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달과 그을음

by 윤지안


그믐달은 언제나 조용히 사라지는 법을 알고 있다.
끝내 스스로를 비추지 않으면서도,
어둠의 가장자리에 작은 흔적을 남긴다.
나는 그 흔적을 바라보며

오래전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을 다시 떠올린다.
빛을 잃어갈 때,

우리는 무엇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을까.

나는 매일 밤 창가에 앉아 도시의 불빛을 바라본다.
불빛은 유난히도 많지만,
그 불빛들 사이로 보이지 않는 그을음이 떠돈다.
건물의 틈 사이, 도로 위 매캐한 열기 위로,
사람들의 숨과 마음 사이에서도.
그을음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법이지만,
한 번 몸에 스며들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마음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을 만큼 작게 그을면서,
어느새 지워지지 않는 모양을 남긴다.

나는 그믐달처럼 말수가 줄어들고,
그을음처럼 까만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 때가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우울이라 부르고,
지나가는 감정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나는 가끔 그 감정이

나를 더 정확하게 말해주는 것 같아 멈칫한다.
빛을 잃어가는 습관 속에, 오히려 나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믐달의 밤은 어둡다.
하지만 그 어둠은 완전한 소멸이 아니다.
다음 날이면 아주 얇은 초승달로 다시 나타나기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그을음 또한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지만,
오래 바라보고 손끝으로 만지다 보면
어떤 모양으로든 굳어간다.
때로는 그 모양이 나를 위로하기도 한다.
‘이만큼 버텼다’는 흔적으로.

그래서 나는 이제 그믐달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빛이 없을 때 나는 오히려 더 솔직해지고,
제 모습 그대로 잠시 머무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을음이 스민 마음 역시 쉽게 닦아내려 하지 않는다.
그을음은 나를 더 이상 더럽히지 못한다.
오히려 내가 살아온 시간의 결과물로,

하나의 질감이 된다.

오늘 밤도 하늘에는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느다란 그믐달이 떠 있다.
그리고 창문 아래로는 검은 그을음을 머금은 도시가 흐르고 있다.

나는 두 가지 어둠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한다.
어쩌면 빛보다 어둠이,
나를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믐달처럼 조용히,
그을음처럼 느리게,
나는 오늘도 나의 모양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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