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나비 1화>>

1화. 폐역에서

by 윤지안


《잿빛 나비》
1화. 폐역에서

가을의 끝자락.
하늘은 탁했고, 바람은 묘하게 건조했다.

은서는 오래전에 폐쇄된 기차역 앞에 서 있었다.
부서진 간판 아래 녹슨 철문, 잡초가 자란 선로,

무너진 플랫폼.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시간이 남았다.
잊힌 기억처럼, 조용히 쌓여 있었다.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벤치 앞에 멈춰 섰다.
그 벤치는 서은이 좋아하던 자리였다.
"여기 앉으면 기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서은이 웃으며 그렇게 말하던 날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은서의 손끝이 벤치의 나뭇결을 더듬었다.
까슬하고 거칠었다. 손바닥으로 눌러도,

아무 감각이 없었다.
무언가를 느끼기엔 너무 오래 지나 있었다.

뒤에서 낯익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하진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은서 옆에 섰다.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가 이윽고 조용히 물었다.

“괜찮아?”

대답은 없었다.
하진은 그럴 거라고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서늘한 바람을 함께 맞았다.

폐역 너머로 바람이 지나갔다.
바람 속에는 나뭇잎이 섞여 있었고,

먼지와 낡은 철제의 냄새가 실려왔다.

은서는 천천히 선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기차는 더 이상 오지 않지만,

그 길은 여전히 어딘가로 이어지는 듯했다.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마른 잎들이 조용히 울었다.

하진은 그녀를 뒤따라 걸었다.
그들의 그림자가 평행선처럼

플랫폼 위에 나란히 늘어섰다.

그늘진 하늘 아래,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은서는, 잿빛 머리카락을 가진 나비처럼,

한 발 더 선로 위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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