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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음 Jun 01. 2023

일어나자 움직이자 걷자

백수의 항해일지

 사무직으로 일하면서 공부해 오던 자격증을 틈틈이 준비해 갔다. 적응과 혼란을 겪으며 공부에 충실했다고 자부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2차 시험을 치르기 전, 기간 적으로 여유가 생겨 시험공부에 비중을 둘 수 있었다. 그간의 과정을 축약하다 보니 부지런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시간들은 온통 나에게 멀미였다. 대체로 불안에 휩싸였고, 중심을 잡기 어려웠으며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다만, 눈앞의 업무와 시험처럼 정해진 말미를 바라보며 조금씩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 불안이 고개를 들 때면 삶을 전경으로 떠올려 본다. 지금이 아니라면 방황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행스럽기도 하고, 방황하는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낯설기도 하다. 어쩌면 항상 방황해 왔는데 지금에서야 제대로 인식하는 건지도 모른다.

무어라 정의할 수 없으나 나는 살아가고 있다.


 원래 혼자 살던 나는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동안은 가족들과 함께 지냈다. 시험 준비를 하면서는 다시 혼자 지내며 공부했는데, 가족들과 있을 때는 내 시간이 만들어지지 않아 미래를 조직하기 어려웠고, 혼자 있을 때는 외로움과 자유로움이 휘몰아쳐 일상이 형태를 잡기 어려웠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다가, 막상 일을 다니기 시작하니 몸을 이끌고 출근하기가 끔찍했다.

결국 이거 아니면 저거와의 싸움이었다.


 차라리 빨리 시험이 끝나버렸으면 했다. 그렇게 바라건, 바라지 않건 시간은 어김없이 왔다. 홀가분함도 잠시, 불분명한 상태는 커다란 그늘을 드리웠다. 그 그늘은 자꾸만 크고 어두워져 갔다. 장애물을 따져보고 변명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편하지만 무언가 채워지지 않았다. 포만감이 들 때까지 먹었고 침대에서 일어나긴 해야지, 싶을 될 정도가 돼야 일어났다. 대체로 엉덩이가 아파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으니 점차 변해가는 외모에도 감흥이 덜했다. 아무렴 상관이 없었다. 졸린 것 같기도 하고. 배고픈 것 같기도 하고. 심리학에 보면 '에라이 효과'라는 게 있다. 보통 다이어트 중에 절제하지 못하고 한 입 먹고, 에라이 모르겠다! 하고 폭식을 하는 등 한순간의 실수로 한꺼번에 무너지는 현상을 말한다. 너무나도 간단히 에라이 한 하루들이 마구 지나갔다.


 테두리가 없는 일상이란 계속해서 의식적으로 부지런해져야 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일정한 시간에 오고 가고, 업무를 수행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 과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던가 일상을 지탱해 주는 균형은 사회적 접촉으로 이루어진다. 사회적 접촉이 없으니 무기력에 허우적대면서도 머리로는 알고 있는 사실 때문에 매일이 어긋났다.


 사무직 이후, 다시 백수가 된 나는 이 분야를 꿈꾸게 해 준 직업상담 분야를 돌아보았다. 생각하고 마음먹은 길은 가봐야겠다는 결의가 차올랐다. 세상의 모든 직업을 다 겪어보고 어떤 것이 나와 맞는지 일일이 알아볼 수 없다. 그저 내가 손 뻗을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아가며 살 수밖에.


 그만 탓하기로 했다. 외롭지 않으면, 살을 빼면, 이만큼 돈이 생기면, 마음에 드는 직업을 가지면, 원하는 공고가 올라오면, 날씨가 좋으면, 내일, 내일, 진짜 내일. 하지만 알고 있다. 그날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행동화'해야 했다.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고, 생각을 글로 쓰고, 일단 씻고, 집안일을 하고, 무작정 나가 걷기. 생각은 자꾸만 나를 멈추게 만들었으니 뭐든 작은 것이라도 하나씩 쌓아야 했다.


 움직이자.

 오늘의 글도 그 걸음 중 하나이니, 언제든 돌아보고 다시 움직이자.

 그리고 나가서 걷기로 한다.






 글을 올리고 밖을 나가 걸었다.

밖을 나서 조금 걷자 이내 무성하게 자란 푸른 나무들과 꽃들을 보았다. 문득, 나에겐 함께 길을 나서줄 강아지도 있고, 가까이에 산책하기 좋은 공원도 있었다. 손을 맞잡고 보폭을 맞춰 걷는 이들을 보았고, 새가 앉았던 자리 옆을 조심스레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지금이 다시는 없을 행복한 순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든 이가 젊은이에게, 직장인이 대학생에게, 대학생이 더 어린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나. "그때가 좋을 때야." 돌이켜보면 나도 좋은 때가 있었다. 그때는 또 그때만의 근심과 걱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렴풋하다. 그러니 지금도 좋지 않을 것 없겠지.


 나가기 전엔 걸으며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과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진로에 대해 빽빽한 고민을 안고 있던 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올라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고자 했다. 일주일 간의 여행 끝에 깨달았다. 그 일주일 동안 나는 안고 있던 고민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 고민에 빠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는데 어느덧 실타래는 풀려있었다. 정답이 없는 것을 생각하는 일은 때때로 나를 멈추게 한다.


 움직이자.

 오늘의 글도 그 걸음 중 하나이니, 언제든 돌아보고 다시 움직이자.

 다시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다시와 이 글을 보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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