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피는 계절에는
세상이 조금 더 느리게 흐른다.
바람이 한 번 스치면
연분홍의 시간들이 허공에 흩어지고,
그 사이를 조용히 건너는 것은
소리보다 먼저 도착하는 어떤 감정이다.
그날, 나는 연주를 들었다.
악보 위에 얹힌 음들이 아니라
손끝에서 망설이다가 떨어지는 숨 같은 것.
건반 위를 흐르는 선율은
마치 꽃잎이 떨어지는 속도를 닮아 있었고,
어떤 음은 아직 피지 못한 채
공기 속에 머물렀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너무 가벼워서,
세상의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은 것처럼
흔들리며 머무는 존재.
나비는 연주 위를 건너갔다.
소리와 소리 사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간격을 조용히 짚으며.
ㄱ 모습이 이상하게도 익숙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던 순간들,
끝내 붙잡지 못했던 시간들,
그리고 이유 없이 마음이 젖어들던 저녁들.
벚꽃은 흩어지고,
연주는 끝나고,
나비는 떠난다.
그 모든 것이 사라지는 방식이
너무 닮아 있어서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붙잡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저 지나가는 것들의 결을 느끼기로 했다.
손에 쥐지 못하는 것들이
오히려 더 또렷하게 남는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