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부서진 나비는 기억이 된다>
거울 앞에 선다.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습관처럼 숨을 고른다.
유리는 늘 차갑고 정직하다.
내가 외면한 것까지도 비춰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거울 속의 나는 나를 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나인 척하는 무엇이 나를 응시한다.
눈동자의 위치는 정확한데, 초점이 어긋나 있다.
마치 오래전 다른 방에서 헤어졌던 사람을
다시 만난 것처럼.
기억이 완전했다면
우리는 이렇게 마주 서지 않았을 것이다.
기억은 늘 파편의 형태로 남는다.
깨진 유리 조각처럼—
잡으면 손이 베이고, 놓치면 바닥에 남아 반짝인다.
나는 거울을 향해 묻는다.
“어디서부터 잃어버린 거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 아주 작은 날갯짓 소리가 난다.
거울 속에서 나비가 날아오른다.
실제로 존재하는 나비가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기억 속에서만 사는 나비다.
어릴 적 방 한가운데에서,
아무 이유 없이 울다가 갑자기 웃었던
어느 오후의 색을 닮은.
나비의 날개에는 무늬가 없다.
대신, 잊힌 장면들이 얇게 겹쳐 있다.
손을 잡았던 온기,
불러주길 기다렸던 이름,
끝내 말하지 못한 사과.
나비는 거울 표면을 스친다.
그 순간, 거울 속의 내가 아주 잠깐 흔들린다.
마치 오래된 필름이 끊어질 때처럼.
기억은 이렇게 찾아온다.
순서도, 맥락도 없이.
단지 감정만을 남긴 채.
그리고 그 감정은—
이상할 만큼 달콤하다.
거울 속의 내가 웃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방식으로.
슬픔을 다정하게 접어
설탕처럼 녹여버린 얼굴이다.
아프지 않게,
그러나 결코 잊히지 않게.
“괜찮았잖아.”
거울이 속삭인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괜찮았던 적은 없다.
다만, 견딜 수 있었을 뿐이다.
기억의 파편 하나가 발치에 떨어진다.
그건 떠나지 말라고 말하지 못했던 순간이다.
또 하나는
기다려달라는 말을 너무 늦게 깨달은 밤이다.
파편들은 전부 모서리가 둥글다.
시간이 지나며 닳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이제는 상처를 내지 않고,
그저 스며든다.
나비가 다시 날아오른다.
이번에는 내 쪽으로.
본능적으로 손을 뻗지만,
나비는 손바닥에 내려앉지 않는다.
대신 거울과 나 사이,
아슬아슬한 경계에 머문다.
그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잃어버린 기억들로 만들어진 존재다.
선별된 슬픔,
미화된 후회,
그리고 차라리 잊는 편이 나았을 진실.
그래서 그는 나보다 차분하다.
아프지 않다.
울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대신,
나보다 훨씬 공허하다.
“넌 아직도 나비를 기억하네.”
거울이 말한다.
이번엔 분명히 들린다.
나는 고개를 든다.
눈이 마주친다.
거울 속의 나는
내가 되지 못한 나다.
기억을 잃는 대가로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된 존재.
그의 뒤편에서
수많은 나비들이 날고 있다.
모두 기억의 파편이다.
하나하나가 작고,
아름답고,
치명적이다.
그 나비들이 나에게로 날아오면
나는 다시 온전해질 수 있을까.
아니면 완전히 부서질까.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나는 거울에 손을 댄다.
차가운 감촉이 손끝을 타고 올라온다.
그 순간,
나비 하나가 조용히 부서진다.
날개가 가루처럼 흩어지고,
그 안에 있던 기억이
가슴 깊숙이 스며든다.
눈물이 난다.
하지만 울음은 없다.
이게 바로
달콤한 슬픔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안다.
아프지만,
사랑했던 감정이라는 것.
잃어버렸지만,
확실히 존재했었다는 증거.
거울 속의 나는 점점 흐려진다.
그는 나비들을 잃고 있다.
기억이 돌아올수록
그는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그가 웃는다.
이번엔,
조금 쓸쓸하게.
“기억해 줘.”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거울은 다시
그저 거울이 된다.
나비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방 안에는
희미한 날갯짓의 잔향이 남아 있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완전하지 않은 나로 숨을 쉰다.
기억은 여전히 파편이고,
슬픔은 여전히 달콤하다.
그리고 그게—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