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이라는 말이 있다. 이보다는 우리에게 '80 대 20 법칙(80–20 rule)'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법칙은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 말은 경영이나 마켓팅, 조직관리에서도 자주 통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이 법칙에 동의한다. 심지어 창조적인 분야에서 뛰어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바탕이 되는 원리 역시 이 법칙으로 설명가능하다고 본다. 어느 분야에서 어떤 사람이 '100'이라는 노력을 기울였을 때 그 가운데 '20' 정도만 그 창조성이 인정되고 나머지는 평균작이거나 평이하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20'에 해당되는 질적 성취가 나머지 '80'을 추월하고도 남는다. 심리학자 딘 키스 사이몬튼은 창조적 성취와 생산적 에너지 사이의 강력한 상관성을 발견했다. 그의 데이터에 의하면, 어떤 분야에서든 그 분야의 실력 있는 프로들은 일정한 노력을 들일 때 성공가능성이 상당히 일정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사이몬튼의 데이터는 매우 뛰어난 작곡가가 그냥 훌륭한 작곡가보다 높은 비율의 뛰어난 작품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단지 전체 작품수가 월등히 많았을 뿐이다. 창조적인 분야에서 뛰어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항상 작품 수가 엄청나게 많다. 한스 아이셍크가 유명한 심리학자가 된 까닭은 그의 모든 논문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수백 권의 책과 수천 편의 논문을 쓰다보니 그 가운데서 뛰어난 저작이 몇 편 나왔기 때문이다. 겨우 10편의 논문 가운데서 역작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피카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일생동안 14,000점의 작품을 그렸다면, 설사 대부분은 평균작일지라도 몇 작품은 대단히 뛰어난 작품일 것이다. 사이몬튼의 연구결과는 놀랍다. 이는 대단히 반(反) 직관적으로 들릴 뿐 아니라, 이런 일반화에 어긋나는 예외는 항상 있다. 하지만 창조적 성취에 대한 사이몬튼의 연구자료들은 비할 바 없이 포괄적으로 수집된 자료이며, 그가 연구한 모든 분야에서 창조적인 성취는 그 활동에 투입된 에너지, 시간 및 동기의 결과였다.
이 원리는 마켓팅과 영업에도 적용된다. 대학원 다니던 시절, 나는 학기 중에는 과외만 했지만 방학이 시작되면 투잡을 뛰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다양한 부업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단기알바로서 시간당 많은 돈을 주는 곳은 몇 군데 정해져 있었다. 그 가운데 시간당 가장 가성비가 높은 알바는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특정기간 동안에만 실시하는 '특가세일' 기간에 기획상품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기업 차원에서도 브랜드를 알릴 기회이면서 새로 나온 제품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백화점의 특가 세일 기획전에 뛸 단기 영업사원을 따로 뽑았다. 지금으로 말하면 '팝업스토어'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나는 이 알바에 자주 지원했고, 열심히 뛰었다. 과외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백화점 근무 시간에 파견직원으로나가 기업이 기획한 상품들을 판매하면 되었기에 쉬웠다. 나는 말로 설명하는 모든 일에 자신있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나는 분당의 모 백화점으로 8일간 파견 알바를 나갔다. 당시는 '제주알로에'라는 화장품업체가 조금씩 알려지던 시기였다. 그 백화점에서 기획한 제주특산품 코너에서 제주알로에 기획상품들을 판매하는 것이 나의 주업무였다. 그 코너는 지하에 있었는데 푸드(음식) 코너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지나쳤다. 나는 제주알로에서 생산된 화장품 뿐만 아니라 건강식품들도 홍보하였다. 나를 채용한 관리자가 말하길, 그 건강식품들은 제주알로에 성분이 들어가서 함께 판매하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처음 며칠은 판매가 부진하였다. 나는 꽤 물건을 잘 판매하는 편에 속했는데, 고객들께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입담이 좋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특산품 다른 코너에의 하루 매출에 비해 내가 맡은 제주알로에 매출은 오르지 않았다. 나는 나를 믿고 파견한 총판 관리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비록 알바자리이긴 하나 그 쪽에서도 적지 않은 인건비가 나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4일째 되는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지나가는 고객들에게 제주알로에 제품들을 홍보하고 있었다. 그런데 카트를 끌고 매대를 지나치던 한 여성이 다시 되돌아왔다. 그리고 내게 "방금 뭐가 변비에 좋다고 했어요?" 하고 질문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건강식품을 보고 "아 이거 말인가요? 네~ 이게 이번에 새로나온 제품인데, 제주산 알로에 성분이 듬뿍 들어간 식품으로 알약처럼 매일 드시면 좋아요. 무엇보다 장 기능을 원활하게 해주어서 변비에 특효가 있다고 합니다" 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그 제품을 요리조리 살피면서, "변비에 좋다는 약들은 다 먹어봤어요. 하지만 여전히 변비 때문에 고생하고 있죠. 나는 이제 변비약 광고는 믿지 않아요"라고 했다. 나는 갑자기 난감해졌다. 나도 그 식품을 직접 먹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제품의 설명서에 나온대로 홍보를 한 것이 전부다. 나는 그녀의 심정을 공감했다.
그래서 나는, "아, 그렇군요. 사실 저도 건강에 좋다는 약 광고는 잘 믿지 않아요.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이 제품은 약이 아니라 식품이라서요. 약과 달리 음식의 종류라서 약과 다른 효과를 빠르게 가져올 수도 있어요" 라고 말했다. 사실 이 말은 나의 궁색한 변명에 불과했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한숨을 푹 쉬면서, "사실 오늘로서 변을 보지 못한지 3일째에요. 너무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한데 이런 저런 약을 먹어봐도 효과가 없어요." 라고 말했다. 그녀는 여전히 그 건강식품 뒤에 적힌 깨알같은 설명문으로부터 눈을 떼고 있지 못했다. 나는 그녀가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연민이 확 올라왔다. 갑자기 나는 그녀의 손을 확 붙잡고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고객님, 한 번 속는 셈치고 이 식품을 하나만 사서 드셔보세요. 알로에가 듬뿍 들어간 거니 반드시 효과가 있을거에요. 만일 며칠이 지나도 변비에 아무 효과가 없으면 제가 그 돈을 모두 배상해드릴께요. 저는 여기서 나흘 간 더 판매할 예정이니, 그 안에 오시면 됩니다."
당시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뱉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불쑥 감정이 솟아나는 대로 말을 뱉은 것이다. 그러자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정말이에요?" 하고 반문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오늘 저녁부터 드시고 푹 주무세요" 그러자 그녀는 웃으면서 알았다며 그 제품을 하나 구매해갔다. 내가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 제품의 효능에 확신이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그녀에게 무엇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먼저 앞섰기 때문에 그 식품이 효과가 있고, 없고를 떠나 무작정 먹어보라고 우긴 것이다. 그 후 나는 다른 고객들에게 제품들을 홍보하고 판매하느라 정신없었고 집에 와서도 피곤해서 뻗어버렸기 때문에 그 사건은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다음날은 내가 이 코너에 판매한지 5일째 되던 날이었다. 오후 늦게 그 식품을 사간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그제서야 나는 어제 사건을 떠올렸다. '거짓말을 하더니,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하고 마음을 다잡는데, 그녀가 내 손을 덥석 잡고서,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오늘 아침에 변을 시원하게 봤어요. 속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천년묵은 때가 씻겨내려간 기분이에요. 이 식품이 그렇게 효과가 있을지 몰랐네요"하며 환하게 웃는거 아닌가? 순간 나는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정말 이게 변비에 효과가 있는건가?' 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있는 것과 반대로 그녀는 들뜬 표정으로, "여기에 있는 이 제품 모두 다 제가 사겠어요, 그리고 본사 전화번호도 제게 하나 주세요. 나중에 떨어지면 주문하게~" 그러면서 그녀는 정말 매대 위에 무수하게 쌓여있던 그 건강식품을 모조리 카트에 쓸어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식품들에도 관심을 보였다. "이건 또 뭐에요? 어디에 좋아요?" 그녀는 그동안 올리지 못했던 매출의 수십배를 올려주고 떠났다. 매대는 순식간에 싹 비워졌다. 내가 서울총판에 전화해서 내일 판매할 물건이 동이 났다고 했더니 믿지 않았다.
그날 나의 매대에서 한 고객이 어마어마한 양의 제품을 카트에 싣는 것을 보고 다른 고객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알바를 시작한 후 5일 째부터 알바가 끝나는 8일째가 되는 날까지 매출은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서울총판 사장이 백화점에 직접 들려서 점심을 사주고 나를 칭찬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알바가 끝나고도 그 사장님은 내게 영업부장을 시켜주겠으니 회사로 오라고 했다. 방학 때마다 내게 알바를 주겠노라고 연락했다. 하지만 나는 박사과정에 입학한 후에는 연구소의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기에 더 이상 영업 알바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사건은 운이 좋았다. 만일 그녀가 사간 식품을 먹고 효과가 없었다면 나는 돈을 물어줬을테니 말이다. 나는 지금도 당시 그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고객 한 분의 마음을 사로잡은 덕택에 나는 제주특산품 코너에서 영업 스타가 되었다. 주변 코너에서 나를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때 나는 깨달았다. 세상 만사가 80대 20 법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