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나비 4화>>

4화. 집이었던 곳

by 윤지안


《잿빛 나비》
4화. 집이었던 곳

은서는 오랜만에 '그 집'에 다녀왔다.
누군가 살고 있을 리 없는, 오래전부터 비어 있던 집.
주소를 적은 쪽지를 들고 택시에 올라탄 순간부터,
가슴 어딘가가 얼어붙은 듯했다.

창밖의 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군 채,
차가운 하늘 아래 갈라진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은서는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

대문은 반쯤 기울어져 있었고,

초인종은 눌러지지 않았다.
문을 밀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안쪽으로 열렸다.
먼지 쌓인 복도, 벽에 걸려 있던 낡은 액자,
서늘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은서는 조심스럽게 거실로 들어갔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그녀는 과거의 장면들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앉아 있던 소파,
어머니가 묵묵히 빨래를 개던 거실 한켠.
그리고, 서은과 함께 숨어 들어가던 작은 방.

그 방 앞에 멈춰 섰다.
문을 열자, 마치 어제까지 누군가 살았던 것처럼
세상은 조용히 존재하고 있었다.

작은 책상, 벗겨진 벽지,
그리고 구석에 놓인 오래된 인형 하나.
서은이 어릴 적 가장 좋아하던 인형이었다.
“얘는 혼자 있어도 안 외롭대.”
그녀가 그렇게 말했었다.

은서는 인형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먼지가 쌓였지만, 천의 감촉은 여전히 따뜻했다.

**

한때 그곳은 집이었다.
다툼이 있었고, 울음도 있었고,
때로는 웃음도 있었던, 삶이 머물던 공간.

이제는 기억의 껍데기만 남은 그 집 안에서
은서는 조용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인형을 품에 안고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서은의 웃음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듯했다.

**

하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두 번의 신호음 끝에 전화를 받았다.

“...나, 여기 집이었던 데야.”
“혼자 갔어?”
“응. 그냥... 확인하고 싶었어.
이 집이 아직, 우리를 기억하고 있는지.”

하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무언이, 오히려 은서를 덜 외롭게 했다.

“나 이제 돌아갈게.”

은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관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집을 돌아봤다.
그곳은 여전히 조용했고,

그 조용함 속에 무언가가 머물러 있었다.

어쩌면 서은의 마지막 그림자,
혹은 어린 시절의 파편 같은 것.

**

밖으로 나서자, 해가 기울고 있었다.
건물 벽에 길게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은서는 문득 생각했다.

집이라는 건 어쩌면
누군가를 떠나보낸 기억이 고요히 눌러앉은 장소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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