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홈 플레이트의 수비수처럼, 나를 지키는 마음의

by 윤숨

나는 오랫동안 문을 열어두고 살았다.

마음의 문, 감정의 문, 시간의 문. 누구든 들어와도 좋다고, 무엇이든 가져가도 좋다고 말하며 살았다. 그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 안이 텅 비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도와주려다 내가 다 무너졌다

몇 년 전의 일이다. 한 학부모가 아이 때문에 고민이 많다며 상담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간단한 대화로 시작됐지만, 점점 깊어졌다.

아이의 문제, 가정의 문제, 부부 관계의 문제까지. 그분의 모든 고민이 내게로 흘러들어왔다. 나는 최선을 다해 들어주고, 조언해주고, 위로해주려고 했다.

매일 밤 긴 전화통화가 이어졌다. 주말에도, 새벽에도 전화가 왔다. "선생님만이 이해해주시니까요"라는 말에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그분의 문제는 조금씩 해결되어 갔지만, 정작 나는 점점 지쳐갔다. 내 일에 집중할 수 없었고, 내 가족과의 시간도 줄어들었다.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 깨달았다.

내가 그분을 도운 게 아니라, 내가 그분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버린 것이라는 걸.

모든 공을 다 받으려던 포수

야구에서 포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포수라고 해서 모든 공을 다 받는 건 아니다.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공은 과감히 흘려보낸다. 그게 게임의 룰이고, 그게 포수의 지혜다.

그런데 나는 어떤 포수였을까.

모든 공을 다 받으려고 했다. 높은 공도, 낮은 공도, 한참 빗나간 공까지도. 심지어 상대편에서 던진 공도 받으려고 했다.

"이 정도는 받아줄 수 있어." "힘들어하는 사람을 외면할 수는 없지." "나 하나 참으면 되는 일이야."

그런 마음으로 모든 걸 받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내 몸은 망가졌고, 마음은 지쳤고,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제대로 된 수비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경계선이라는 이름의 보호막

그 일을 겪고 나서 생각해봤다. 나에게는 경계선이 없었다. 어디까지가 내 일이고, 어디부터가 남의 일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경계선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내 감정과 남의 감정이 뒤섞인다. 내 문제와 남의 문제가 구분되지 않는다. 결국 나도 남도 제대로 도울 수 없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경계선 손상'이라고 한다. 자신과 타인 사이의 건강한 경계를 잃어버린 상태. 마치 울타리 없는 집에서 사는 것과 같다.

울타리가 없으면 누구든 들어올 수 있다.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필요한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정작 집주인인 나는 설 자리를 잃어버린다.

감정의 온도를 재는 법

그 후로 나는 새로운 습관을 만들었다. 하루에 몇 번씩 내 감정의 온도를 재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 점심을 먹을 때, 잠자리에 들 때. 간단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지금 내 마음의 온도가 몇 도지?"

0도는 완전히 지친 상태, 100도는 에너지가 넘치는 상태. 보통 70도 이상이면 괜찮고, 50도 이하로 떨어지면 주의가 필요하다.

처음에는 이상했다. 감정에 숫자를 매기는 것이 기계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계속하다 보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 감정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사람과 만날 때 온도가 떨어지는지, 어떤 일을 할 때 온도가 올라가는지, 어떤 상황에서 내가 지치는지가 명확해졌다.

"아니요"라고 말하는 연습

가장 어려웠던 건 "아니요"라고 말하는 연습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자란 우리에게 "아니요"는 어려운 단어다. 특히 누군가 도움을 요청할 때 거절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깨달았다.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이 이기적인 게 아니라는 걸. 오히려 내가 건강해야 다른 사람도 제대로 도울 수 있다는 걸.

비행기 안전 수칙을 떠올려보자. 산소 마스크가 떨어지면 자신이 먼저 착용한 후 다른 사람을 돕는다. 왜일까? 내가 먼저 안전해야 다른 사람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배운 경계선

어느 날, 코칭 중에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평소 말이 없던 아이가 갑자기 말했다.

"선생님, 저 오늘 좀 힘들어요. 공 받기 싫어요."

다른 코치였다면 "힘들어도 해야지"라고 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반응했다.

"그래? 어떻게 힘들어?"

아이가 말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싸웠다는 이야기, 집에서 부모님이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 그 모든 감정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럼 오늘은 공 받기 말고, 그냥 뛰어볼까? 아니면 잠깐 쉬어도 괜찮아."

아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자신의 상태를 인정받았다는 안도감이 얼굴에 스며들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경계선을 긋는다는 건 차단하는 게 아니라, 선택하는 거라는 걸. 내가 지금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고, 무엇은 받아들이기 어려운지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거라는 걸.

내면의 포수와 대화하기

이제 나는 내 안에 포수가 한 명 있다고 생각한다. 이 포수는 매 순간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이 공은 받아도 돼." "이 공은 너무 위험해, 흘려보내." "지금은 몸이 좋지 않으니까 잠깐 쉬어."

그 신호를 무시하고 살았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내면의 포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피곤할 때는 "오늘은 일찍 들어가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부담스러운 요청을 받으면 "조금 생각해볼 시간을 주세요"라고 말한다. 감정적으로 힘들 때는 "지금은 조금 어려워요"라고 솔직하게 표현한다.

학부모님의 변화

몇 달 전, 예전에 나를 지치게 했던 그 학부모님을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대화했다.

"선생님께 너무 의존했던 것 같아요. 죄송해요."

그분이 먼저 말씀하셨다.

"아니에요. 저도 경계선을 제대로 그어드리지 못해서 죄송했어요."

서로를 이해하는 대화였다. 그분도 나도, 그때는 건강한 관계가 무엇인지 몰랐던 것이다.

이제는 다르다. 상담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시간이 끝나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 또 이야기해요"라고 자연스럽게 마무리한다.

그분도 만족해하셨다. 명확한 경계선이 있을 때 오히려 더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걸 경험하신 것이다.

받아야 할 것과 흘려보내야 할 것

야구에서 좋은 포수는 두 가지를 잘한다. 받아야 할 공은 확실히 받고, 흘려보내야 할 공은 과감히 흘려보낸다.

자존감도 마찬가지다.

받아야 할 것들이 있다. 사랑, 인정, 격려, 건설적인 비판. 이런 것들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흘려보내야 할 것들도 있다. 악의적인 비난, 불필요한 걱정, 남의 감정적 쓰레기, 과도한 기대. 이런 것들은 과감히 흘려보내야 한다.

마음의 수비 연습

요즘 나는 매일 '마음의 수비 연습'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오늘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인가?"

하루를 마치면서도 묻는다. "오늘 잘 지켜낸 것은 무엇인가?" "내일은 어떤 것을 더 조심해야 할까?"

이런 질문들이 내 안의 포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포수는 모든 공을 다 받지 않는다. 자존감도 마찬가지다. 받아야 할 것과 흘려보내야 할 것을 구분하는 게 진짜 수비다.

그리고 그 수비를 통해, 비로소 나는 나 자신의 홈 플레이트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잠시 멈춤, 홈 플레이트에서 나에게 건네는 질문

당신은 지금 어떤 공들을 받고 있나요? 그 중에 흘려보내야 할 공은 없나요?

당신의 마음의 온도는 지금 몇 도인가요?

언제부터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이 어려워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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