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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수백 통의 절박한 전화, 바닥까지 떨어진 이름

by 윤숨

그날, 나는 몇 통째의 전화를 걸고 있었을까.

휴대폰 화면에 표시된 통화 기록을 보며 숫자를 세다가 포기했다. 어차피 중요한 건 몇 통이냐가 아니라, 그 전화를 받아주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엔 "잠깐만, 창식아" 하며 받아주던 목소리들이, 이제는 벨소리만 공허하게 울다가 끝나버린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거울을 봤다. 거기엔 내가 알던 윤창식이 아닌, 낯선 누군가가 서 있었다. 눈동자에서 자신감이라는 빛이 완전히 사라진 사람. 입술이 굳게 다물어져 있지만, 그 안에서는 계속해서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말이 맴돌고 있는 사람.

언제부터였을까. 내 이름이 사람들에게 '반가움'이 아닌 '부담'이 되기 시작한 것이.

하루 종일 걸었던 전화들

아침 일찍부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그다음엔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들. 그래도 안 되면 한두 번 만난 적 있는 지인들까지.

"형, 나 창식이야. 혹시 시간 있을 때 만날 수 있을까?"

목소리를 최대한 밝게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내 목소리는 이미 내 의도를 배신하고 있었다. 떨림이 묻어나고, 절박함이 새어나왔다. 상대방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전화가 무엇을 위한 전화인지.

"아, 창식아. 미안한데 요즘 좀 바빠서..."

변명은 언제나 비슷했다. 바쁘다는 말, 좀 어렵다는 말,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말. 그 말들이 거짓말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었다. 다만 그 거짓말이, 진실보다 훨씬 따뜻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알겠어, 형. 괜찮아."

전화를 끊고 나면 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무릎이 바닥에 닿고, 등이 벽에 기대고, 머리가 무겁게 떨어졌다.

이름이 무거워질 때

사람들은 잘 모른다. 이름이 무거워진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점점 망설임이 스며들고, 내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가 줄어들고,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부를 묻지 않게 되는 그 순간들을.

윤창식이라는 이름이, 언제부턴가 무언가를 요구하는 이름이 되어버렸다. 도움을 구하는 이름, 빌리려는 이름, 간절함을 담은 이름. 한때는 신뢰를 의미했던 이 이름이, 이제는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 되어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잃어버린 건 돈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는 걸.

베이스를 잃은 주자처럼

야구에서 주자가 베이스를 놓치면 아웃이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어느 베이스에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는 순간이다. 1루인지 2루인지, 아니면 이미 아웃이 된 건지. 그라운드 한복판에서 갈 곳을 잃고 서 있는 그 순간.

그때의 나가 그랬다.

어디가 안전한 곳인지 몰랐다. 어디로 뛰어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홈 플레이트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가물가물했다. 그저 그라운드 한복판에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멈춰 서 있을 뿐이었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됐을까."

혼잣말이 나왔다. 대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희미하게 남아있던 것

하지만 이상했다. 그 절망적인 순간들 사이사이로, 묘하게 따뜻한 기억들이 스며들었다. 누군가 건넨 작은 미소, 예상치 못한 순간에 걸려온 안부 전화, 그리고...

"괜찮아질 거야."

누가 한 말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언제 들은 말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이 내 안 어딘가에 작은 씨앗처럼 박혀있었다. 아직 싹을 틀 준비는 안 됐지만, 완전히 죽지는 않은 채로.

그날 밤, 휴대폰을 다시 들여다봤다. 더 이상 걸 사람도 없고, 받을 전화도 없는 휴대폰. 하지만 그 검은 화면에서 희미하게 내 얼굴이 비쳤다.

"아직 살아있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순간, 내가 그 모든 걸 혼자 견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됐다.

내가 그 모든 걸 견뎌낸 게 아니라, 누군가 내게 잠시 손을 내밀어주었다는 걸.


잠시 멈춤, 홈 플레이트에서 나에게 건네는 질문

당신의 이름이 가장 무거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그때, 당신을 지켜준 작은 온기는 무엇이었나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홈 플레이트는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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