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로 버는 돈의 매력
CU(그때는 훼미리 마트), 학교 과사무실, 무용 레슨, 요가, 집 근처 할리스.
대학시절엔 시간 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했다.
첫 번째 아르바이트는 주말 오전 편의점 아르바이트.
대학입학 후 신입생의 학교생활은 생각보다 여유로웠고 집 근처 편의점에 붙은 '주말 오전 아르바이트생 모집'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집에서 3분 거리.
9시부터 3시.
한 달 동안 일하고 받은 15만 원가량의 첫 월급은 신기하기만 했고, 처음 돈을 번 기념으로 빵집에 가서 쟁반 가득 빵을 담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학교 생활로 주말이 바빠질 때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고 가까운 곳으로 눈을 돌렸다.
동생이 둘이나 있던 나는 장학금이 필수였다. 학점 관리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싶던 차에 과사무실 근로학생을 뽑는 공지가 났다. 수업 중간 공강 시간마다 과사무실에서 조교님들의 일을 돕거나 교수님의 심부름을 하는 아르바이트이다.
지금 기억으로는 한 학기 당 70만 원 정도의 돈을 받은 것 같다.
과사무실에서 일하면 좋은 점이 많았는데 교수님 과도 가까워질 수 있었고 같이 일하는 조교에게 새로운 소식도 빨리 접할 수 있었다. 과사무실에서 일하던 중 교수님 추천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장학금을 받기도 했으니 과사무실 근로는 일을 하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았다.
기회가 닿으면 레슨을 했다.
경기도 끝에 위치한 발레 학원이었는데 부전공으로 한국무용을 가르쳤다.
지하철을 한시 간 넘게 타야 했는데 편의점에서 산 카페라테 하나와 읽을 책 한 권이면 지루하지 않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당을 지나 내려갈수록 지하철 안은 한산해졌고, 창 밖으로 바깥 풍경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순간이 좋았다.
그렇게 학생들을 만나고 레슨을 열심히 하고 집에 오는 길엔 뭔지 모를 충만함이 마음에 가득 찼다.
평일엔 과사무실 아르바이트와 레슨, 방학이 되면 주말 오전 집 근처 할리스.
아르바이트로 번 돈과 용돈을 모으면 대학생활에 필요한 돈을 쓰고 조금씩 저금까지 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이 모였다.
부모님께 받는 용돈이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할 정도는 아니었던 나는 왜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했을까.
단순하게는 내가 번 돈을 쓰는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첫 월급을 받고 가족들에게 줄 빵을 쟁반 가득 담던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엄마라면 쟁반에 쉽게 담지 않을 피칸(호두가 아니라 무려 피칸) 파이를 겁 없이 다섯 조각을 담았고, 얇은 햄과 치즈가 여러 장 들어있는 바게트 샌드위치를 담으며 마냥 좋았던 기분.
가끔 동생들에게 용돈을 주거나 함께 분식을 사 먹을 때의 그 기분,
아르바이트로 조금 더 돈을 벌게 되었을 땐 일 년에 한 번 보고 싶은 뮤지컬 공연을 관람했다.
2002년 첫 뮤지컬을 시작으로 일 년에 한 번 제일 좋은 자리에서 공연을 보는 기쁨을 누렸다.
그날만큼은 혼자가 좋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을 입고 공연 전 카페에 가서 커피도 한잔 마셨으며
공연 팸플릿도 뮤지컬 넘버가 담겨있는 CD도 고민 없이 샀다.
용돈 외에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되었고, 그 돈을 가족에게 또는 나에게 쓰는 것은 특별한 행복을 느끼게 해 주었다.
대학졸업 후 아르바이트에서 월급을 받게 되자 이 기분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직업을 갖고 더 큰돈을 벌게 되면서 뮤지컬 보는 날은 더 설렜을까.
마음은 여전했지만 뮤지컬 좌석은 한 등급 내리게 되었다.
한 달에 한번 월급을 받으며 그 돈으로 나의 삶을 운영해야 하는 본격적인 어른이 되었을 땐 세상물정에 더 밝아져야 했으며, 없어도 괜찮을 소소한 사치보다는 가성비를 중시했고, 가끔 동생들에게 용돈을 줄 때면 그전엔 하지 않던 ‘아껴 써’를 얹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번 월급을 번외의 돈이라고 생각하게 해 주신 부모님의 노고를 깨닫게 되었다.
나와 동생들이 자라면서 느꼈던 ‘우리 정도면 보통 아냐?’의 '보통'을 위해 부모님은 얼마나 보통 아래의 힘듦을 견디셨을까.
번외의 돈이 될 수 없는 월급을 받는 어른이 되면서 깨달았다.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 후 나도 다시 일을 시작했다.
처음 하는 일은 많이 힘들었고 왠지 모를 서글픔이 피어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뒷바라지를 해주시던 부모님을 생각한다.
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를 생각한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남편을 생각한다.
방학이라 집에서 나가는 시간이 겹칠 때가 많다.
아이는 학원을 가고 나는 일하러 가면서 인사한다.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하다가 저녁때 만나자
인사를 나누고 마트로 향하는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아니, 꽤 좋다.
사진은Diana Polekhina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