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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하자 Jun 27. 2021

 잡생각 없이 그냥 하는 위대함 #1

그래도 살 만 하다


요즘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보면

어떤 회사 제품인지 한 번에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음식 배달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인이면 군복만 눈에 띄고

자전거에 관심이 많으면

온통 자전거에만 눈길이 가는 이치다.





나도 한 때 꽤나 잘 나가던 회사의 상급자였다.

그 회사가 내 인생을 전부 책임져 줄 것이라고

백 프로 믿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정신적으로 의지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바보처럼...... 아니 귀신에 홀린 듯 말이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나오게 되었고

마땅히 할 일이 없던 나는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배달러가 된 것이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한 배달.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꽤나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고 살았다는 것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오토바이를

하루에 12시간씩 타는 것이 아니었다.

남들이 쳐다보는 그 시선을 견디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지 않으려는 사람

꼬마가 웃으며 나를 쳐다보자 아이를 데리고 가는 엄마

상냥하게 인사해도 무시하는 표정은 다반사.


내 몸에 세균이 우글거리는 사람처럼 나를 피했다.

물론 좋은 분들도 간혹 계셨지만......


오토바이에 앉을 때면 과속만 일삼는 양아치가 된 듯했다.

차 안에서 에어컨 바람 쐬며 반팔을 입은 시선이

나만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여전히 잊히지 않는 일이 있다.

송파에 있는 어떤 초밥집(가게 이름도 기억한다)

사장과 시비가 붙었던 날

싸우기 싫어서 그냥 나왔지만 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당신 장애인 아냐?"


헬멧 쓰고 음식 배달한다고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건가?

나는 분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예전에 오토바이 배달을 하는 분들을 깔본 적도 없고

무시하거나 존중하지 않은 적도 없다.  

그렇다고 너무 좋게 본 적도 없다.

신호 무시하고 과속만 일삼는 뉴스가 내 정신을 지배했고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내가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과속을 할 수밖에 없는지.

그들이 처한 환경과 시스템을 보지 않았고

그저 눈앞의 상황만 보고 그들을 함부로 판단했다.


오토바이를 탄 덕분일까.

사회를 보는 내 시선이, 생각이 청소가 된 듯하다.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다고 해야 하나.

경험하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생긴 것이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내 나이 사십 대 중반을 넘어섰다.

남은 인생이 꽤나 있을진대

위험한 오토바이를 타면서 깨달은 것.

그것은 내 인생의 줄기를 바꾸어 놓았다.


아...

어제 무척이나 더웠다.

시원한 물이 간절했지만 배달 일을 더 하기 위해

편의점에 들리지도 못하고 일하고 있었다.

강동에 있는 어느 가게 사장님이 시원한 사이다를 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나는 탄산만 먹는다. 콜라도 제로 콜라만 먹는다.

내가 먹은 이 사이다.

그 어떤 탄산보다, 제로콜라 보다 맛있었다.

그 착한 가게는 바로 이곳이다.



진 칼국수

서울특별시 강동구 구천면로 360




내가 실제로 받은 사이다~~~

사진 속의 장갑을 보니

이젠 배달러가 되어 버린 듯하네. 흐흐흐.

사장님. 감사해요.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

드라마 '미생'






회사는 전쟁터가 맞다.

전쟁에서는 아군의 피아식별이 가능하다.

그런데 밖에 나와 보니

누가 적군인지 아군인지 알 수가 없다.  




최근에 사기를 당할 뻔했다. 큰 금액이었다.

회사에서 꽤나 똑똑한 척했지만

밖에서 경험한 이 불구덩이 지옥에서는

한낱 헛똑똑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옥불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남들이 무시하는 배달 일이지만

나는 이 일이 너무나 소중하다.


아... 피곤해.

내일은 일요일, 지금 새벽이니까 오늘이네.

빨리 자야 한다.


피곤에 절어 있는 몸을

오토바이에 실으면

쏟아지는 바람이

피로를 다 가지고 가더라.





나는 피로를 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다.(라고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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