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삶을 살지 않기
"너희들 연봉 얼마야?"
술 몇 잔 들어가자 나온 질문. 순간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나는 작년에 과장 달았어. 연봉도 20% 올랐고." "우리 회사는 스톡옵션 줘서..." "나는 최근에 강남에 집 샀어."
하나둘 자랑이 시작됐다. 나는 조용히 소주잔만 비웠다.
중소기업 대리. 월세. 중고차.
말할 게 없었다. 아니, 말하고 싶지 않았다.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자리를 벴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초라해 보였다.
'나는 왜 이렇게 뒤처진 걸까?'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새벽 3시. 또 잠이 안 온다.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 이론이 떠올랐다.
우리는 스스로 욕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한다고.
그래서일까? 친구의 연봉이 부러운 게 아니라, 친구가 가진 '성공'이라는 이미지가 부러운 건지도.
스크롤을 내린다.
선배의 유럽 여행 사진. 후배의 미슐랭 레스토랑 인증샷. 동기의 신혼집 집들이. 친구의 명품백 선물.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 모두가 나보다 잘 사는 것 같다.
내 피드를 본다.
작년 제주도 여행 사진이 마지막이다. 그것도 회사 워크숍.
'올릴 게 없네...'
그러다가 깨달았다.
나도 제주도 사진을 올릴 때는 행복한 부분만 골라서 올렸다. 비행기 연착, 숙소 불만, 동료와의 갈등은 올리지 않았다.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
최고의 순간만 편집해서 올리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 편집본과 내 다큐멘터리를 비교한다.
불공평한 게임이다.
"같은 나이, 같은 직무 평균 연봉"
호기심에 검색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평균보다 23% 적었다.
순간 내 5년이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열심히 일했는데, 야근도 많이 했는데.
댓글을 읽어봤다.
"이 나이에 이 연봉이면 인생 망한 거 아님?" "차라리 이직을 하세요." "노력이 부족한 거죠."
가슴이 먹먹해졌다.
하지만 잠깐, 연봉이 내 가치를 결정하는가? 숫자가 내 삶의 질을 말해주는가?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는데, 우리는 "남들과 비교해서 너를 알라"로 해석한다.
"우리 아이 영어 학원 어디 보내세요?"
조카 때문에 들어간 학부모 방. 하루에도 수백 개의 메시지.
"저희는 강남 ㅇㅇ학원이요. 원어민 수업이라..." "우리 애는 국제학교 준비하고 있어서..." "수학은 선행 얼마나 하셨어요?"
읽다가 숨이 막혔다.
6살 아이들이 벌써 경쟁이다. 아니, 부모들의 대리 경쟁이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학원 없이도 행복했던.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비교의 감옥에 갇힌다.
"옆집 애는 벌써 한글 뗐대." "너희 반 1등은 영어로 일기 쓴대."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행복은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다."
정말 그런가?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만든 건가?
"여름 준비 하세요?"
트레이너의 인사. 거울에 비친 내 몸을 봤다.
옆 런닝머신의 남자. 식스팩이 선명하다. 앞쪽 스쿼트랙의 여자. 완벽한 S라인이다.
나는? 그냥... 평범하다.
'운동한 지 6개월인데 왜 변화가 없지?'
SNS를 켰다. #운동스타그램 #바디프로필
비포 애프터 사진들. 3개월 만에 극적인 변화들.
내가 부족한 건가? 더 열심히 해야 하나?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남의 몸과 비교하지? 어제의 나와 비교하면 되는데.
6개월 전보다 계단 오를 때 덜 숨차다. 무거운 짐도 거뜬히 든다. 무엇보다 기분이 좋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또 잠 못 드는 새벽.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천장을 보며 생각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아니면 내가 만족하는 삶?
키르케고르가 떠올랐다.
"비교는 절망의 시작이다."
맞다. 비교할 때마다 행복해진 적이 없다. 이기면 우월감, 지면 열등감. 둘 다 독이다.
진짜 문제는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 남의 시선으로 나를 평가하고, 남의 기준으로 나를 재단한다.
내일부터 한 달. '비교 금지' 실험을 하기로 했다.
규칙:
SNS 타인 피드 보지 않기 (내 것만 올리기)
연봉, 집값 등 숫자 비교 하지 않기
"남들은..." 으로 시작하는 생각 멈추기
하루 한 번 '나만의 작은 성취' 기록하기
쉽지 않을 거다.
비교는 습관이 됐으니까. 사회가 요구하니까. 남들도 다 그러니까.
하지만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니까. 조연도, 엑스트라도 아닌 주인공.
비교의 감옥에서 나와 나만의 무대에 서는 것.
그게 진짜 자유 아닐까?
오늘 아침, 출근길에 깨달았다.
지하철에서 모두가 뛰어간다. 환승하려고. 나도 뛰었다. 그런데 왜 뛰는지 몰랐다. 5분 뒤에 또 올 텐데.
멈춰 섰다. 천천히 걸었다.
뒤에서 사람들이 치고 지나간다. 괜찮다.
내 속도로 간다. 내 리듬으로 산다.
그것만으로도 작은 혁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