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라는 지옥

관계의 역설

by 윤숨

4장. 타인이라는 지옥 - 관계의 역설

읽씹의 무게

"읽었는데 왜 답장 안 해?"

친구 J의 메시지다. 카톡 1이 사라진 지 3시간째. 별거 아닌 안부 메시지였는데, 답장할 타이밍을 놓쳤다. 이제 와서 답장하면 더 어색할 것 같아 그냥 두었는데...

"미안, 깜빡했어."

거짓말이다. 봤다. 읽었다. 그냥 답장하기 싫었다. 아니, 정확히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잘 지내?'라는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하나. 잘 지낸다고? 거짓말이다. 안 잘 지낸다고? 그러면 또 위로해야 하고, 무슨 일이냐고 물을 거고, 긴 대화가 이어질 거다.

그게 싫었다.

하지만 '읽씹'이라는 낙인은 더 싫다. 관계를 소홀히 하는 사람. 예의 없는 사람. 그런 평가를 받고 싶지 않다.

사르트르가 떠올랐다.

"지옥이란 다른 사람들이다."

그의 희곡 '출구 없는 방'에서 세 사람은 영원히 한 방에 갇혀 있다. 고문 도구는 없다. 서로가 서로의 지옥이 될 뿐.

우리의 카톡방도 비슷하지 않을까.

출구 없는 디지털 감옥.

생일 파티 초대장

대학 동기 모임 단톡방.

"이번 주 토요일 내 생일 파티 할 건데 다들 와!"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토요일은 유일한 쉬는 날.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고 싶다.

하지만 이미 다른 친구들이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가지!" "오랜만이다 ㅎㅎ" "기대된다~"

나만 안 가면 이상한 사람이 된다. '쟤는 왜 저래?' '우리랑 안 친한가?' 그런 수군거림이 들릴 것 같다.

"나도 갈게! 축하해"

보내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왜 거절하지 못할까? 왜 항상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까?

심리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증명의 법칙'.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게 안전하다는 본능. 하지만 그 안전이 나를 갉아먹는다.

부모님과의 전화

"언제 집에 오니?"

일요일 저녁 정기 통화. 어머니의 첫 질문은 항상 같다.

"다음 달에 갈게요."

"지난달에도 다음 달이라고 했잖아."

맞다. 매번 다음 달이라고 한다. 가고 싶으면서도 가고 싶지 않다.

집에 가면 질문 폭격이 시작된다.

연애는 하냐, 결혼은 언제 하냐, 직장은 괜찮냐, 돈은 모으고 있냐...

사랑하지만 버겁다. 걱정인 걸 알지만 숨막힌다.

"알았어요. 이번엔 꼭 갈게요."

또 거짓말을 했다.

레비나스는 말했다.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윤리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때로는 그 얼굴이 너무 무겁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회사 동료와의 거리

"우리 친하잖아."

김 대리가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그리고 부탁이 이어졌다. 주말에 이사를 도와달라고.

친하다?

매일 같은 사무실에서 8시간을 보낸다. 점심도 같이 먹고, 가끔 술도 마신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친한가?

내 진짜 고민을 아는가? 내가 새벽에 왜 잠 못 드는지 아는가?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아는가?

모른다. 나도 그를 모른다.

우리는 그저 '동료'다. 함께 일하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다.

"그래, 몇 시에 갈까?"

또 한 번의 주말이 사라졌다.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가 생각났다. 추운 겨울, 고슴도치들은 따뜻함을 위해 서로 가까이 간다. 하지만 너무 가까우면 가시에 찔린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찾아 떨어진다. 하지만 다시 춥다.

우리도 그렇다.

외로워서 가까이 가지만, 가까우면 상처받는다. 그래서 거리를 두지만, 다시 외롭다.

연애의 딜레마

"우리 사귄 지 100일인데 뭐 할까?"

전 연인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100일, 200일, 300일... 매번 기념일마다 뭔가를 해야 했다. 선물을 주고, 특별한 데이트를 하고, SNS에 인증샷을 올리고.

사랑해서였을까? 아니면 연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였을까?

"나는 네가 좋은데, 왜 자꾸 나를 증명하라고 해?"

어느 날 폭발했다. 그리고 이별했다.

하지만 혼자가 되니 또 외롭다.

데이팅 앱을 깔았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서도 또 그런 관계가 시작되는 게 두렵다.

보부아르는 말했다.

"진정한 사랑은 서로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구속한다.

SNS라는 무대

인스타그램을 연다.

행복한 커플 사진. 화목한 가족 사진. 즐거운 친구들과의 파티.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 모두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다.

나만 혼자인 것 같다.

하지만 안다. 저것도 연출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관계라는 걸.

내 피드도 마찬가지다.

친구들과 찍은 즐거운 사진들. 하지만 그 뒤의 어색한 침묵은 올리지 않는다. 가족과의 화목한 저녁. 하지만 그 전의 말다툼은 올리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배우다.

관계라는 무대 위에서 각자의 역할을 연기한다.

진짜 관계는 어디에 있을까?

고독의 선택

"혼자 있고 싶어."

가끔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은 걱정한다. 무슨 일 있냐고, 우울한 거냐고.

아니다. 그저 혼자 있고 싶을 뿐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다. 기대에서, 의무에서,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다.

릴케는 말했다.

"고독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고독을 병리적으로 본다. 혼밥, 혼술, 혼영... '혼자'라는 단어 앞에는 항상 연민이 따라붙는다.

정말 그럴까?

어쩌면 진정한 관계는 고독을 견딜 수 있는 사람들끼리만 가능한 건 아닐까. 혼자서도 충분한 사람들이 만날 때, 비로소 진짜 만남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새벽 4시의 메시지

또 잠이 안 온다.

핸드폰을 봤다. 새벽 4시. 이 시간에 깨어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카톡 목록을 내린다. 마지막 접속 시간들.

'3시간 전', '5시간 전', '어제'...

그러다 발견했다. '1분 전'.

순간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졌다. '너도 못 자니?' 하고.

하지만 보내지 않았다.

새벽의 고독은 나눈다고 덜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서로의 고독을 확인할 뿐이다.

대신 창밖을 봤다.

저 불 켜진 창문들. 저마다의 이유로 잠 못 드는 사람들. 우리는 같은 도시, 같은 시간을 살지만 각자의 지옥에 갇혀 있다.

그래도...

그래도 어딘가에 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건,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것.

그게 어쩌면 우리가 맺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관계가 아닐까.

내일의 실험

내일은 조금 다르게 해보려 한다.

읽씹도 해보고, 초대도 거절해보고, 혼자 밥도 먹어보려 한다.

죄책감 없이. 미안함 없이.

사르트르가 '지옥은 타인'이라고 했지만,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

그렇다면 나는 선택할 수 있다.

언제 가까이 갈지, 언제 거리를 둘지. 언제 함께할지, 언제 혼자일지.

타인이 지옥일 수도 있지만, 그 지옥에서 나올 수 있는 것도 나다.

완벽한 관계는 없다.

다만 정직한 관계가 있을 뿐.

서로의 고슴도치 가시를 인정하면서도, 가끔은 따뜻함을 나누는 그런 관계.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인간으로서.

수요일, '불확실성의 안개'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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