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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인 Sep 24. 2022

1.3. 변환이란 무엇인가

최근 우리가 겪고 있는 미국의 인플레 법안, 중국의 수출 리스크, 강달러와 환율 하락 등은 국내,외적으로 문제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리더십은 무엇일까. 지난 시기 한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해 왔던 패스트팔로워 리더십은 한계에 도달했으며 남의 것 베끼는 단계를 넘어서 독자적인 개념설계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문제는 이 역량이 독창성을 발현하는 사고 작용과 불과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는 다름 아닌 ‘변환적 사고’라고 볼 수 있다. 이 단락에서는 변환의 개념을 논한 후, 변환적 사고를 소개하고자 한다.   


변환(變換) 사전적 의미는 ‘다르게 해서 바꾸다’ 또는 ‘달라져서 바뀜’이다. ‘변變’은 ‘변하다, 움직이다, 달라지다’는 뜻을 가지며 ‘환換’은 ‘바꾸다, 교체하다, 주고받다’라는 뜻을 가진다. 주목할 것은 ‘변’은 존재 상태의 변화, 혹은 형질의 변화를 말하고 ‘환’은 위치의 변화, 혹은 장소의 이동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가령 ‘환전(換錢)’은 서로 종류가 다른 화폐와 화폐를 주고받는 것인데 이것은 이 화폐를 저 화폐의 가치로 계산하여 이동시키는 것이지, 화폐 자체의 상태가 변하는 것이 아니다. 요컨대, 변환이란 먼저 자기 자신의 존재 상태를 달라지게 하여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한다는 의미이다.      


이 변환과 같은 의미를 가진 용어가 'Transduction'이다. 이 용어를 철학적 개념으로 발전시킨 인물이 프랑스 철학자, 질베르 시몽동(Gillbert Simmondon)이다. 시몽동은 1924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989년 파리 교외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파리 5대학 교수로서 과학기술적 발명, 산업과 기술, 노동자 문제, 이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켰다. 그의 철학은 개체화(individualization) 철학이라 할 수 있는데, 개체가 발생하는 과정에 대한 탐구를 말한다.      

질베르 시몽동(1924-1989)


이 점에서 시몽동은 'transduction'이란 용어를 새롭게 사용하였는데, 이 말은 생성이나 변화의 역동적 과정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변환이란 말은 물리학에서는 에너지가 다른 것으로 전환되는 과정, 기술 분야에서는 음성신호를 전기신호로 바꾸는 변환기(transducteur) 등 서로 다른 정보 조건을 중개하는 장치를 말한다. 시몽동의 철학에서 변환은 자기조직화하는 역동성으로서 존재의 발생이나 질적 변화를 가리키는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구체적으로는 개체 이전의 존재 상태로부터 어떤 특이성 요인으로 인해  연속적인 상태변화를 통해 새로운 개체로 분화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렇다면 개체는 어떤 상태에서 생성이 되는 것일까? 이 점에서 시몽동은 ‘준안정적 상태(Metastable)’라는 체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 상태는 마치 과포화된 용액과 같다. 여러 가지 이질적인 요소들이 꽉 찬, 곧 폭발할 것 같은 상태이자 이들 사이의 긴장된 상태를 말한다. 잠재적 에너지가 충만하며 불안정한 긴장 요소들이 양립하고 있는 구조의 상태이자 이 불안정한 힘들이 공존하는 상태를 ‘준안정적 체계’이라 말한다. 본래 긴장된 힘들은 양립하기 불가능하지만 각자의 이질성을 반영한 채로 평형을 유지한 상태가 준안정적인 세계인 것이다.


준안정적 체계(metastable system)


이 글에서는 시몽동의 준안정성 개념을 가져와 현 국제질서를 분석하고 한국과 같은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30여년의 세계화를 주도한 미국 주도의 제1세계질서는 적대적이고 긴장된 힘들의 균형으로 안정적으로 유지시킨 ‘준안정적 세계’였다고 본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그 힘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으며, 대만을 둘러싼 미중 패권 충돌이 가시화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해석한다. 러시아 및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체제를 제2세계질서라 본다면 이는 제1세계와 제2세계의 가치충돌이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러·우 전쟁, 미·중 패권 충돌로 각 국가들이 두 방향으로 분리되면서 대립되어 있을 때 잠복해 있던 에너지, 즉 잠재적 에너지의 형태로 존재하던 한국과 같은 제3세계 국가는 소통이 부재한 양 극단 사이를 소통하고 안정화를 도모하는 매개 역할을 함으로써 상위의 다른 구조(해결책)를 산출하여 긍정적인 관계자들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변환적 사유 역량이다. 마치 작은 소리를 입력받아 큰소리로 증폭하여 출력하는 중계 확장기처럼, 변환적 사고는 서로 불일치하고 대립하는 것들을 관계 맺게 하는 변형 작용에 해당한다. 이 변형 은 양자 간의 공통성을 찾아 그들 간의 양립가능성을 제시하는 세부적 지식과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시몽동이 제시한 변환은 인식론의 하나이다.       

 

질베르 시몽동의 정치철학과 인식론


나아가 변환은 여러 학문의 지식들을 소통하는 과정에서도 매우 유용하다. 열역학의 퍼텐셜 에너지(잠재적 에너지) 개념은 물리학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나 사회학, 정치학에서도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다. 물리학에서의 퍼텐셜 에너지 개념은 절대적으로 분명하지도 않고 엄밀하게 정의된 범위를 가지지도 않는다. 퍼텐셜 에너지, 즉 잠재적 에너지는 그 시스템의 생성 능력을 가지는 물리적이면서 생명적인 경향성을 띤다.이 퍼텐셜 에너지가 보여준 존재의 유형에 대한 고찰은 과학으로부터 철학이나 사회학, 정치학으로 개념을 이전시켜 사용하는 적합한 방법으로 도움을 준다.      


가령 현대 물리학의 논의를 빼고 철학이 단독으로 물질의 본성에 관해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치기 매우 어렵다고 할 때, 물리학의 개념을 사용한 철학 연구야말로 탁월한 변환적 사유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축적의 길>(2017년)에서 이정동 교수가 독자적인 개념설계 역량의 하나로 제시한 서로 이질적인 지식들을 하나로 융합하는 원리이다. 서로 다른 두 진영의 지식을 모두 꿰고 있어야 볼 수 있는, 과학적 가설과의 유사성을 통해 얻게 된 철학적 가설이며 물리학과 철학 사이에서 일어난 변환적 사유이다. 이런 사유는 기계공학과 컴퓨터공학, 법학과 의학 사이 등 서로 다른 지식 간에 기능한다.


인식적 의미에서 변환은 귀납, 연역, 변증법과 구분되는 사유이다. 변환은 세상의 대립과 차이를 보존하여 통합하되 그 대립과 차이로 인해 가능한 연결망으로서 새로운 환경(관계)을  찾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변환은 내적으로 당면한 문제 해결의 방법을 다른 곳에서 가져오지 않는다. 변환은 조직 내 긴장하는 세력들 자체로부터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를 발명한다. 변환에서는 여러 요소들이 그 구조 안에서 손실되거나 축소되지 않고 재배열될 수 있도록 각 요소들이 모두 소통할 수 있는 연합환경을 발견한다. 이는 대립적인 것들 사이의 공존과 소통이 가능한 관계를 창출하기 위해 더 상위의 차원을 창조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과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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