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Ep.20 [소설] 공월(空月)

얼굴을 잃은 밤

by 윤지안


〈크리스마스의 악몽 : 공월〉
시놉시스

12월 24일,
정신과 의사 윤태하는 자살 환자들의 공통 환각인
‘공월(空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외딴 산장의 실험을 시작한다.
“달이 뜨지 않은 밤, 그런데 달빛이 내리던 밤.”
환자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말했다.

그는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심리적 현상을

‘관찰’하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빛은 점점 그의 내부로 스며든다.
기록과 기억, 주체와 관찰자가 뒤섞이며,
윤태하는 자신이 연구하던 ‘공월’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의 마지막 음성 기록엔 이렇게 남아 있다.

> “달은 밖에 있는 게 아니었다.
…그건 나의 빈 자리를 비추고 있었다.”

---

<크리스마스의 악몽 : 공월(空月)>

1. 귀향

12월 24일.
눈이 폭포처럼 쏟아지던 밤이었다.
윤태하는 서울에서 세 시간 거리의 폐산장에 도착했다.
십 년 전, 이곳은 ‘정신 병리학 실험소’였다.
그때 그는 보조 연구원으로 있었고,

‘공월 실험’의 첫 번째 기록을 맡았었다.
하지만 그 실험은 실패했다.
아니, 실패라고 부를 수조차 없었다.
그날 밤, 연구원 세 명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태하는 차문을 닫으며 혼잣말했다.
“이제는, 끝내야지.”

그는 연구를 이어가기로 했다.
아무도 밝히지 못한, 그 ‘달 없는 달빛’의 실체를.

---

2. 산장의 기록

산장은 그대로였다.
먼지와 곰팡이 냄새, 벽에 박힌 못,

얼어붙은 전등 스위치.
그는 발전기를 켜고 낡은 녹음기를 꺼냈다.

> “12월 24일, 오후 6시 13분.
개인 실험 기록 01.
주제: 공월(空月) 현상의 자각 단계 관찰.”


목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마치 누군가의 입을 빌려 말하는 듯했다.

책상 위엔 오래된 노트가 있었다.
겉표지에는 흐릿하게 적혀 있었다.
‘공월 실험 – 미완’

그는 노트를 펼쳤다.
첫 문장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 “달이 없는 밤에도, 달빛은 내렸다.
그리고 그 빛은 사람의 얼굴을 잃게 만든다.”

---

3. 불빛 없는 그림자

밤이 되자, 발전기의 불빛이 깜박였다.
태하는 문득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자신의 그림자가, 벽에 비친 것이 아니라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마치 누군가 천장 위에서 손전등을 비추는 듯.

그는 웃었다.
“시각 피로. 피곤한 탓이야.”

그때 라디오가 혼자 켜졌다.
잡음 속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 “달이 떴어요, 선생님.”


라디오 주파수는 00.00MHz.
존재하지 않는 채널이었다.

그는 창문을 열었다.
하늘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눈밭 위엔, 그림자 하나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

4. 일기장의 주인

다음 날 아침, 그는 어젯밤의 기록을 다시 확인했다.
그러나 녹음기 속의 목소리는 자신이 아니었다.
목소리는 분명 여자였다.

> “12월 24일, 오후 6시 13분.
개인 실험 기록 01.
주제: 공월 현상의 자각 단계 관찰.”


여자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
하지만 마지막 한 문장이 추가되어 있었다.

> “윤태하 박사는… 아직도 달을 보고 있다.”


그는 그 목소리를 알아챘다.
십 년 전, 실종된 연구원 중 한 명.
‘이현정.’

그의 손이 떨렸다.
그때 문득, 벽에 걸린 시계가 보였다.
초침이 멈춰 있었지만,

여전히 ‘똑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귓속을 때렸다.
‘똑… 딱… 똑… 딱…’

---

5. 공월의 노래

그날 밤, 그는 잠들지 못했다.
벽 너머에서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낮게, 그러나 분명하게.

> “Silent night… holy night…”


태하는 총을 들고 문으로 다가갔다.
문 아래로, 종이 한 장이 밀려들어왔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당신이 달을 보고 있나요,
아니면 달이 당신을 보고 있나요?”


그는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었다.
다만 하얀 달빛이 복도 끝에서 스며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 속에는, 이현정의 실루엣이 서 있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

6. 공허의 달

그는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자신의 얼굴이 있었다.
하지만 그 뒤, 창문에 달이 떠 있었다.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했는데도.

달빛은 차가웠다.
그러나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순간, 거울 속의 ‘그’가 미소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 “이제 알겠지?
달은 밖에 있는 게 아니야.”


거울이 산산이 부서졌다.
조각난 유리 속에는 수많은 달이 반사되었다.
모두 윤태하의 눈이었다.

---

7. 마지막 기록

> “12월 25일, 새벽 3시 33분.
공월은 달이 아니다.
그것은, 나다.”


그의 마지막 음성 기록이 끝난 뒤,
라디오에서는 한 문장이 반복되었다.

> “달빛은 늘 빈 곳을 비춘다.”


며칠 뒤, 경찰은 산장을 수색했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창문에는 손바닥 자국 하나가 찍혀 있었다.
완벽한 원형.
마치, 달처럼.


--------------------

<부록>


Ⅰ. 실험 보고서

윤태하 박사 / 개인 연구기록 (2025.12.24)
주제: ‘공월(空月)’ 환각군(幻覺群) 자각 실험
장소: 경기도 ○○산 폐산장 (구 정신병리학 연구소)

배경

최근 3년간 동일 증상을 보인 환자 5명:
모두 크리스마스 전야에 “존재하지 않는 달빛”을 목격한 후 자살.
그들은 공통적으로 다음의 문장을 남김.

> “달이 없는 밤, 그런데 달빛이 내렸다.”



가설

‘공월’은 시각적 환각이 아니라, 자기 인식의 결손이 시각화된 결과일 가능성이 있음.
즉, 뇌가 ‘자신의 부재’를 빛으로 투사함으로써 심리적 통일성을 유지하려는 방어기제.

실험 목표

고립 환경에서의 ‘공월’ 발생 시점 관찰

자각 전후의 뇌파 및 감정 반응 기록

(부차적 목표) 10년 전 실종된 연구원 이현정의 실험 기록 복원



---

Ⅱ. 개인 일기 (발췌)

12월 24일 18:43
발전기 작동. 온도 영하 12도.
눈은 멈추지 않는다.
라디오가 잡음만 내는데, 그 속에서 단어가 들린다.
“달이 떴어요, 선생님.”

이 문장을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다.
현정의 목소리 같다.


---

12월 24일 22:57
기록지를 확인했다.
내 글씨체로 쓰여 있으나, 내용이 다르다.

> “윤태하 박사는 사망했다.
실험은 계속된다.”



손목이 아프다.
내가 쓰지 않은 글씨를 지우려 해도, 펜 자국이 번지지 않는다.
검은 잉크가 아니라… 피처럼 보인다.


---

12월 25일 01:20
거울 속에 달이 비친다.
하늘은 구름뿐인데.
달빛이 방 안을 채운다.
눈을 감아도, 눈꺼풀 뒤에서 빛이 난다.

내가 깜박이자 달이 숨을 쉰다.
달이 나를 흉내 내고 있다.


---

Ⅲ. 음성 기록 (녹취 복원본)

[녹음 시작 – 02:03]
(거친 숨소리)
…누군가 복도에 있어요.
발소리가 들려요.
계단 위에서 멈췄어요.
현정? …그런데, 그건 제 목소리예요.

[02:07]
문 아래로 카드 한 장이 들어왔어요.
“당신이 달을 보고 있나요,
아니면 달이 당신을 보고 있나요?”

[02:11]
(떨리는 목소리)
달은 밖에 있는 게 아니에요.
공월은… 내 안의 구멍이에요.
나는 그 구멍을 관찰하다가,
그 구멍이 날 들여다보고 있어요.

[02:13]
잠깐, 잠깐만… 거울 속 달이 움직여요.
그게…
그게 미소를 짓고— (비명)

[녹음 종료]


---


Ⅳ. 경찰 조사 보고서

사건번호: 25-12-25-0147
사건명: 경기도 ○○산 산장 실종 사건
작성자: ○○경찰청 강력2팀 정민수 형사

현장 상황

내부에는 인간의 흔적 없음.

발전기 꺼져 있었으며, 실험 장비는 모두 가동 상태 유지.

창문에는 손바닥 자국 1개, 지름 약 18cm.

손바닥 자국은 완벽한 원형 구조. (지문 없음)


증거물

1. 녹음기

마지막 음성 시간 12월 25일 02시 13분.

파일명: “공월_최종”



2. 노트

표지: “공월 실험 – 미완”

내용: 전반부는 과학적 기록, 후반부는 다른 필체.
필체 분석 결과, 이현정의 필체와 유사.
(이현정: 2015년 실험 중 실종된 연구원)



3. 거울 파편

표면 반사율이 이상치로 높음.

조명 없이도 약한 빛을 발산.

실험실 내부 조도 0룩스 상태에서도 달빛 유사 반사 현상 관찰됨.



결론

실종자 윤태하: 신체 미발견.

기록 내용은 정신적 붕괴에 의한 환각 가능성 있으나,
일부 현상(거울 발광, 온도 변동, 시간 정지형 초침)은 설명 불가.

----------------------------------

Ⅴ. 부록 – ‘공월(空月)’ 현상 정리 (비공식)

이 문서는 2025년 12월 28일, 경찰 내부 전산망에서 자동으로 삭제됨.

공월 :

> 달이 없는 밤에 떠오르는 ‘정신의 잔상’.
인간이 자기 존재를 확인할 수 없을 때, 무의식이 스스로를 비추기 위해 만들어내는 허상.



그 빛은 물리적 달빛이 아니라,
“자신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빛”이다.

즉, 공월을 본다는 것은 —
이미 그 자리에 ‘나’가 없다는 뜻이다.


---

< 해석 노트>

형식적 층위:

실험 보고서 → 객관적 현실

일기 → 내면의 붕괴

음성 기록 → 무의식의 폭주

경찰 보고서 → 외부 세계의 해석 불가능성

부록 → 인간 존재의 형이상학적 결론


공월의 본질:

달은 ‘부재의 거울’이다.

인간은 크리스마스의 “구원”을 갈망하지만,
그 구원은 오히려 ‘자기 부정’의 형태로 찾아온다.

결국 윤태하는 ‘공월을 관찰한 인간’이 아니라,
‘공월이 되어버린 인간’이다.


--------------------



〈결말 해석 : 공월(空月)의 진실〉


---

1. 심리학적 해석 – ‘자기 부재의 관찰’

윤태하가 보고 있던 **달(공월)**은 실제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잃어버린 인간’의 전형이다.

실험의 본질은 ‘환자들의 환각을 탐구한다’는 명목이지만,
실은 윤태하 자신이 동일한 증세를 앓고 있었다.

십 년 전의 실험 실패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그의 ‘자기 인식 붕괴 사건’이었다.
(이현정의 실종 또한 그의 망상 속에서 벌어진 일일 가능성 있음.)

그가 “달이 떴어요, 선생님.”이라는 목소리를 듣는 것은,
실제로는 **자신의 분리된 인격(이현정)**이 내면에서 들려주는 ‘거울의 목소리’다.

결국 ‘공월’은 외부의 현상이 아니라,
자신의 부재를 보상하기 위해 뇌가 만들어낸 내면의 달빛이다.
즉,

> “달을 본다는 것은,
이미 그 자리에 ‘나’가 없다는 뜻.”


마지막 음성,

> “달은 밖에 있는 게 아니었다. 그건 나의 빈 자리를 비추고 있었다.” 는,
자아의 완전한 붕괴와 흡수 선언이다.
그는 ‘관찰자’에서 ‘대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

2. 상징적 해석 – ‘빛 없는 구원’

크리스마스는 본래 ‘구원의 날’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의 크리스마스는 구원이 오지 않는 날,
즉, 신이 부재한 시간으로 묘사된다.

눈: 정화와 망각의 상징이지만, 이 작품에선 ‘기억을 덮는 죄의 껍질’.

달빛: 통상 희망이나 인도(引導)를 상징하지만,
여기서는 **‘의식의 붕괴’와 ‘자기조명’**을 상징한다.

거울: 인간이 자신을 확인하는 도구이자, 동시에 ‘공월’의 통로.


결말에서 달은 하늘이 아니라 창문에 비친다.
즉, 달은 외부 자연이 아니라 ‘인간 내부의 허상’이다.

윤태하는 신의 구원 대신 자기 내면의 허상과 합일을 선택했다.
그는 신의 빛(구원)을 기다리다, 결국 **자신의 빛(광기)**에 삼켜진 것이다.

------------------------------------

3. 메타 서사 해석 –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전도’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관찰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다.

윤태하는 처음엔 객관적 관찰자로 등장하지만,
결국 자신이 관찰의 대상이 된다.

즉,

> “나는 공월을 관찰한다” → “공월이 나를 관찰한다” → “나는 공월이다.”



이 세 단계의 전도는
‘자기 인식이 자신을 삼키는 과정’을 형이상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경찰 보고서에서조차 ‘객관적 현실’이 흔들린다.
거울 파편이 스스로 빛을 낸다는 설정은
이미 윤태하의 의식이 외부 세계에 전이되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결말은 단순한 실종이 아니라,

> “공월 현상 자체가 하나의 감염”
임을 뜻한다.
그의 연구는 끝나지 않았고,
그를 조사한 사람들—즉 독자들—마저도 공월의 시선을 느끼게 된다.

------------------------------------

<주제 해석>

공월(空月): 실재하지 않지만
사람의 내면을 비추는 ‘심리적 달’. 인간의 공허와 자기 인식의 붕괴를 상징.

크리스마스의 악몽: 본래 ‘구원의 밤’이 되어야 할 날이,
내면의 죄책감과 기억의 회귀로 변질된 아이러니.

윤태하와 이현정의 관계: 실험의 피해자이자,
동일 인격의 분리체 가능성을 내포.
결국 그는 자신 안의 ‘이현정’을 관찰하다가 삼켜진다.


<결론>

〈크리스마스의 악몽 : 공월〉의 결말은
‘죽음’이나 ‘망상’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윤태하는 단순히 미쳐버린 과학자가 아니라,
**“존재를 관찰하려는 인간이 결국 자기 부재를 마주하는 과정”**의 상징이다.

그는 달빛 속으로 사라진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달이 된 것이다.
비어 있으면서도 모든 것을 비추는 존재 —
그것이 바로 ‘공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