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서 모두를 얻다

시인이 쓰는 에세이

by 유명종

그곳엔 세상에 없는 고요가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데도, 종묘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문득 소리가 사라지고, 침묵이 다가와 길 안내를 한다. 그곳엔 고요한 아름다움이 낮고 부드럽게 흐른다. 내가 서울에서 서점만큼 좋아하는 곳, 그곳에선 시간마저 느리게 흐른다.


종묘는 신전이다. 베이징의 천단, 아테네의 파르테논 같은 곳이다. 절이나 성당, 교회를 떠올려도 좋겠다. 하지만 종묘는 이들과 완전히 다른 신전이다. 종묘는 이 세상 모든 신전의 반대편에 혼자 서 있다. 조금 과장하면 세상의 신전 건축은 종묘와 나머지로 나눌 수 있다.

신전은 대부분 수직적이다. 유럽의 이름난 성당을 떠올려보라. 고개를 완전히 쳐들어야 종탑이 보인다. 실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고개를 뒤로 젖혀야 겨우 천정을 볼 수 있다. 이마저도 목뼈가 아파서 오래 볼 수도 없다. 베이징 천단 공원의 환구단도 다르지 않다. 파르테논은 아테네에서 제일 높은 언덕에 있다. 언덕 이름도 수직적이다. ‘아크로’는 고대 그리스어로 ‘가장 높다’라는 뜻이다. 신전은 올려다보는 곳이다. 이렇듯 우리가 아는 신전은 수직적 상상력, 곧 권위의 기초 위에 서 있다. 하나같이 하늘을 대리하고 있다.


비워서 모두를 얻었다2500-전성영.jpg 사진_전성영


종묘는 이들 신전과 근본부터 다르다. 종묘는 하늘로 솟지 않는다. 종묘는 수평적이다. 그것도 극단적으로 수평적이다. 정전의 좌우 길이는 무려 101m이다. 영녕전도 50m에 이른다. 두 건물은 하늘이 아니라 땅으로 향한다. 애초부터 하늘엔 관심이 없다는 듯 지면과 평행으로 누워 있다. 그렇게 누워서 땅의 숨결을 조용히 듣고 있다. 게다가 색과 장식을 절제하여 담백한 간결미까지 얻었다. 종묘는 아주 각별한 땅의 건축이다.

종묘의 정전과 영녕전 앞에는 월대라는 넓은 마당이 있다. 달빛이 머무는 곳, 또는 달을 감상하는 곳이라는 멋진 뜻이 담겨 있다. 월대는 평평한 돌이 깔린 엄청 넓고 네모난 마당이다. 천원지방(天園地方)의 그 ‘지방’이다. 월대엔 아무것도 없다. 그냥 공(空)! 마당을 통째로 비워놓았다. 여백도 이런 여백이 없다. 압도적인 수평과 궁극의 여백.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절제미. 종묘는 미니멀리즘 미학의 절정이다.


비워서 모두를 얻었다2501-전성영.jpg 사진_전성영


종묘는 유일하게 하늘을 보여주는 신전이다. 위에서 얘기한 다른 신전들은 하나같이 하늘을 가린다. 높이 솟아 스스로 권위가 되고, 마침내 하늘이 되었다. 거기엔 ‘사람’이 빠져있다. 사람은 그저 신과 신전을 경외만 하면 된다. 하지만 종묘는 다르다. 하늘을 가리는 게 아니라 낮추고 비워서 하늘을 다 보여준다. 종묘에선 굳이 고개를 쳐들지 않아도 동서남북의 하늘을 시야 가득 담을 수 있다. 하늘을 열어 보여주는 건축, 종묘는 ‘사람’을 품었다.

종묘는 하늘만 얻지 않았다. 햇빛을 얻었고, 달빛과 별빛까지 얻었다. 얘들이 그냥 밤낮으로 종묘 마당에서 논다. 고요는 말할 것도 없다. 종묘에선 시간마저 멈춘 듯 천천히 흐른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고요……. 종묘는 스스로 비워서 이 귀한 것들로 가득 채운다.


비워서 모두를 얻었다2502-전성영.jpg 사진_전성영


수평의 건축은 자연스럽게 사람의 시선을 종묘 밖으로 이끈다. 관람자의 시선은 종묘를 감싼 나무숲을 지나 자연스럽게 동서남북의 하늘로 향한다. 관람자는 네모난 마당(地方)에서 둥근 하늘(天園)을 발견하고 경험한다. 종묘는 그렇게 땅도 보여주고, 하늘도 보여준다. 종묘는 땅과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유교 정신이 담고 있다. 더불어 조선의 세계관과 우주관을 품은 신전이다. 종묘는 땅과 하늘을 잇는 건축이다.

건축은 건축물 자체의 감성과 미학뿐 아니라 주변 환경과 만나면서 이루어지는 조화와 그 조화에서 나오는 공명까지 포함해야 완결된다. 종묘는 땅에 있으되 하늘까지 초대하여 공명한다. 이 각별한 리듬과 미학이 종묘를 건축적으로 완성해 준다. 종묘는 비워야 얻을 수 있고, 절제해야 아름답다는 진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품격이란 덩치가 아니라 겸손에서, 높이가 아니라 깊이에서 나오는 것임을, 우리에게 조용히 일러준다.






*비하인드 스토리 behind story

종묘 옆 세운 지구 개발로 논란이 뜨겁다. 서울시는 고층빌딩을 지어 하늘로 향하는 종묘의 시야를 막겠다고 한다. 종묘는 조선의 심장이자 세계문화유산이다. 종묘는 대한민국을 넘어 80억 인류의 것이 되었다.

손흥민과 음바페가 수비 라인을 깨면 그냥 게임 끝이다. 종묘도 마찬가지다. 한번 깨면 되돌릴 수 없다. 종묘의 아름다움은 우리만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다. 조선의 우주관은 우리의 정신 유산이다. 이 귀한 미학과 세계관을 서울시가 무너뜨리려고 한다. 멍청한 짓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