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깨져 있던 것들에 대하여

by 윤지안


나비는 늘 가벼운 것들의 편에 선다.
바람, 햇빛, 꽃잎,
그리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세한 떨림들.

그러나 오늘,

그 나비는 깨진 유리 위에 내려앉았다.

금이 간 유리창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한 번의 충격이었는지,
반복된 피로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중심에서부터 방사형으로 퍼져나간 균열이
마치 얼어붙은 번개처럼 투명한 표면을 가르고 있었다.

빛은 그 틈을 따라 잘게 부서졌고,
오후의 햇살은 더 이상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었다.
수십 갈래의 날 선 조각으로 흩어져 방 안을 떠돌았다.

그 위에 내려앉은 나비의 날개는 유난히 선명했다.
비늘처럼 겹쳐진 색채가 균열 사이로 스며들며,
유리의 상처를 잠시 덮는 듯했다.
연약한 발이 금 위를 짚을 때마다

미세한 진동이 일었다.
깨진 유리는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나는 분명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미 한 번 부서진 것들이 또 한 번 금 가는 소리.

나는 나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연약함은 왜 이렇게 잔인한 곳을 골라 내려앉는가.

깨진 유리는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결과만을 남긴다.
균열은 원인을 말하지 않고,
파편은 과거를 증명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위에 덧붙여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부주의였다고, 혹은 피할 수 없는 사고였다고.

그러나 금은 침묵 속에서 자라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흠집이
어느 날 갑자기 선명한 상처가 되듯,
감정도 그렇게 금이 간다.

나비의 날갯짓이 한 번 일어났다.
그 작은 움직임이 유리 위의 빛을 흩트렸다.
빛은 균열을 따라 흘러내렸고,
마치 상처가 스스로를 드러내듯 더 또렷해졌다.

아름다움은 종종 상처를 강조한다.
완벽한 표면 위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깨진 틈 사이에서 비로소 빛을 얻는다.

나는 손을 뻗어 나비를 쫓지 않았다.
혹시라도 더 큰 파열이 일어날까 봐.

깨진 유리는 닿는 순간 베인다.
그러나 그 날카로움은 동시에 투명하다.
보이지 않는 채로, 정확히 피부를 가른다.

감정도 그러하다.
우리는 깨졌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살아가다가,
어느 날 손끝에 맺힌 붉은 선을 보고서야 알게 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금이 가 있었다는 것을.

나비는 잠시 머물다 다시 날아올랐다.
가볍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러나 유리는 그대로였다.
금은 여전히 방사형으로 뻗어 있었고,
빛은 그 틈을 타고 스며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 남겨진 공기를 오래 바라보았다.

나비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아주 미세한 먼지 하나조차 남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균열은 더 깊어진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나비는 아무것도 깨뜨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미 깨져 있던 것 위를 잠시 지나갔을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다.
가장 연약한 것들이

가장 날카로운 것 위에 내려앉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균열을 또렷이 보게 된다는 것을.

나비는 상처를 치유하지 않는다.
깨진 유리도 스스로 붙지 않는다.

다만 그 사이를 통과하는 빛만이,
잠시 모든 것을 아름답게 착각하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