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침묵 위의 푸른 속삭임
시놉시스: 〈눈 속의 나비〉
한겨울, 고립된 산골 마을.
기자는 매년 크리스마스에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 —
‘눈 속의 나비 현상’ — 을 취재하러 찾아온다.
영하의 눈보라 속에서 나비가 날아다닌다니,
그것은 미신 같고도 매혹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그곳은 기자 하린에게
어린 시절의 악몽이 깃든 장소였다.
열 살 때,
그녀는 눈 덮인 교회 앞에서 동생 유나를 잃었다.
그날 이후, 꿈속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속삭임.
“언니, 나 여기 있어. 날아갈 수 있게 해 줘.”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유난히 춥고, 나비는 유난히 많다.
하린은 점점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눈 속에서 유나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녀는 마을 사람들이 숨겨온 비밀을 마주한다.
나비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죄책감이 만든 환영,
그리고 죽은 아이들이 인간의 기억에 기생해 되살아나는 저주였다.
---
눈이 내리는 소리라는 게 있다면,
아마 이런 것이리라 —
한없이 부드럽고,
그러나 귓속 깊이 파고드는 속삭임 같은 소리.
하린은 그 소리에 눈을 떴다.
창밖은 새하얗게 뒤덮여 있었고,
창문 틈으로 푸른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 나비?”
눈보라 속에서 분명히 무언가가 날갯짓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이번 기사는, “겨울 나비의 기적.”
하지만 그녀는 안다.
그건 기적이 아니다.
그건 유나의 부름이다.
---
<눈 속의 나비>
1. 교회의 그림자
마을 사람들은 반갑게 그녀를 맞았다.
“기자님, 또 오셨네요. 이번에도 기사 쓰시려고요?”
그녀는 웃었다.
“네. 이번엔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어서요.”
그 ‘가까이’는 단순한 취재가 아니었다.
그녀는 동생이 사라진 교회 뒤편 묘지로 향했다.
그곳엔 이름 모를 무덤들이 눈에 덮여 있었다.
그 중 하나엔 나비 모양의 조각이 놓여 있었다.
파랗고, 섬세한 돌조각.
그것을 본 순간, 귓가에 속삭임이 스쳤다.
“언니, 나 여기 있어.”
하린은 숨을 삼켰다.
손끝이 차갑게 굳었다.
---
2. 나비 축제의 밤
자정.
교회 종소리가 울리자,
하늘에서 수백 마리의 나비가 떨어졌다.
그들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펄럭였으나,
가까이서 보면 눈송이와 살점이 섞여 있었다.
하린은 숨을 죽였다.
그녀의 발 밑에서 파란빛의 나비가 꿈틀거렸다.
그 나비의 날개에는 작은 아이의 손톱자국이 있었다.
“유나...”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나비를 손에 쥐었다.
순간, 그 몸이 미세하게 따뜻했다.
그리고 나비의 머리에서, 또렷한 아이의 눈이 열렸다.
“언니, 왜 나를 두고 갔어?”
하린은 비명을 지르며 나비를 던졌다.
그러나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수십 마리의 나비가 교회 안으로 몰려들며
벽화를 뒤덮었다.
벽화 속 예수의 얼굴이 갈라지고,
그 속에서 푸른 날개가 피어올랐다.
---
3. 기억의 틈
그녀는 도망치듯 교회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곳엔 오래된 초상화와 의식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잊히지 않기 위한 의식’ — 아이들의 영혼을 봉인해 나비로 되살리는,
그 끔찍한 의식의 기록.
그녀의 어머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의식의 제물로 유나를 택함.”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녀는 그날 밤의 기억을 되살렸다.
유나는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하린이 손을 놓았다.
눈보라 속, ‘잠깐만’이라는 말과 함께.
그 후,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너 때문이야.”
“언니가 날 버렸잖아.”
속삭임은 점점 명확해졌다.
나비의 날개가 그녀의 시야를 뒤덮고,
그녀는 그 속에서 동생의 얼굴을 보았다.
“... 유나?”
“이제... 나비가 되자.”
---
4. 눈이 멎은 아침
다음날 아침, 교회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벽에는 푸른 나비들이 수천 마리 그려진 듯
붙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천천히 움직였다.
기자가 남긴 카메라에는
마지막 한 장의 사진이 남아 있었다.
눈 속에서,
푸른 날개를 단 여자가 웃으며 서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