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의 무게

선함은 어디서 오는가

by 윤숨

6장. 도덕의 무게 - 선함은 어디서 오는가

지하철 임산부석 앞에서

아침 출근길. 피곤하다. 어제도 새벽까지 야근했다. 겨우 자리 하나를 찾아 앉았다.

두 정거장쯤 지났을까. 임산부 배지를 단 여성이 탔다. 내 앞에 섰다.

일어나야 한다.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있잖아.' '나도 피곤한데.' '임산부석도 아니고.'

온갖 변명이 머릿속을 맴돈다. 눈을 감고 자는 척한다.

다음 역. 그녀가 내렸다.

죄책감이 밀려온다. 고작 5분을 서 있기 싫어서, 나는 방금 어떤 사람이 된 걸까?

콜버그의 도덕 발달 단계가 떠올랐다.

1단계 - 처벌 회피 (벌 받을까 봐) 2단계 - 상호 이익 (나한테 뭐가 좋은데?) 3단계 - 사회적 승인 (남들이 뭐라 할까?) 4단계 - 법과 질서 (규칙이니까) 5단계 - 사회 계약 (모두를 위해) 6단계 - 보편 원칙 (그게 옳으니까)

나는 몇 단계쯤일까?

겨우 3단계? 남들 눈이 없으니 안 일어난 거 보면.

회사 USB 속 파일들

퇴사하는 김 과장이 USB를 건넸다.

"이거 네가 가져. 도움 될 거야."

회사 기밀 자료들이다. 거래처 리스트, 가격 정보, 제안서 템플릿... 경쟁사로 이직하는 나에게는 황금 같은 자료다.

"이거... 괜찮을까요?"

"다들 그렇게 해. 너도 열심히 만든 거잖아."

맞다. 내가 밤새워 만든 것들도 많다. 하지만... 회사 것이기도 하다.

집에 와서 USB를 만지작거린다.

열어볼까? 말까?

칸트의 정언명령이 떠올랐다.

"네 행동이 보편 법칙이 되어도 괜찮을 때만 행동하라."

모두가 회사 자료를 갖고 나간다면? 모두가 기밀을 유출한다면?

하지만 현실은...

"천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동기가 비웃었다. 맞다. 나만 바보 되는 건가?

USB는 아직 서랍 속에 있다. 열지 못한 채로.

편의점 계산 실수

"2만 원 받았습니다."

편의점 알바생이 거스름돈을 준다. 17,500원.

뭔가 이상하다. 다시 계산해보니 5천 원이 더 왔다.

0.5초의 망설임.

'그냥 가질까?'

편의점 직원도 몰랐고, CCTV에도 안 잡힐 거다. 고작 5천 원이지만, 공짜로 생긴 돈이다.

"저기요, 거스름돈이 많은 것 같아요."

돌려줬다.

알바생의 안도하는 표정. 아마 본인이 물어내야 했을 거다.

집에 오는 길에 생각했다.

왜 돌려줬을까? 도덕적이어서? 아니면 그냥 귀찮아서?

공리주의자 벤담이라면 계산했을 거다.

내 이익: +5,000원


알바생 손해: -5,000원


총합: 0


하지만 뭔가 빠진 것 같다.

그날 밤 잠자리가 편했다는 것. 그게 5천 원보다 가치 있었다는 것.

SNS 선행 인증샷

"오늘 환경 정화 활동 다녀왔어요! #선행 #뿌듯"

지인의 인스타그램 포스트다. 쓰레기 봉투를 들고 활짝 웃는 사진.

댓글들이 달린다. "멋져요!" "본받아야겠어요!" "천사 같아요!"

나도 좋아요를 눌렀다. 하지만 속으로는 생각했다.

'저게 진짜 선행일까?'

인증샷을 위한 선행. 보여주기 위한 봉사.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맹자와 순자의 논쟁이 떠올랐다.

맹자: "인간은 본래 선하다." 순자: "인간은 본래 악하다."

누가 맞을까?

어쩌면 둘 다 틀렸을지도. 우리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저 상황에 따라 선택할 뿐.

윤리적 소비의 딜레마

"이 제품은 공정무역 인증을 받았습니다."

커피를 산다. 500원 더 비싸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나는 윤리적 소비자니까.

그런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이 커피를 담은 일회용 컵은? 커피를 사러 탄 자동차 배기가스는? 이 커피숍의 알바생 시급은?

윤리적이려 할수록 모순에 빠진다.

완벽한 선은 가능할까? 아니면 우리는 그저 덜 나쁜 것을 선택할 뿐일까?

피터 싱어의 '효율적 이타주의'가 생각났다.

"당신이 쓰는 돈으로 최대한 많은 선을 만들어라."

하지만 그 '최대한'을 누가 계산할 수 있을까?

새벽의 양심

새벽 3시. 또 깼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떠오른다.

회의에서 동료의 아이디어를 내 것처럼 말한 것


지각할 것 같아서 거짓말로 둘러댄 것


친구의 부탁을 귀찮아서 거절한 것


작은 일들이다. 범죄도 아니고, 큰 잘못도 아니다. 하지만 새벽의 정적 속에서는 무겁게 느껴진다.

양심.

종교인들은 신의 목소리라 하고, 프로이트는 초자아라 했다.

하지만 정체가 뭐든, 이 목소리는 정직하다. 낮의 합리화가 통하지 않는다.

'네가 한 일이 옳았니?'

대답할 수 없다.

작은 친절의 나비효과

어제 있었던 일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짐을 잔뜩 든 할머니를 만났다. 도와드렸다. 별거 아닌 일이었다.

오늘 회사에서.

"어제 누가 우리 어머니 도와줬대. 덕분에 기분이 좋으셔서 나한테 용돈도 주시고... 나도 기분이 좋아서 오늘 커피 쏠게!"

그 할머니의 아들이었다.

사소한 친절이 돌고 돌았다.

동양 철학의 '인과응보'가 이런 걸까? 아니면 그저 우연일까?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다.

그 순간, 도와드리고 싶어서 도왔다는 것. 계산 없이, 보상 없이.

그게 진짜 선함 아닐까.

내일의 실험

내일은 '양심의 날'로 정했다.

거짓말하지 않기


남의 공로 인정하기


작은 친절 베풀기


잘못했으면 사과하기


거창한 게 아니다. 그저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니체는 말했다.

"신은 죽었다."

그렇다면 도덕의 기준은 어디서 찾을까?

어쩌면 답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새벽에 나를 깨우는 그 작은 목소리. 낮에는 무시하지만 밤에는 선명해지는 그 속삭임.

완벽한 선인이 될 필요는 없다.

다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 매일 조금씩, 한 걸음씩.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도덕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가벼운 나침반일 수도 있으니까.

월요일, 마지막 장 '의미의 건축'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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