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항해일지
국민취업제도 상담사님과 몇 번의 대면 상담과 유선 문의를 거쳤다. 행정적 절차와 설명을 들은 후에 상담사님께 이런 나의 상태를 전할 수 있었다. 수많은 참여자들의 행정처리를 담당하실 것을 생각하니 나는 최대한 제도와 현직자이신 상담사님의 정보를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그것을 위해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등 질문들을 준비해 갔다. 마음이 앞선 여러 질문들에 상담사님은 차근차근 현재 접근 가능한 범위의 정보들을 제공해 주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꽤 성가신 참여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상담의 초반쯤, 선택하고자 하는 1-3개 정도 직업의 직무 탐색을 숙제로 내주셨다. 워크넷에 한국직업정보에 들어가면 직업들이 직종별로 분류되어 있고, 하는 일과 흥미, 환경, 능력, 임금, 만족도, 전망까지 잘 정리되어 있다. 특히나 아직까지 진로 선택의 확신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관련직업이나 전직가능 직업에 대한 정보는 흥미로웠다. 유사 직종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요약된 내용들을 꼼꼼히 살피며 탐색한 직업들을 비교해 보았다. 관련학과를 나와야 하거나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는 직업들을 제외하고 내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는데 인사사무원은 직업상담사와의 전직 가능률이 비슷할 뿐 아니라 임금 수준도 높았다. 당장 직업상담사로서 일하고 경력을 쌓을 수 없지만 인사 사무직으로 근무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 느꼈다. 사실 직업상담사라는 직업보다 인사사무직에 대해서 어쩐지 더 잘 알 것 같았고 접근도 용이해 보였다. 원래 설정했던 방향을 틀어 인사사무직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필요 역량들을 구체화시켜 갔다. 역시나 이번에도 필요한 것은 해당 직무 경험이었다. 전직을 희망한다는 건 계속해서 벽을 마주하는 일과도 같았다.
그러던 중 국민취업제도의 일경험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비롯해 지금껏 해왔던 일과 견주어 도 좋은 조건은 아니었지만 해당 직무의 근무 경력을 쌓을 수 있음에 의욕이 솟았다. 그리고 곧 자만해왔음을 깨달았다. 이력서를 넣더라도 안 될 수 있고, 면접에도 떨어질 수 있는 건데 그동안 너무 이것저것 따지며 NO라는 이유들을 붙여왔음을 말이다. 급여와 조건 등 여러 측면을 따져 골라 갈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나는 이 분야에 신입생이었으니 제로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았다. 의지를 다잡은 두어 번의 면접 끝에 채용 회사의 인턴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바라던 출근 날, 잠이 덜 깬 몸을 일으켜 붐비는 버스와 지하철에 몸을 싣고 회사로 가는 길이 즐겁게 느껴졌다. 규칙적인 사회생활은 일상의 활력을 가져다준다.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사회구성원으로서 존재한다는 의미이므로 어떤 직무이든 가치를 일과 엮는 일은 해석하기 나름이었다. 하지만, 출퇴근과 업무를 반복하는 생활을 하다 보면 현실적으로 그 안의 가치를 인식하고 지내기란 그리 간단치 않다. 며칠 지나지 않아 퇴근길이면 지금하고 있는 일의 가치를 찾아내려 애쓰고, 내면적 성찰을 갈구하기에 급급했다. 어느 자리이든, 적응기가 필요한 것을 알기에 단순히 내가 초반 적응에 멀미를 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버텼다.
그렇게 넘실거리던 의욕은 점차 가라앉았다.
처음이기에 뭐든 어설프고 부족했지만, 참기 힘든 것은 그 과정에 있는 자신이었다. 그동안 일해왔던 분야와 일하는 스타일이 달라 어려움을 겪었다. 그동안은 융통성 있게 대처하고, 전반적인 흐름과 줄기를 파악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활발히 커뮤니케이션하는 자세가 필요했다. 하지만 채용이란 융통성을 배제해야 하고, 빠른 처리보다는 정확하기 위해 수차례 세세하고도 수고스러운 단순 작업의 반복이면서도 규칙과 질서, 원칙에 준수하는 보수적인 작업이었다. 업무 목표와 성격을 파악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적었다. 이해와 업무는 별개에 가까웠다. 야근과 외근의 반복, 과도한 업무량은 회사 전체의 숙제였으니 차치하고, 시간이 갈수록 나는 한 가지 생각에 짓눌렸다.
"나는 도움이 되고 있는가?"
왜곡된 생각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이 뿌리에는 유능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자신의 한계에 대한 안타까움과 주변과 소통의 아쉬움 등 복합적인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동상이 된 자세로 컴퓨터 화면을 한없이 검토하는 작업의 날들이 이어지니 나는 빛을 보지 못한 식물처럼 시들어갔다. 동료들,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가 능률로 이어지는 환경에서 일해 왔던 나는 블루라이트로는 광합성할 수 없었다. 꼼꼼을 넘어 정밀한 자료 정리와 검토는 비유하자면 일어나면 앉히고, 일어나면 앉히는 일의 반복과 같았다. 나아가고 싶은데 그렇게 계속해 제자리임에 답답하고 울적했다. 회사 대표님은 첫날을 제외하고 뵐 때 인사만 드렸던 지라, 그만둘 때쯤엔 내가 어두운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하셨다. 거울을 보니 껍데기는 비대하고 그 속은 잔뜩 쪼그라든 무엇인가가 되어있었다.
지금에 나는 그 회사를 다니지 않고 있다. 단순히 업무 환경만이 나를 선택에 이르게 한 것은 아니다. 주변에 하소연도 해보고, 도움도 청하고, 멘토와 상담을 통해 회사 내외적으로 적응과 상황 해결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거쳤다. 그럼에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니라는 감각을 주는 요소들이 있었다. 인간의 뇌에서 좌뇌는 언어적, 논리적 부분을, 우뇌는 감각, 감정, 직관적 추론을 관여한다. '아니라는 느낌'은 우뇌의 신호인 것이다. 나는 이 느낌에 대해 항상 의문을 가져왔었다. 언어로 설명되지 못하는 감각을 따르는 것이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증거인 것만 같아 늘 이 느낌을 경계했는데 '나'라는 인간이 이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양쪽 뇌는 열심히 신호를 보내는 중인 것이다. 이윽고 수습기간을 바듯이 마친 나는 다시 선택했다.
그렇게 배운 것은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이 있다는 감각이었다. 뭐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은 오히려 상황을 비대하게 살찌운다. 적절한 열정을 가지고 임하여 만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 그 열정이 과도하면 불타 재가 되기도 하고, 이후의 작은 불씨를 다시 지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현실과 이상은 간격이 있기 마련이라 너무 많은 기대를 가지고 뛰어들어도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