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부드러운 어깨, 기댈 수 있는 사람의 조건」

by 윤숨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오랫동안 나는 그 느낌을 모르고 살았다.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은 약함의 표현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기댄다는 건 나약함이 아니라, 신뢰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라는 걸.

내가 처음 기대보았던 어깨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건 내가 가장 힘들어했던 시기였다.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바닥을 치고 있던 때.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은 특별한 조언을 해주지 않았다.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그냥 곁에 있어줬다.

"힘들겠다."

그 한마디였다. 그런데 그 짧은 말 속에는 내 상황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판단하지 않고, 재촉하지 않고, 그저 내 감정을 그대로 받아주는 느낌.

처음에는 어색했다. 누군가에게 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불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 사람 앞에서는 '괜찮은 척'을 하지 않아도 됐다. 완벽하지 않아도 됐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여도 괜찮았다.

어깨의 온도

그 사람의 어깨는 따뜻했다. 물리적인 온도가 아니라, 마음의 온도 말이다.

어떤 어깨는 차갑다. 형식적인 위로만 있을 뿐,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어깨. "힘내라", "잘 될 거야"라는 말은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은 어깨.

어떤 어깨는 뜨겁다. 너무 감정적으로 반응해서 오히려 부담스러운 어깨. 내 문제를 자신의 문제인 양 여기며, 성급하게 해결하려고 드는 어깨.

하지만 그 사람의 어깨는 달랐다. 적당히 따뜻했다. 내 감정을 그대로 받아주면서도, 그 안에서 길을 잃지 않는 어깨. 나와 함께 아파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어깨.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사람

그 사람이 특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보니, 그 사람은 나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나 자신을 찾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봐 줬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어보면, 대신 이렇게 물어봤다.

"넌 어떻게 하고 싶어?"

내가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어주는 사람이었다. 내 안에 이미 해답이 있다고 여겨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신뢰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누군가 나를 믿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시 시작할 용기가 생겼다.

야구장에서 배운 것

야구에서도 비슷한 순간들이 있다. 선수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실수를 연발할 때, 자신감을 잃었을 때.

그럴 때 좋은 코치는 무엇을 할까. 기술적인 조언을 늘어놓거나, 정신력을 강조하거나, 더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그냥 옆에 서서 말한다.

"괜찮아. 천천히 해봐."

그리고 기다려준다. 선수가 스스로 리듬을 찾을 때까지. 자신만의 타이밍을 되찾을 때까지.

그런 코치의 존재감이 선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선수에게 안정감을 준다.

누군가 내게 기댔던 순간

몇 년 전, 한 학생이 찾아왔다.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야구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왜?"

"재미없어요. 그리고 못하겠어요."

그 아이의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아이와 함께 앉았다. 야구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일상 이야기를 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들과의 관계, 앞으로의 꿈.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그 아이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짜로 들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았다.

"선생님, 저 다음 주에도 와도 될까요?"

그 물음 속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

그때 깨달았다. 내가 그 아이에게 어떤 존재가 되고 있는지를.

기댈 수 있는 사람의 조건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기댈 수 있는 사람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첫째, 판단하지 않는다. 내 상황이 어떻든, 내 선택이 어떻든, 먼저 이해하려고 한다.

둘째, 성급하게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준다.

셋째, 자신의 경험을 강요하지 않는다. "내가 그때는 이렇게 했는데"라며 자신의 방식을 밀어붙이지 않는다.

넷째, 꾸준하다. 한두 번의 만남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곁에 있어준다.

마지막으로, 자신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인정한다. 같은 인간으로서, 같은 약함을 가진 존재로서 나를 바라본다.

부모님의 어깨

어렸을 때는 몰랐다. 부모님의 어깨가 얼마나 넓었는지.

아버지는 말이 많지 않은 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힘들어할 때면 항상 곁에 계셨다. 특별한 말씀을 하지는 않으셨지만, 그 존재감만으로도 안정감을 주셨다.

어머니는 다른 방식이었다. 따뜻한 음식을 해주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그리고 항상 말씀하셨다. "괜찮다, 천천히 해라."

지금 생각해보니, 그 모든 것들이 내가 기댈 수 있는 어깨였다. 무조건적인 사랑, 끝없는 기다림, 변하지 않는 신뢰.

내 어깨는 어떤 어깨일까

요즘 나는 자주 생각한다. 내 어깨는 누군가에게 어떤 어깨일까.

따뜻한 어깨일까, 차가운 어깨일까. 기댈 수 있는 어깨일까, 부담스러운 어깨일까.

누군가 내게 기대려고 할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빨리 해결해주려고 조급해하지는 않을까.

이런 질문들을 통해 나는 계속 배워가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어깨가 될 수 있는지를.

나 자신의 내면부터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 자신이 단단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내가 흔들리고 있으면, 다른 사람을 지탱해줄 수 없다.

하지만 단단하다고 해서 딱딱해서는 안 된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워야 한다. 마치 좋은 글러브처럼.

야구 글러브는 딱딱하기만 하면 공을 받을 수 없다. 너무 부드럽기만 해도 공을 잡을 수 없다. 적당히 단단하면서도 유연해야 좋은 글러브다.

사람의 어깨도 마찬가지다. 내 안이 채워져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 내가 먼저 사랑받는 경험을 해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기대는 법을 배우기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도 배워야 하는 기술이라는 걸 알았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하다. 혹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부담을 주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하지만 기대는 것도 관계의 한 형태다. 일방적인 의존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다.

때로는 내가 기대고, 때로는 내가 기댐을 받고. 그런 주고받음 속에서 관계는 더욱 깊어진다.

어깨의 기억

지금도 기억한다. 그 사람의 어깨에 기댔던 순간들을. 그때의 안정감, 그때의 따뜻함을.

그 기억이 나를 만들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누군가 나를 이해한다는 확신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런 어깨가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기댈 수 있는 어깨로,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기억으로 남고 싶다.

완벽한 어깨가 아니어도 괜찮다. 때로는 나도 피곤하고, 때로는 나도 흔들린다. 하지만 그런 불완전함까지도 포함해서, 진정한 어깨가 되는 것이 아닐까.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누군가를 기댐받으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인간다워진다.

오늘도 나는 묻는다. 내 어깨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

그 대답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잠시 멈춤, 홈 플레이트에서 나에게 건네는 질문

나는 누구에게 가장 많이 기대고 있었을까?

누군가가 나에게 기대려 할 때, 나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나의 어깨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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