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벨라 - 비의 이야기

슬픔과 기쁨에 충실한 삶을 위해…

by 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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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이 울고 있습니다. 그녀는 너무 슬퍼서 가슴이 아픕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다가와 말씀하십니다. 슬픔은 삶의 일부라고 말입니다. 슬프게 울고 있는 여인은 바로 ‘비의 여신’ 옴벨라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비’는 비의 여신이 운 흔적이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러면 비의 여신은 왜 슬퍼서 우는 걸까요?

우리가 살다가 보면 슬픔의 감정에 자주 무뎌지는 것 같습니다. 바쁜 일과 속에서 어쩌면 조그마하다고 느끼는 슬픔은 가벼이 무시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옴벨라의 아버지 말씀처럼 슬픔은 삶의 일부가 되어 내 몸에 알알이 스며들어버린 걸까요? 밤하늘 달의 모양이 매일 변하는 것처럼 세상은 때로는 겨울이고, 때로는 여름입니다. 누구도 기쁘기만 할 수도 없고, 슬프기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웃을 때는 웃고, 울고 싶을 때는 울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해 보이는 원리가 나이가 들수록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옴벨라가 한동안 계속 우는 바람에 바다가 되었습니다. 물이 너무 짭니다. 걱정하신 아버지께서는 그녀의 손을 모아 꽃과 나무, 동물 등 지구상에 신선한 물이 필요한 생명체들을 보여주십니다. 그녀는 잠시 미소를 지으며 신선한 물을 흘립니다. 이제 그녀는 행복합니다.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땅이나 강, 호수에 비가 오면 그녀가 행복하다는 뜻이고, 그 비가 바다에 내리면 그녀는 슬픈 거라고 말입니다. 오늘은 옴벨라가 어디에서 울고 있는 걸까요?

해맑은 어린아이처럼 슬프면 마음껏 슬퍼하고, 기쁘면 마음껏 기뻐하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척, 기쁘지만 기쁘지 않은 척하며 나 스스로에게조차 가끔은 가식적으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봅니다. 작은 슬픔을 과장하여 너무 힘들었다며 남에게 부풀려 말하지도 않고, 큰 기쁨을 축소하여 별일 아닌 듯이 눈치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조금 슬펐으면 조금만 슬퍼하고, 조금 기쁘면 조금이라도 기뻐하면서요. 그냥 딱 그 감정 그대로의 무게만큼만 슬퍼하고 또 기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슬픔도 기쁨도 모두 삶의 일부입니다. 즉, 무한하지 않은 삶처럼 우리의 감정도 영원하지 않고 제한적일 겁니다. 이렇듯 우리의 유한한 감정을 좀 더 너그러이 수용하는 태도로 살면 훨씬 좋지 않을까요? 지금 내 안에 슬픔이 있다, 또는 기쁨이 있다고 하는 식으로 그저 지긋이 바라봐준다면 내 감정은 억눌리지 않고 살아 숨 쉬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내가 이 순간 슬프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지금 기쁘다고 느끼는 것 또한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면 내 삶을 더 적극적으로 살고자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더 적극적으로 슬퍼하거나 더 열정적으로 기쁜 감정을 만끽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려면 나의 감정의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여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의 감정도 잘 헤아려주면 좋겠습니다. 나와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 바다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건지, 강이나 호수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건지를 늘 살펴보고 돌보는 심정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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