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족으로부터의 독립
남편이 남자친구였던 시절 결혼할 마음이 생기자 각자의 어머니를 먼저 만났다.
'엄마의 허락'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할 것 같아서.
처음 만난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매우 좋은 분이었다.
인자하고 다정하신 성품.
물론 결혼 후 어머니도 여전히 좋은 분이셨다.
하지만 관계가 주는 힘이랄까.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관계를 맺는 것은 조금은 다른 일이기도 했다.
남편의 여동생들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시누와 올케로 만나면 '좋은 사람'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며느리란 이유로 결혼하고 첫 명절에 남편 작은아버지에게 며느리 도리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야 했으며
과일 깎는 법이 틀렸다고 비난을 받았다.
어느 날엔 시어머니가 나를 따로 불러 남편의 사촌동생들을 잘 챙기라고 당부하셨다.
남편은 세명의 여동생이 있고 사촌들은 네 명이 더 있다.
"어머니 오빠랑 저 친동생만 합쳐도 다섯이에요.
오빠사촌동생 제사촌동생을 까지 챙겨요?"
'제 사촌동생'이란 단어에 어머니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셨다.
어머니의 계산에 나의 사촌동생은 없었겠지.
내 사촌도 결혼식 때나 보는데
내가 뭐라고, 서른 넘은 남편의 사촌들을 갑자기?
좋으셨던 시어머니는 시누이들이 결혼을 하자 명절 때마다 이 말씀을 하셨다.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니 친정에 미리 다녀와라.
나는 몇 년을 참다 말한다.
시누이들이 친정 올 때는 저도 친정에 가야 한다고.
가족이 모이려면 명절 아닌 날 시간을 맞추겠다고.
이런 말들을 하기까지 정말 오랜 고민과 고통과 싸움이 있었다.
어머니는 가족과 함께 하고 싶은 좋은 마음일 텐데 나는 상처를 받을까.
시누이가 시댁에서 친정으로 늦게 출발하는 걸 못마땅해하던 시어머니는
이미 내가 알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물론 각자의 입장이 있다.
명절이 끝나면 카페엔 삼삼오오 모여 며느리에 대해 시댁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모습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결혼 안 한 미혼일지라도 친구의 시댁 이야기엔 같이 뒷목을 잡지만 나의 새언니는 늘 못마땅할 수도 있다.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 생각해 보면 각자의 입장이 있고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남편이라고 다르지 않겠지.
나와 결혼은 했지만 갑자기 생긴 관계인 나의 부모님이나 동생을 자신의 가족처럼 느낄 수 있겠는가.
결혼 후 몇 년은 배우자의 원가족이 만들어놓은 장손 며느리, 큰 사위 자리에 들어가 애를 쓰는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우리는 원가족에서 독립하려 노력했다.
다행히 남편과는 그런 부분이 잘 맞았다.
일단 우리가 선택하고 만든 가족을 일 순위에 놓음으로써 불필요한 갈등이 사라졌다.
원가족이 만들어놓은 형식과 의무를 벗고 나니 그 자리에 무엇이 남을까.
우선 그들에 대한 사사로운 감정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여유가 생기니 조금의 이해가 생기고.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도 생겼다.
부모님 세대의 삶을 존중하지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중 부당한 것도 있지만 그것들이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나의 부모일 때와 배우자의 부모일 때의 이해의 폭이 다르다는 것도 인정하게 되었다.
시부모님의 환상은 깰 수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의 태도를 확실히 하는 것이다.
형식적이고 벅찬 의무를 내려놓고 내가 선택한 가족을 일 순위로 놓는 것.
이렇게 감정적으로 독립하기까지는 남편의 도움이 컸다.
며느리의 의무보다 우리 세 가족이 중요하다고 지지해 준 것이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나의 원가족과 남편의 관계를 더 세심하게 지켜보고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이해와 존중은 아이러니하게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볼 때 생겼다.
우리는 가족이 될 수 있을까.
배려와 존중이 담긴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다면
꼭 가족으로 규정짓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결혼은 너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얽혀 있는 것 같아요.
문제는 그 사랑들이 하나같이 다 진심이라는 거죠.
알고 보면 하나같이 다 이쁜 마음인 건데 그런데 이쁜 것들도 얽히고설키면 그게 어떤 이쁜 모양이었는지 알아볼 수가 없어지니까.
그게 원래 무슨 사랑이었는지 알 수가 없어지니까.
이번생은 처음이라 15화 중
P.S
명절 잘 보내셨나요?
저는 이러한 태도를 갖게 되기까지 십 년 정도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경험한 시부모님과 시댁의 형태는 하나라 제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은 거고요.
더 현명하게 힘듦을 극복하신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해요.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