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를 넘어서
"아, 월요일이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월요일 새벽은 유독 무겁다.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을 본다.
'이걸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출근, 회의, 보고서, 퇴근. 그리고 다시 월요일.
시시포스가 떠올랐다.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면 다시 굴러떨어진다. 영원히 반복되는 형벌.
우리의 일상과 뭐가 다른가?
카뮈는 말했다. "시시포스는 행복하다."
정말?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그가 행복하다고?
하지만 카뮈의 설명을 읽다가 멈췄다.
"바위를 다시 밀러 내려가는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운명을 직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 순간 그는 자유롭다."
작년에 산 일기장을 꺼냈다.
1월 1일 - "올해는 매일 일기 쓰기!" 1월 2일 - "오늘도 평범한 하루" 1월 3일 - "특별한 일 없음" 1월 7일 - "일기 쓸 게 없다"
그 뒤로는 공백.
쓸 게 없어서? 아니다. 쓸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매일이 똑같으니까. 특별할 게 없으니까.
하지만 정말 그럴까?
오늘 아침 커피 맛은 어제와 달랐다. 지하철에서 본 노을은 처음 보는 색이었다. 동료가 건넨 "수고했어"는 유독 따뜻했다.
작은 순간들.
놓치고 지나간 의미들.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에서 깨달았다는 것.
"모든 것을 빼앗겨도 한 가지는 남는다. 어떤 태도를 취할지 선택할 자유."
6개월 전, 책상 위에 화분을 놨다.
처음엔 열심히 물을 줬다. 하지만 바빠지면서 잊었다. 잎이 누렇게 변했다. 죽은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보니 작은 새싹이 나 있다.
순간 울컥했다.
이 작은 생명이 포기하지 않았구나. 척박한 사무실에서, 무관심 속에서도.
나는?
나는 이미 포기한 게 얼마나 많은가. 꿈, 열정, 관계...
화분에 물을 줬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 화분처럼. 작은 의미라도 키워가자고.
니체가 말했다.
"삶의 의미를 아는 자는 그 어떤 것도 견딜 수 있다."
거창한 의미가 아니어도 된다. 이 화분을 살리는 것. 그것도 의미다.
야근하고 집에 가는 길. 배가 고팠다.
편의점에 들어갔다. 김밥 하나를 집었다. 2,500원.
계산대 앞에서 잠깐 멈췄다.
'이게 내 저녁이라니.'
서글펐다. 화려한 레스토랑도 아니고, 집밥도 아니고. 편의점 김밥이라니.
하지만 먹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따뜻하다. 맛있다. 배가 부른다.
이 순간, 이 김밥이 나를 위로한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가 떠올랐다.
진짜 쾌락은 사치가 아니라 고통의 부재라고. 배고픔이 사라지는 것, 그것이 행복이라고.
친구가 보여준 버킷리스트.
스카이다이빙 하기
오로라 보기
에베레스트 등반
남극 여행
"너는?"
"나는... 없어."
초라해 보였다. 꿈도 없는 사람처럼.
하지만 집에 와서 생각해봤다.
왜 특별한 것만 의미 있다고 생각할까? 왜 일상은 버킷리스트에 들어가지 못할까?
엄마와 차 한 잔 마시기
좋아하는 책 다시 읽기
새벽 산책하기
일기 쓰기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들.
하이데거는 말했다.
"일상성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라."
특별한 곳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언젠가가 아니라 오늘.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가 발견했다.
할머니가 10년 전에 보낸 편지.
"공부 열심히 해라. 밥은 제때 먹고. 아프지 말고."
단순한 문장들. 특별할 것 없는 당부.
하지만 지금 읽으니 다르다.
할머니는 3년 전에 돌아가셨다. 이제 이런 편지를 받을 수 없다.
'밥은 제때 먹고.'
이 평범한 문장이 왜 이렇게 소중하게 느껴질까?
의미는 거창한 데 있지 않다.
누군가 나를 걱정해준다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소중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 아닐까.
불면증을 달리기로 해결해보기로 했다.
새벽 5시. 아무도 없는 공원.
처음엔 힘들기만 했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팠다.
하지만 10분쯤 지나자 리듬이 생겼다.
발걸음, 호흡, 심장박동.
모든 게 하나의 리듬으로 움직인다.
'살아있다.'
단순하지만 강렬한 깨달음.
사르트르는 말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먼저 존재하고, 그다음에 의미를 만든다고.
달리는 이 순간, 나는 존재한다. 의미는 그다음이다.
아니, 어쩌면 이 달리기 자체가 의미일지도.
오늘도 새벽에 깼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다. 불안하지 않다.
일어나서 차를 끓이고, 일기를 쓰고, 창밖을 본다.
도시가 깨어난다. 불빛들이 하나둘 켜진다.
저 불빛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다. 누군가의 의미다.
거창한 의미를 찾으려 했던 내가 우습다.
의미는 찾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였다. 매일매일, 작은 선택들로.
일어나기로 선택하는 것. 누군가에게 인사하기로 선택하는 것. 화분에 물 주기로 선택하는 것. 일기 쓰기로 선택하는 것.
이런 선택들이 쌓여 의미가 된다.
벽돌 하나하나가 모여 건축물이 되듯.
프랭클이 마지막으로 한 말.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맞다. 우리는 의미를 추구한다. 하지만 그 의미는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있다.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타자 치는 손가락 끝에서, 따뜻한 차 한 모금에서.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그것이 전부다.
거울 앞의 나르시스부터 의미를 찾는 시시포스까지.
답을 찾았나?
아니다. 여전히 미로 속이다.
하지만 이제 안다.
미로를 빠져나가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걸. 미로 속을 걷는 것 자체가 삶이라는 걸.
때로는 막다른 길을 만나고, 때로는 되돌아가고, 때로는 같은 곳을 맴돈다.
그래도 괜찮다.
중요한 건 계속 걷는 것. 한 걸음씩, 자기 속도로.
그리고 가끔은 멈춰 서서 둘러보는 것.
이 미로가 나름 아름답다는 걸 발견하는 것.
동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깨닫는 것.
새벽에 잠 못 드는 당신.
당신도 이 미로 속 어딘가에 있겠지.
혼자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미로를 걷고 있다.
그리고 그 걸음 하나하나가 의미다.
계속 걸어가자.
내일도, 모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