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와 우산
"오늘 비 올 확률 30%"
아침에 날씨 앱을 확인했다. 30%. 애매하다. 우산을 가져갈까 말까.
결국 가방에 넣었다. 하루 종일 맑았다. 쓸데없이 무거운 짐만 들고 다닌 셈이다.
다음 날. 비 올 확률 20%. 이번엔 안 가져갔다.
퇴근길에 소나기가 쏟아졌다.
젖은 채로 집에 돌아와 생각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예측에 집착할까? 30%와 20%의 차이가 뭐길래?
통제하고 싶은 거다. 불확실한 미래를. 하지만 결국 비는 올 때 오고, 안 올 때 안 온다. 우리의 준비와 상관없이.
작년 초에 짰던 5개년 계획을 다시 꺼내봤다.
2024년 - 팀장 승진 2025년 - 연봉 1억 달성
2026년 - 결혼 2027년 - 아파트 구매 2028년 - 해외 발령
웃음이 나왔다.
2024년은 팀장은커녕 이직을 고민했고, 2025년인 지금 연봉 1억은 꿈도 못 꾼다. 결혼? 연애도 안 하는데.
그런데도 또 계획을 세운다. 수정된 5개년 계획.
왜일까?
계획이 있으면 안심이 된다. 미래가 내 손안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중요한 일들은 대부분 계획에 없던 것들이었다.
우연히 만난 사람, 예상치 못한 기회, 갑작스러운 시련.
에픽테토스가 말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라."
하지만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것까지 통제하려 든다. 그리고 실패할 때마다 좌절한다.
"이번엔 진짜 오를 것 같은데?"
점심시간, 동료들이 주식 얘기를 한다. 차트를 분석하고, 뉴스를 읽고, 전문가 의견을 찾는다.
나도 작년에 시작했다.
이동평균선, RSI, MACD... 온갖 지표를 공부했다. 매일 아침 시황을 체크하고, 종목을 분석했다.
결과는? -23%.
웃긴 건 동전 던지기로 산 친구가 수익률 15%라는 거다.
통제의 환상이다.
우리는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시장은 우리의 예측과 상관없이 움직인다.
탈레브의 '블랙 스완'이 떠올랐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그게 모든 걸 바꾼다. 코로나처럼. 전쟁처럼.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예측한다.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
"이상 소견이 발견되었습니다."
회사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았다. 위에 용종이 있다고 한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구글에 검색하기 시작했다. 위 용종, 위암 확률, 생존율...
검색할수록 불안해졌다. 잠도 안 왔다.
2주 후 재검사.
"아, 이건 문제없는 거예요. 정기적으로 검진만 받으시면 됩니다."
의사의 한 마디에 2주간의 공포가 사라졌다.
알면 통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는 게 독이었다. 불확실성이 확실한 공포로 바뀐 순간.
소크라테스는 "무지의 지"를 말했다.
모르는 걸 아는 것. 하지만 우리는 모르는 게 불안해서 자꾸 알려고 한다. 그리고 안 결과가 더 불안하다.
고등학교 때 썼던 '10년 후 나에게'라는 편지를 찾았다.
"지금쯤 넌 대기업에 다니고 있겠지? 멋진 차도 있고, 예쁜 여자친구도 있을 거야."
순진했다.
미래가 그렇게 계획대로 흘러갈 줄 알았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노력만 하면 다 이룰 수 있을 줄 알았다.
현실의 나는?
중소기업 다니고, 차는 없고, 여자친구도 없다.
실패한 인생일까?
아니다. 그냥 다른 인생일 뿐이다. 18살의 내가 상상하지 못한 인생.
니체는 말했다.
"운명애(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것. 통제하려 하지 말고 춤추는 것.
어제, 결심했다. 날씨 앱을 지웠다.
매일 아침 확인하던 그 루틴을 깨뜨렸다. 시간별 날씨, 주간 날씨, 미세먼지, 자외선 지수...
대신 창밖을 봤다.
구름이 있다. 바람이 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비가 오면 맞을 수도 있다. 추우면 떨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어떻다고?
통제할 수 없는 걸 받아들이니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그랬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에 대한 태도를 선택하는 것뿐."
새벽 3시. 또 깼다.
예전엔 다시 자려고 애썼다. 양 세기, 명상 음악, 수면 유도제... 하지만 하면 할수록 더 깨어났다.
오늘은 다르게 했다. 그냥 일어났다.
차를 끓여 마시고, 책을 읽고, 일기를 썼다. 자려고 애쓰지 않으니 오히려 평화로웠다.
불확실성과 싸우지 않기.
잠이 안 오면 안 자도 된다. 내일 피곤하면 피곤한 대로 산다. 통제하려 하지 않으니 고통스럽지 않다.
라인홀드 니부어의 기도문이 떠올랐다.
"신이여,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오늘 아침은 안개가 짙었다.
10미터 앞도 안 보인다. 평소 걷던 길인데도 낯설다. 언제 무엇이 나타날지 모른다.
불안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 설렜다.
보이는 만큼만 걸으면 된다. 한 걸음씩. 전체 길을 볼 필요는 없다. 지금 내 발 앞만 보면 된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5년 후, 10년 후를 볼 필요 없다. 오늘 하루, 이 순간만 충실하면 된다.
안개는 언젠가 걷힌다.
그때까지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하지만 계속 걸으면 된다.
불확실성은 적이 아니다.
그저 삶의 본질일 뿐.
우리가 모든 걸 알고 통제할 수 있다면, 그게 과연 살 만한 삶일까?
오늘부터 일주일. '무계획 주간'을 보내기로 했다.
알람 없이 일어나기. 계획 없이 하루 보내기. 일기예보 확인하지 않기. 주식 차트 보지 않기.
불안하다. 하지만 궁금하기도 하다.
통제를 놓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정말로 혼돈에 빠질까? 아니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리듬을 찾을까?
에크하르트 톨레가 말했다.
"불확실성이 괜찮다고 느낄 때,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다."
그 가능성을 만나보고 싶다.
계획된 삶 말고, 살아지는 삶을. 통제하는 삶 말고, 춤추는 삶을.
안개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그런 삶을.
금요일, '도덕의 무게'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