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대하는 생각 한 조각을 얻고서…
요즘 내 머릿속이 유난히 복잡했다. 내가 욕심을 또 부리는 건가? 삶에 집착하는 건가? 하고 스스로 되돌아보고 있는 와중에 이 책을 만났다. 복잡미묘한 나의 심리 상태를 설명하는 것처럼 그림이 먼저 확 눈길을 끌었다. 사람들과 동식물이 얼기설기 엮어져 있고, 표정들은 죄다 기괴하다. 한국에 큰 사찰에 가면 볼 수 있는 사천왕상의 이미지와 닮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책 제목은 ‘그림자의 안뜰’로 번역되었다. 책이 무슨 내용일지 전혀 상상이 잘 안되어 더 호기심을 자극했다.
우물가에서 늘 울고 있는 할머니가 한 분 계신다. 손자는 할머니 곁에서 그녀를 지킨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팔찌 하나를 건네셨고, 그건 돌아가신 네 아버지의 것이라고 말한다. 할머니는 자식이 죽어 자기 머릿속에 묻었다고 한다. 죽은 아들은 그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다시 살아났고, 그녀의 머리는 매우 커지기 시작해서 늘 몸이 좋지를 않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밭으로 일하러 갔을 때 그녀의 머리가 깨지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그 속에 살고 있던 아버지가 밖으로 나온다. 손자는 아버지에게 팔찌를 돌려주지 않으려고 한다. 이게 없으면 다시는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죽은 자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못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꿈’이라고 부르는 ‘안뜰’에서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을 찾아가 삶을 축하하게 되는 거라고 알려주며 떠난다.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유가 크게 없다. 주변에서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듣거나 초상 치르는 일을 겪게 되면서 한 번씩 생각해보기는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본 것처럼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 짧고 굵게 알게 된 경우는 잘 없었던 것 같다. ‘죽은 사람을 기억하면 절대로 죽지 않는다’라는 문구는 마흔이 넘은 내게도 깊은 울림이 있다. 이제 앞으로는 ‘죽음’에 대해 좀 더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그 말을 들을 수도 없지만, 그를 기억하는 우리의 말과 행동 속에서 계속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친구의 아버지께서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 친구의 하나뿐인 아들 녀석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할아버지께 보낸 메시지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할아버지, 사랑합니다.”
“나중에 봐요.”
우리가 돌아가신 분의 말투, 목소리를 기억하고 그분의 삶의 방식을 기억하고 따르며 살아간다면, 아직도 내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림책 한 권에서 간단하지만 심오한 삶의 무기를 하나 얻은 것 같다. 또한 이곳 아프리카 사람들이 가진 인간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지혜를 짧게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 같아 기쁘다. 복잡한 심경은 어느새 뒤로 하고, 그저 지금 오늘 살아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