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 앉아 있으면
세상은 늘 유리 너머에서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잘 웃었고
잘 걷고
잘 이야기했다.
그런데 나는 늘
한 발짝 뒤에 있었다.
말을 꺼내기 전부터
목소리가 어딘가 모자란 것 같았고,
웃기 전부터
내 웃음이 조금 어색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가끔은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조용한 사람은
틀린 말을 하지 않으니까.
학교 뒤편에는 작은 화단이 있었다.
이름 모를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점심시간이면 학생들이 몇 명씩 지나가는 곳.
그곳에 앉아 있으면
세상은 조금 덜 선명해졌다.
어느 날
노란 나비 한 마리가 화단 위를 날고 있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나는 이상하게도
그 나비를 오래 바라보게 됐다.
날개는 얇아 보였고
바람이 조금만 세도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나비는 계속 날았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아무도 칭찬하지 않아도.
그저
날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때였다.
“너 여기 자주 앉아 있더라.”
누군가 옆에 서 있었다.
같은 반이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말을 해본 적은 없는 아이였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만 끄덕였다.
“뭐 봐?”
나는 화단을 가리켰다.
“나비.”
그 아이는 잠깐 나비를 보더니
작게 웃었다.
“저거 알아?”
“뭐?”
“애벌레 때는
자기가 나비가 될 줄 모른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이
왠지 조금 아프게 들렸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계속 그 말을 생각했다.
애벌레는
자기가 날게 될 줄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의 모습이 전부라고
착각한 채로 기어 다닌다.
어쩌면 나도
그런 건 아닐까.
지금의 내가
내 전부라고
미리 정해버린 채로.
며칠 뒤
또 그 화단에 앉아 있었다.
나비는 여전히 있었고
꽃들도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허공을 가리켰다.
나비는 물론
내 손에 앉지 않았다.
그저
한 번 빙글 돌더니
다른 꽃으로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조금 웃음이 났다.
나비는
완벽하게 날지 않았다.
조금 흔들렸고
조금 엇나갔고
조금 돌아갔다.
그래도
결국 꽃에 도착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주 조금씩만 바꾸기로 했다.
아주 크게는 아니고
정말 조금만.
말을 걸어보고
실수도 해보고
가끔은 틀린 말도 해보고.
사람들이 웃어도
괜찮다고 생각해 보기로.
왜냐하면
나비도
완벽하게 날지 않으니까.
봄이 조금 더 깊어진 어느 날
화단에는
나비가 한 마리 더 늘어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열등감이라는 건
날개가 없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아직
날아본 적이 없어서
생기는 걸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