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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하자 Aug 09. 2021

성냥팔이 소녀

    “현재 상황 보고.”

    “움직임 없다.”

    박나희 형사는 몇 시간째 건물 옆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선배인 조기형 형사에게 주변 상황을 무전으로 조용히 보고 했지만 살을 에는 추위에 그녀는 떨고 있었다. 한 겨울임에도 두껍지 않은 옷, 산발의 머리와 꾀죄죄한 얼굴. 그녀는 노숙자 행세를 하고 최대한 그들에게 가까이 접근하려 했다.

    최대 마약상인 '스마일 최'를 이번에도 놓치게 되면 필리핀으로 잠적할 것이라 판단했다. 필리핀과 한국을 오가며 마약을 공급하고 있는 스마일 최는 올해에만 300억 원대의 마약을 한국에 들여왔다. 그와 연루된 정치계 인사, 연예인, 기업 회장 등 확보된 정보만 해도 수 십 명에 이르렀지만 권력을 등에 업은 그들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서울 경찰청 마약반은 스마일 최를 체포하고 마약의 유통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박나희는 형사과 소속이었지만 마약반으로의 전출을 자청했고 받아들여졌다. 기형은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위장 버스 상황실에서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와 불과 500여 미터 떨어진 곳이었지만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박 형사. 내가 준 오징어 맛있지? 조금만 더 고생하자.”

    “이거 강원도 오징어예요? 은근히 맛있네.”

    “비싼 건데 고생하니까 특별히 준 거야.  반장님 오셨다. 다시 연락할게.”

    조기형 형사는 스마일 최를 이 년 이상 추적하고 있었고 그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이번 작전은 박나희 형사에게 들어온 첩보를 통해 은밀히 진행되고 있었다. 버스에 강인우 반장이 올랐고 기형은 씹던 오징어를 꿀꺽 삼켰다.

    “현장에는 박 형사가 나가 있나?”

    “네. 세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놈 들이 안보입니다. 박 형사가 입수했다는 정보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설마 이런 곳에 스마일 최가 온다는 건 좀......”

    “얼굴도 모르는 스마일인지 뭔지 그놈 때문에 진짜 여럿 고생한다. 그리고 오징어 좀 그만 먹어. 버스에 오징어 냄새 엄청나.”

     인우가 기형의 손에 있던 오징어를 뺏어서 입에 넣었다.

    “어? 반장님.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상황실의 복잡한 화면을 지켜보던 기형이 말했다.

    “드디어 오셨군. 스마일 최.”

    강인우 반장 얼굴에는 기쁨과 긴장이 공존했다. 마약반 모두 숨소리까지 죽이며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나희를 힐끔 쳐다보았지만 무심하게 지나쳤고 인우와 기형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건물로 다가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입구의 셔터를 올렸다. 이상 없음을 확인한 그들 뒤로 몇 대의 승용차가 도착했다. 차량의 라이트가 꺼졌고 사방은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그때였다. 갑자기 상황실 버스의 전원이 나가버렸다. 직원 모두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기형이 소리쳤다.

    “반장님. 느낌이 이상합니다. 제가 현장에 가보겠습니다.”

    “안돼. 위험해.”

    “아닙니다. 그들이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박 형사가 위험합니다.”

    권총을 챙긴 기형이 버스를 급히 내려 나희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인우는 경찰청 통제실에 이 상황을 보고하고 경찰특공대 지원 요청을 했다. 상황실 요원들과 함께 버스에서 내린 인우가 현장으로 뛰어갔다.

    “탕! 탕! 탕!”

    여러 발의 총소리가 났고 뛰어가던 인우와 일행들은 일제히 제자리에 앉았다. 당황한 기색의 인우는 권총을 꺼내 들고 두 개 조로 나눠서 접근했다. 마약반 생활이 이십 년이 넘은 그에게도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후배 형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를 엄습했다.

    나희가 있던 자리에 가까이 다가간 인우가 반대편을 향해 신호했고 형사가 달려갔다. 그곳에는 누군가가 쓰러져 있었다.

    “박 형사!”

    인우가 뛰어가서 그녀를 안았다. 나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건물 안에 조 선배……”

    인우는 그녀를 뒤로 하고 형사들과 함께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모든 형사는 흥분한 상태로 플래시 비추며 소리쳤지만 그들은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였다.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을 따라 한층 한층 올라가자 그곳에는 쓰러진 사람이 있었다. 기형이었다.

    인우가 달려가 그를 흔들었다. 복부에서 쏟아진 피가 바닥에 흥건했고 기형은 초점 없는 눈 빛으로 있는 힘을 다해 말하려 했지만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조기형과 박나희의 장례식이 열렸다. 스마일 최를 쫓다가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언론에 알려지게 되면 지금까지의 비밀수사는 허사가 되는 것이었다. 조용히 장례를 치른 동료 형사들은 인우를 손가락질했다. 동료가 죽었는데도 범인 체포에 미쳐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다고 욕했다. 얼마 후 그는 퇴직을 했다.


    교통안전 완장과 호루라기를 두른 인우가 시골길 근처의 작은 가게에 들렸다. 그는 만원 한 장과 박카스를 계산대에 올렸다. 그리고 사진 한 장을 아주머니에게 내밀었다.

    “이 사람 본 적 있어요?”

    “무슨 일 때문……”

    “오래된 일이긴 한데요. 이 사람 반년 전쯤 이곳에 들리지 않았나요? 거스름돈 필요 없어요”

    인우를 아래위로 훑어보던 아주머니가 돋보기안경을 꺼냈다.

    “본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네요.”

    “늦은 밤이었고 머리카락은 사진보다 짧아요.”

    “그러고 보니 문 닫기 직전에 와서 담배를 사 갔던 사람과 닮았어요.”

    인적이 드문 곳의 가게였는지 아주머니는 기억하고 있었다. 인우가 자세를 낮추고 인상착의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아, 이 사람. 워낙 지저분한 외모라서 기억나네요. 그리고 입 냄새도 심했어요.”

    “입 냄새?”

    “네. 오징어를 먹었는지 냄새가 많이 났어요.”

    인우는 가게 밖으로 나와 담배를 물었다. 하늘을 향해 연기를 뿜는 그의 손에는 박나희 형사의 사진이 있었다.


    그녀는 스마일 최 작전이 시작된 이후 마약반으로 자청해서 왔다. 인우는 사고 당일 그녀를 싣고 간 앰뷸런스가 등록되지 않은 차량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의 반대라며 그녀의 시신조차 확인하지 못했고 서둘러서 화장해 버린 것이 그의 의심을 샀던 것이다.

    며칠 후 방범 자치 지구대 강인우 앞으로 편지가 배달되었다. 보낸 사람의 이름은 성냥팔이 소녀였다.

  

   ‘성냥팔이 소녀 얘기 알지? 추운 겨울날 성냥 팔다가 얼어 죽었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사람들은 관심 갖지 않아. 감성에만 젖어 불쌍하다고 연민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거든. 대한민국 사회가 원래 그래. 들끓다가도 언제 그랬냐며 가라앉으니까. 죽은 내가 괜찮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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