은 그녀는 게임에서 강렬한 매력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게임을 할 줄 몰랐다. 게임 자체를 해 본적이 없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게임 자체에 무관심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녀가 박사전공의 소재로 게임을 연구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내심 그녀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신념이 확고했기 때문에 나의 생각을 강하게 피력하진 않았다. 그녀는 작심한 듯이 연구실에 파묻혀서 게임 관련 해외 논문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새벽 2-3시까지 공부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런 시간이 2년 정도 지나가자, 그녀의 실력이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도교수와 게임 관련 논문들을 써내기 시작했다. 게임 몰입과 관련된 심리 분석이 주요 연구주제였다. 그런데 여전히 그녀는 게임을 해본 적 없는 상태였다. 본인 말에 의하면 딱 한 번 게임을 시도해 보았지만 헤메기만 해서 포기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게임 몰입 관련 논문은 계속 발표되고 학술지에 게재되었다. 주변 박사들이 매우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거기에 질투와 부러움도 섞여 있었다. 왜냐하면 인문학 분야에서 논문 한 편이 완성되려면 최소 두 달은 잡아야하는 형편이고, 1년에 논문을 4편 정도 학술지에 게재하려면 다른 일을 포기하고 논문쓰기에만 몰입해야 가능할 정도로 논문은 완성도 높은 실력을 요구했다. 그만큼 참신한 소재를 발굴하고 논리적으로 타당한 논의를 전개하는 데 깊은 사유와 끊임없는 글쓰기 수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1년에 8편이나 논문을 써서 학술지에 게재했다. 우리들 가운데 가장 빨리 논문을 쓰고 가장 많은 논문을 게재하였다. 심지어 그녀는 학부에서 게임을 전공한 적도 없고, 게임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상태였는데 말이다.


박사들이 뭐라 하든, 나는 그녀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만날때마다 나에게 참 잘해주었고, 나는 그녀의 순수성이나 4차원적 사고가 싫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게임보다 그 심리학적 연구가 너무 흥미진진하다고 늘 고백하곤 했다. 그 때문에 나는 그녀가 논문을 빨리 쓸 수 이유를 대충 파악하고 있었다. 게임이 이루어지는 작동원리에 관한 지식이 전무해도, 게임을 직접 체험하지 않아도, 논문을 쓸 수 있었던 핵심은 연극심리학에 있었다. 그녀는 연극영화과 출신이었기 때문에 유럽의 전통에서 이론적으로 체계화된 '연극학(Art of Drama)'가 향유되고 소비되는 원리를 모를 리가 없었다. 게임학 연구자는 대부분 컴퓨터 엔지니어 출신의 공학도이기 때문에, 게임 몰입 현상에 대한 메커니즘이나 심리학적 기제에 무지했다. 그녀는 정확히 그 지점을 파고 들어가 게임 몰입의 연구를 '드라마 몰입'과 유사하게 인식하고 분석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두고 나는 '유사성(Analogy)'에 기반한 연구방법이라 분류한다. 이와 관련하여 조만간 나는 사물 인식에서 '유사성'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 능력인지에 관해 논의를 본격적으로 해 볼 생각이다.


어쨋든, 그녀는 게임 몰입 관련해서 우수한 논문 실적을 거두고 나와 같은 해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는 그녀가 게임 몰입 방면 연구를 계속해 나가고, 단독 저술을 집필하게 되면 학자로서 학계에서 인정받을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박사들 모두 그녀가 가장 빨리 교수로 채용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녀는 예상한대로 정교수 이전 단계인 연구교수가 먼저 되었다. 학계에서는 연구교수를 3년 정도 한 후 정교수로 임용되는 순서로 가는 것이 차례였다. 나는 정부산하연구기관에 전임연구원으로 채용되어 갔기 때문에 졸입 이후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몰랐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독일로 간다는 소식이었다. 깜짝 놀랐다. 연유인 즉, 게임 연구를 하다보니 컴퓨터 사이언스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 대학원의 컴퓨터학과에 석박사과정으로 재입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그 당시만 하더라도 독일 대학은 유학생에게 수업료를 거의 받지 않았다).


나도 변화무쌍한 삶을 선택하는 무모한 인물이지만, 그녀는 나보다 더한 예측불가능한 모험가였다. 독일로 가기 전에 그녀와 마지막 통화를 나눈 것이 4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작년 11월에 느닷없이 그녀로부터 카톡이 왔다. 독일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 소식, 그리고 독일에서 화가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기가 막힌 소식이었다. 사실 나는 그녀가 게임 연구를 평생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밥먹듯이 내게 이렇게 말해곤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 제가 지금은 게임몰입 연구에 빠져 있지만, 갑자기 이 연구를 그만둘 수도 있어요. 이 일보다 진심으로 더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되면, 그 일을 시작할 거에요. 게임연구를 얼마든지 포기할 수도 있다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늘 연극의 배경이 되는 무대미술을 하면서 화려한 무대미술의 테크닉에 대해 내게 열정적으로 설명하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녀에게 "선생님은 딱딱한 교수보다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꿈꾸는 예술가가 훨씬 더 잘 어울려요" 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이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결혼 초청장 사진에 나온 그녀의 얼굴은 더 없이 행복해보였다. 남편이 될 독일남자는 대학에서 연극학을 전공하고 석사를 취득하여 대학 내 연구원이면서 시내 연극단 소속의 연극배우였다. 그녀는 독일 대학의 미술대학에 편입하여 미술 공부를 하면서 유럽의 갤러리 화랑에 미술작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두 예술가 부부의 미래는 너무나 행복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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