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세계

by 윤지안


새벽의 가장 얇은 숨결을 따라가면,
눈에 보이지 않던 문이 하나 열린다.
바람도 소리도 머뭇거리다가 사라지는 길 끝에서,
하늘처럼 가벼운 문장이 흘러내리는 세계가 있다.
그곳을 사람들은 나비 세계라고 불렀다.

처음 발을 들인 순간,
나는 내 그림자가 가벼워져

발끝에서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바닥은 물빛도 꽃빛도 아닌 색으로 흔들렸고,
바람은 어제 잃어버린 누군가의 목소리처럼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곳의 나비들은 모두 아주 조용했다.
날갯짓이 소리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떼를 지어 지나갈 때면
수천 개의 빛이 흩어지며 새로운 공기를 만들어냈다.
마치 잊고 지낸 기억들을 한꺼번에 펼쳐

보여주는 것처럼.

나는 그중 한 마리,
앞날개가 새벽빛이고

뒷날개가 저녁빛인 나비와 마주쳤다.
그 나비는 오래전에 작별을 고했던 사람의

눈동자를 닮아 있었다.
한순간 숨이 멎을 듯했지만,

곧 따뜻한 기운이 가슴 깊숙이 번져왔다.
그 나비는 날갯짓 대신,

“괜찮아”라는 빛을 남기고 지나갔다.

나비 세계에서는
사라진 것들이 조금은 덜 아프고,
남겨진 것들이 조금은 더 가벼워진다.
완전히 밝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어둡지도 않은 곳.
눈물과 미소가 한 줄기 바람처럼 이어지는 공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비들은 한 번씩 어깨나 머리카락 위에 살며시 내려앉아
아주 작은 위로를 남기고 떠난다.
그것은 말로는 들리지 않지만
마음이 먼저 알아듣는 위로였다.

그리고 돌아갈 시간이 되면
나비 세계는 아무런 경고도 없이 문을 닫는다.
갑작스러워서 아쉽지만,
그 덕분에 그곳은 언제나 꿈처럼 남는다.

문 너머로 걸어 나오며 나는 깨달았다.
슬픔이란 결국,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가벼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속 머무는 것이라고.

문이 닫히는 마지막 순간,
새벽빛과 저녁빛을 지닌 그 나비가
조용히 날아올랐다.
그리고 한 줄기 빛으로 변해
내 마음에, 아주 조용한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언제든 그 자리에서
다시 나비 세계로 이어지는 작은 문을 찾곤 한다.
그 문은 늘 슬픔과 희망이 한 번씩 겹쳐질 때
아주 잠깐, 나를 호출하듯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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