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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소설] 어느 킬러의 당부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을 쏘다

by 임경주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 정경, 오로지오롯이작가님 감사합니다.


나의 아드리안에게.



나는 은퇴를 앞둔 킬러다.

마지막 의뢰를 맡고 있다. 마지막 의뢰는, 그녀다.

이 일이 끝나면 난 은퇴할 것이다.

은퇴는 곧 죽음이다.


그녀의 가슴에는 나비가 산다. 나는 그녀의 심장 소리를 좋아한다. 매우 느리고 변칙적인 그 소리는 박동이라 할 수 없다. 죽음과 매우 근접한 곳에 위치해 있다.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불안하게 뛴다. 그 소리는 희망의 소리다. 늘 죽음과 가까이 있는 나를 절망의 늪 깊은 곳에서부터 건져 올려준다.

그녀는 발레리나다. 그녀와 나는 천애고아로 보육원에서 성장했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사랑을 키워왔다. 오늘은 성탄절 이브다. 공연을 앞두고 폭설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다.

“정말 눈이 올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성탄절이브 하얀 눈이 오면, 난 그녀에게 고백하기로 결심했다. 그녀와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키울 결심이다. 아이는 그녀의 의지다. 그녀의 꿈이다. 처음으로 행복이란 것을 꿈꿔본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루어 낼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도 혹독하다.

눈앞의 목표는 마지막 임무다. 그동안 내가 처리한 놈들은 죽어도 마땅한, 이 시대를 대표하는 혐오와 멸시의 대상 그 자체들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목표는 그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다. 바로 그녀다.

서울올림픽경기장 눈부신 조명 뒤에 몸을 숨긴 나는 물방울처럼 웅크린다. 숨을 죽인다. 표적을 정조준한다.

아이돌의 무대가 끝났다. 그녀가 무대 위로 오른다.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 제3막 오딜의 등장이다. 오딜, 블랙스완이 그녀다. 블랙스완의 가슴에는 나비가 산다. 내 가슴에도 그녀와 같은 나비가 산다. 내 총알은 그녀의 심장을 뚫을 것이다. 내 뒤통수를 노리고 있는 총구는 조직의 명령을 거부할 때 발포된다. 난 그녀를 쏴야 한다.


그녀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볼까.

내 나이 열세 살이었다. 친엄마를 찾았는데 날 거부한다는 말을 복도에서 우연히 들었다. 성탄절 화이트크리스마스는커녕 폭우가 쏟아지던 새벽이었다. 우리 놀던 지구본 가장 높은 곳에 허리띠를 묶었다. 내 목을 맬 때였다. 빗속을 뚫고 들려온 목소리는 구원의 소리였다.

“왜 죽어? 어떻게든 살아야지! 죽긴 왜 죽냐고? 이 바보야!”

그녀는 나의 구원자다. 심장판막 하나가 기형인 상태로 태어났고 보육원에 버려졌다. 날 구원할 때 그녀는 흉부를 가르는 대수술을 끝내고 회복 중이었다. 마취약도 듣지 않는 이 끔찍한 통증은 뼈를 다시 갈라놓는 것처럼 너무 아프다고 했다.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때 왜 쇠판막을 거부한 거야? 의사 말 좀 듣지.”

“엄마 될 거니까. 아이 낳을 거야. 난 누구처럼 절대로 안 버려.”

발레리나로 성공한 그녀의 진짜 꿈은 평범하다. 엄마가 되는 것이다. 동물의 심장에서 추출해 사용하는 인공판막은 오래가지 못한다. 일정기간이 지나면 재수술을 해야 한다. 가슴의 뼈를 또 갈라야 한다. 쇠판막은 영구적이다. 대신 약을 평생 복용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부작용이 뒤따른다. 그 약은 쥐약이다. 아이를 낳는 건 포기해야 한다. 기형아를 낳을 확률이 높다.

그녀는 나보다 더 잔인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강력한 대선후보 K가 그녀를 찍었다. 신년타종행사에 참가한 그녀는 뒤풀이 자리에서 K의 가학적이고도 변태적인 성욕의 희생양이 될뻔했다.

“뭐야? 가슴에 나비가 사네?”

“그만둬. 그만두라고 이 개자식아. 죽여버릴 거야. 당신 내가 부숴버릴 거라고!”

K의 눈치 없는 보좌관이 차문을 열지만 않았어도 K는 목적을 달성했을 것이다. 블랙스완이 K의 차량에서 빠져나와 시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은 인터넷과 SNS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K는 내가 속한 조직에 VVIP고객이 되었다. 그녀의 살인을 의뢰했다. 그녀가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서겠다고 공식선언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임무야. 미인이지? 사진만 보아도 죽이기엔 아까운 얼굴이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냐. 마지막치고는 꽤 쉬운 작업이잖아? 깔끔하게 끝내고 은퇴해. 놓아줄 테니까.”

“왜 하필 그 장소입니까? 조용히 처리해도 되는데.”

“공개처형인거지. 알잖아? 감히 나한테 덤벼? 뭐 이런 거 아닐까?”

조직은 알고 있다. 그녀와 나의 관계를. 그녀는 어떻게든 죽는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건 K지만 그 결과는 논리에서 한참을 벗어난다. 이제 조직의 타깃은 나다. 나는 너무 많은 세상의 비밀을 알고 있다. 킬러에게 은퇴란 없다. 은퇴는 곧 죽음이다. 조직은 내 충성심을 시험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조직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한놈도 남김없이 다 쓸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조직은 나의 공격을 대비하고 있으니 정면 승부는 승산이 없다. 빈틈을 찾아야 한다.

눈이 내린다. 고백할 시간이다. 눈이 흐릿해진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들은 나비를 닮았다. 스피커 옆이라 온몸이 진동한다. 내가 스피커인지 스피커가 나인지 모르겠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정경의 슬픈 선율이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검은 나비가 무대 중앙으로 움직이고 조준경에 걸려들었다. 난 방아쇠를 당긴다. 총구를 떠난 총알은 솜털 같은 눈사이를 날아가며 죽음의 선을 그린다.

빗속을 뚫고 들려왔던 구원의 목소리처럼 그녀의 심장에 박혔다. 완벽하다. 턴의 턴을 돌던 블랙스완의 비상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날개가 꺾이고 추락한다. 관객들이 이질적인 광경에 놀라 숨을 멈추고 참는다.

연기인가 실수인가.

붉은 피가 새어 나온다. 참고 참았던 관객들의 숨은 비명소리로 터져 나온다. 공연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블랙스완의 한쪽 눈. 마스카라가 눈물에 번지고 퍼져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내 뒤통수를 노리고 있던 총구가 거두어졌다.

난 살아남아 조직으로 돌아간다. 사랑하는 여자를 쏜 놈이다. 놈들은 나에 대한 경계를 풀고 방심한 상태로 술파티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한잔에 삼백만 원이 넘는 세상에 몇 개 없는 고급양주를 딴다고 했다. K의 돈이겠지. 그의 권력이, 그의 가학적이고도 변태적인 성향이 이 나라를 지배할 것이라고 믿고 있겠지. 조직은 변질되었다. 모조리 쓸어버릴 생각이다. 단 한놈도 남겨둘 생각 없다. 성탄절이브. 거리마다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축복의 노래와 함께 평화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난 이 도시의 이방인이다. 어느 건물 안에서는 피와 총성이 울려 퍼지고 죽음의 그림자가 노래한다. 한놈 남았다.

“살려줘 제발. 장부도 다 넘겼잖아!”

“네 죄가 뭔지 알아?”

“그래! 다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될 사람이잖아!”

“여전히 모르네. 네놈이 지은 죄는 그녀를 너무 쉽게 본 거야.”

내 손에 쥐어진 베레타가 불을 뿜는다. 총알이 놈의 이마를 관통했다. 정지된 얼굴은 여전히 지은 죄를 모르고 있다.


그녀는 죽지 않았다.

기적처럼 살아나 휠체어에 의지한 채로 청문회 증인석에 섰다. 52프로 지지율을 달리던 K의 지지율은 30퍼센트로 떨어졌다. 수사가 진행되었다. 내 조직을 상대로 K가 의뢰한 살인청부혐의는 내가 믿을 만한 검사에게 보낸 장부를 통해 입증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심판과는 전혀 상관없다.

총알을 먹고 정지된 얼굴, 조직의 보스처럼 K 역시 그녀를 쉽게 본 것이 가장 큰 죄다. 이놈은 깨달아야 한다. 죽어서도 모르면 곤란하다.

놈의 잘난 입에 총구를 박아 넣고 다시 한번 못을 치듯 박아 들어간다.

앞니 두 개부터 박살 난다. 하나는 밖으로 튀었고 하나는 입안으로 들어가 목구멍에 걸렸나 보다. 꿀꺽 삼키지 못하고 피기침을 토해낸다. K가 뭐라고 한다. 목숨을 구걸하는 것 같다.

기침소리에 섞인 K의 말은 더 이상 말이 아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작은 짐승의 울부짖음이다.

이 따위 놈이 이 나라를 지배하겠다니.

놈은 여전히 지은 죄를 모른다. 확신한다. 베레타가 불을 뿜는다. 총알을 먹고 정지된 놈의 얼굴은 그래도 반성 중이다. 후회는 하고 있다.




다시 돌아가 볼까? 그녀가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났는지 궁금할 것이다.

마지막 임무가 그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다. 난 버려진 자식이기에 내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버지의 독특한 유전자를 물려받아 기억의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지는 않기에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서울 올림픽경기장, 성탄절 전야. 화려한 조명 뒤에 몸을 숨기고 그녀를 목표로 정조준하고 있는 나는 지금 지독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반드시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지독한 상황이다. 지독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쏟아져 내리는 하얀 눈과 축제의 밤. 이것은 악몽이다. 그녀의 심장소리가 들려온다.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죽음의 끝에 위치한 그 아늑한 소리와 함께 구원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온다.

“근데 있잖아, 여기 이 뱃속에 우리 아기 생기면 태명을 뭐라고 지을까?”

“아드리안.”

“아드리안?”

“응. 아드리안.”

“그게 뭐야? 어? 잠깐만! 와, 정말 눈이 오네? 아니야... 지금은 아니야. 프러포즈는 공연 끝내고 무대에서 받을 겁니다. 기다려주세요.”

벼랑 끝이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이 지독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모든 기억의 지점으로 되돌아가 보았다. 하지만 바꿀 수가 없다. 신년타종행사 자리로 돌아가 K를 미리 죽여도 보았고, 마지막 의뢰를 받는 그 자리에서 그녀의 사진을 내미는 조직의 보스도 죽여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막을 수가 없다. 바뀌지가 않는다. 조직원 누군가에 의해 어떻게든 죽는다. 운명을 바꾸는 힘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 힘은. 존재하긴 할까?

결국엔 원점이다. 어느새 벼랑 끝까지 몰려 있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난 그녀를 쏴야 한다. 그녀의 심장을 정조준하고 있는 나는 그녀의 가슴에 새긴 나비를 떠올린다. 달콤하고 행복했던 그 기억에 집중한다. 내 가슴의 나비가 빠져나와 날아오른다. 나비는 시간의 안내자다. 나는 나비를 따라간다. 차이코프스키의 슬픈 피아노선율이 점점 멀어져 간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나는 지금 그녀의 가슴에 나비를 새기고 있다.

내가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자 그녀도 덩달아 놀란다. 난 주변을 둘러본다. 방패를 찾아야 한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시간이 없어. 내 말 잘 들어.”

“뭘? 무섭잖아?”

“이 나비에게 갑옷을 입힐 거야.”

“무슨 소리야?”

“날지 못하겠지. 하지만 살아야 해. 어떻게든 살아야 해. 약속해 줘.”

그녀는 나의 구원자다. 나의 진심을 알아본다.

“알았어. 약속할게.”

그녀가 그때처럼 새끼손가락을 먼저 걸어온다. 난 그녀를 꽉 껴안고 입을 맞추며 말한다.

“사랑해. 정말 사랑해.”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금을 찾아 녹인다. 금이 녹아 펴진다.

“잘 들어. 바꿀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바꾸어 보았어. 하지만 바뀌지 않아. 이게 마지막이야.”

그녀는 내 말에 집중한다. 그녀가 내 눈을 본다. 내 말을 모두 다 믿어준다.

“아파도 참아야 해. 할 수 있지?”

“응.”

그녀가 용기를 낸다. 고개를 끄덕이고 이를 악문다. 피부를 찢고 들어간 황금의 방패는 나비 뒤에 숨겨진다.

나비는 갑옷을 입었다.

탕!

총알은 총구를 떠났다. 세계는 변한다. 원을 그리며 회전한다. 우리 함께 놀았던 지구본 놀이기구처럼 회전한다. 턴, 턴. 무대 위의 너도 회전하고 있다. 비상을 위한 준비다. 하지만 날아오르지 못할 거야. 그래도 살아야 해. 어떻게든 살아야 해. 구원의 그날, 내 목에 감긴 허리띠 풀어주며 말했잖아. 죽긴 왜 죽냐고.

주저앉아 펑펑 우는 날 위해 자기 몸하나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아픈 몸으로 장대비를 같이 맞아주며 지구본을 돌려주었지. 너의 모든 힘을 다해.

그래 회전하고 있다는 걸 잘 알아. 내 정해진 운명이 지구본이라면 너와 나는 그 밑에서 부서지고 갈리는 모래와도 같아. 답이 없어 속수무책이야. 그래도 문득 더 큰 힘을 필요로 한다면, 운명을 바꾸는 힘이 존재한다면 그건 아마도 나비를 향해 정확하게 날아가고 있는 총알 앞에서도 결코 물러서거나 피하지 않는 지금의 너. 너의 모습과 꼭 닮았을 거야!

나비가 갑옷을 장착한다. 황금의 갑각나비다.

나비야. 날지 못해 어이하나.

총알이 그녀의 심장, 나비에 적중했다.

“하!”

블랙스완이 쓰러진다. 비명이 터져 나오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녀가 피를 흘리고 들것에 실려 나간다. 뒤통수를 노리고 있던 총구가 거두어졌다. 이제 남은 일은 돌아가 조직을 쓸어버리는 것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단 한놈도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계단을 타고 올라간다. 한 계단 오를 때마다 가방에 담긴 12자루 총의 무게가 내 어깨를 짓누른다. 죽음의 무게다. 고급술이 내뿜은 향기가 계단에 머물러 있다. 놈들이 날 반긴다. 내가 보여준 충성심에 감동이라도 받은 걸까. 놈들은 무방비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한다. 난 돌아서서 문을 걸어 잠그고 가방을 열어 총을 꺼낸다. 총소리는 종소리다. 축복한다.

TV를 통해 그녀를 지켜본다. 그녀는 청문회 증인으로 참석해 회복되지 않은 몸을 겨우 일으켜 세워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심장의 삼분의 일이 날아가 버렸다. 대동맥판막도 훼손되었다. 세 가닥의 관상동맥 중 하나가 그 기능을 하지 못한다. 남아 있는 심장이 날아가 버린 부분의 몫까지 해내고 있다.

이 환자에게 쇠판막을 대신할 수 있는 인공판막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를 포기해야 한다. 그녀를 가장 슬프게 하는 건, 날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진짜 꿈까지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K를 찾아간다.




곧 시린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고백하지 못한 성탄절도 다시 찾아오겠지. 그녀는 이제 날지 못한다. 너무나도 평범하고 소박한, 가장 소중한 꿈까지 잃었다. 그래도 꼭 살아달라는 내 말을 잊지 않았나 보다. 힘든 재활과정을 이겨나가고 있다. 나는 유리벽 뒤에서 그녀를 지켜본다. 몇 번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선다.

그녀가 뒤를 돌아본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다. 새끼손가락을 세워 본다. 그녀가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유리벽을 통해 새끼손가락을 걸어온다.

유리벽이 차갑다. 약속의 고리를 가로막는다.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물리적인 것과 그 거리만이 다가 아니다. 부서진 고백, 포기해야만 하는 아이와 함께 사라져 버린 미래…

어둠 속으로 도망쳐 숨어야 하는 나.

내 눈에서 뜨거운 것이 터져 나왔다. 구원 이후, 평생 눈물 한 방울 흘려본 적 없던 킬러의 마지막 눈물이다.

그녀가 배를 까보여 준다. 입모양이 아드리안을 말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포기하지 못한 꿈. 아이처럼 나도 모르게, 아드리안을 애타게 찾는 나는 유리벽에 뺨을 기대 본다. 눈물이 유리벽을 타고 흘러내려 그녀의 새끼손가락이 닿은 지점에서 멈췄다.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어서 가. 단호하다.

바보처럼 울지도 말고. 엉뚱한 생각 따윈 하지도 마라고. 주먹을 꾹 쥐었다가 다시 새끼손가락을 걸어온다.

약속해.

새끼손가락이 걸렸다.

그래, 약속할게. 너도 약속해 줘.

나 어떻게든 살아갈 테니…

너도 꼭 살아야 해, 절대로 죽지 말고 살아야 해. 어떻게든 살아만 있어 줘.


떠나야 할 시간이다. 그녀가 손을 흔든다.

다시 한번 더 당부한다.



살아라, 부디 죽지 말고 살아라.




Fin








*킬러와 그녀의 이야기는 Part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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