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슬픔은
아주 가벼운 날개를 가지고 온다.
처음엔 그것이 슬픔인지도 모른다.
그저 창가에 앉아 있는 작은 나비 한 마리처럼
조용히,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내 마음 위에 내려앉을 뿐이다.
나비는 늘 그렇게 온다.
색이 바랜 오후에,
아무도 부르지 않은 기억 사이로
천천히 날아들어
잠깐 머물다 갈 것처럼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작은 날갯짓 하나가
마음 속 오래된 계절들을
모두 흔들어 깨운다.
나는 그 나비를 쫓지 않는다.
슬픔을 쫓아내려 하면
더 오래 머문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바라본다.
날개가 떨릴 때마다
내 안의 어떤 장면들이
조용히 흔들리는 것을.
겨울이 오면
세상은 종종 얼음으로 덮인다.
강물도,
웅덩이도,
가끔은 사람의 마음도.
얼음은 단단해 보인다.
차갑고,
아무 감정도 없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얼음은 사실
흘러가던 물이
잠깐 멈춘 모습이라는 것을.
어쩌면 슬픔도 그렇다.
흘러가야 할 어떤 감정이
어딘가에서 멈춰
차갑게 굳어버린 순간.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지만
조금만 오래 바라보면
그 안에 갇힌 흐름이 보인다.
움직이고 싶어 하는 물의 기억이.
나는 가끔
그 얼음을 손끝으로 만져본다.
차갑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차가움 속에는
어딘가 투명한 외로움이 있다.
마치
아직 녹지 못한 눈물처럼.
눈물은
생각보다 늦게 온다.
사람은 대개
울어야 할 순간에 바로 울지 못한다.
그때는
그저 멍하니 서 있거나
괜찮은 척 웃거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리고 아주 한참 뒤에야
어떤 사소한 순간에서
눈물은 조용히 나타난다.
예를 들면
컵에 담긴 얼음이
딸각거리며 부딪히는 소리에서.
혹은
어디선가 날아온 나비 한 마리가
잠깐 창문에 내려앉는 순간에서.
그때야
마음 속에서
아직 녹지 않았던 얼음들이
천천히 물이 된다.
눈물은
그 물의 이름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사람의 슬픔은
아마도
나비와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너무 작고
너무 가벼워서
잡으려 하면 사라지고,
가만히 두면
잠깐 머물다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는 것.
하지만 그 작은 날갯짓 하나가
마음 속 겨울을 흔들어
얼음을 녹이고
마침내 눈물 한 방울을
세상 밖으로 데려온다.
그래서 나는
이제 슬픔이 오면
예전처럼 밀어내지 않는다.
그저 창문을 조금 열어둔다.
어쩌면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나비 한 마리가
잠깐 머물다 갈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 날갯짓이
내 안에 남아 있던
마지막 얼음을 녹여
조용한 눈물 하나를
세상에 떨어뜨릴지도 모르니까.
눈물은
항상 슬픔의 끝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슬픔이 드디어
흘러가기 시작했다는
아주 작은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 눈물을
이제 조금 덜 슬프게 바라본다.
마치
겨울 끝에
어딘가에서 날아온
작은 나비 한 마리를
조용히 바라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