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항해일지
이전에는 다양한 모임도 즐기고 사람들을 만나길 좋아했는데 자신을 설명하지 못하는 상태란 사람을 참 작아지게 만드는 것이다. 꼭 설명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저울질당하기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럼에도 모임에 나가야겠다 마음먹기에 며칠, 어플을 설치하는데 며칠, 가입하고 둘러보는데 며칠, 몇 개를 추려보는데 며칠, 선택하고 일단 해볼까? 싶은 날들 다시 며칠. 에라 모르겠다! 하고 참여 버튼을 누르기까지. 그렇게 내일이 여러 번 쌓여 일단이 되고, 일단이 다가와 그날이 되었다. 모임을 앞두고 취소를 하거나 일정을 미루는 열정이 따르지 않아 다행이었다. 카페에 앉아 당장 3분이면 할 수 있는 일을 답답할 정도로 길게 늘였다. 무기력과의 오랜 전쟁이었다.
그렇게 나간 모임은 독서모임이다. 나는 원래 독서모임을 좋아한다. 퇴사 직전까지도 바지런히 모임에 참여했었다. 그럼에도 다시금 사회적 연결을 꾀하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일이라니. 백수란 참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 거구나. 아니, 그 상태 자체라기보다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사회적 시선에서 이전보다 자유로워졌다고 여겼는데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고, 온전히 받아들이기도 싫은 것이다. 감정의 굴레가 조악한 웅덩이에 빠져있다.
사람들을 마주하기 전까지가 어려웠지, 인사를 나누고 대화가 오가니 걸림돌이랄만 한 건 없었다. 오히려 나오길 잘했다 느끼며 많은 걸 배우고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독서 모임의 장점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 책 이야기로 시작해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를 말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확장시킬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참 어렵고 힘겨웠을 날들을 예시로 들며 이야기할 수 있음은 그 사람이 얼마나 단단한 사람이 되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스스로 말하면서 나의 시간을 정리하거나 정의해 보면서 현재의 불안에서 반발짝 떨어져 본다.
누군가의 부단한 하루와 일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힘을 얻기도 하지 않나. 타인의 서사를 듣는 일은 그 사람의 과거를 치유하고, 듣는 이에게 많은 삶의 갈래를 제시함으로써 삶의 견고함을 안겨준다. 독서 모임의 장점이라면 무수히 나열할 수 있고 알고 있었음에도 다시 제자리를 찾는 것이 이토록 질긴 고리를 끊는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이 시간을 나에게 애쓰지 않고 더 자주 건네주기로 마음먹는다.
대화 중 발제자는 '무기력에 중독'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단어는 나에게 느낌표였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 길게 늘어나 더는 쓰지 못할 것 같은 고무줄 바지 같던 시간의 이름을 들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동사보다 명사를 편하게 느낀다고 한다. 명사로 된 정보를 보다 명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직업이나 직함으로 소개를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에, "이것저것 다양한 일을 해요."라는 말과 "마케터입니다."는 다를 것이다. 알 수 없이 자꾸만 힘없이 늘어지는 일상은 점차 무기력에 중독돼 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나라는 사람의 생산곡선은 점차 폭을 줄여가더니 이내 시간을 축내고 마는 마이너스를 향해 뻗어 있었고 이는 곧 감각과 일상의 마비를 의미했다. 바이러스의 원인을 찾았다. 가뜩이나 탐탁지 않은 단어인 무기력에 중독까지 더해지니 가히 파급력이 엄청났다. 지피지기도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알고 나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상태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 시간을 설명할 수 있음은 제법 통쾌했다.
모임에 나가기까지도 더딘 시간이 걸렸지만, 마음먹기에도 그만큼의 훈련이 필요했다. 모임 당일까지 손에 꼭 쥐고 있던 책은『빠르게 실패하기』였다. '실패'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행동을 촉발하는 주문 같은 말들을 빼곡히 읊고 되새기고 나서, 비로소 작은 실천을 짜내었다. 무기력의 날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날들은 누구나 겪는 일이기도 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 시간을 어떻게 넘어왔는지를 들으며 눈이 반짝이기도 했다. 책으로 오랫동안 마음 다잡던 일을 누군가와 마주하며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이전과 다른 힘을 가지고 내 무기력을 희석했다. 아침 일찍 가는 수영으로, 새로운 경험으로, 뮤지컬이나 공연관람 등 다른 공간에서의 체험처럼 저마다의 방법으로 지나왔다. 공통점은 '행동'이었다. 나는 다시 행동이란 도끼를 들고 생각의 꼬리를 자른다.
두 시간 여의 대화로 일주일, 아니 한 달 치, 아니 혼자서는 얻을 수 없던 깨달음과 환기를 얻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서로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라고 한다. 과연 옳다. 혼자 깊이 생각하는 것과 여러 사람이 함께 뻗어가는 생각은 다르게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