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음 May 25. 2023

갈 길이 멀다는 것은 언제부터 나를 웃음 짓게 했는지

백수의 항해일지

 직업상담사로 일하기 위해서는 자격증이 필수 조건이었다. 하지만 내가 고민하던 시점에서 해당 연도 시험은 모두 종료된 상황이었고, 다음 시험은 6개월 후였다. 과정평가형이라는 형태의 학원 수강을 고려했으나 찾는 학원마다 인원미달로 폐강되길 반복했다. 자격증을 위해 공부하는 취업준비생으로 있자니 이미 사회생활을 해왔던 나로서는 초조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나이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한 요소가 될 것이 또렷해 보였다. 해당 분야의 경험도, 자격증도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도 우선은 공부를 위해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내일배움카드를 통해 다양한 훈련받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독학을 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불안함을 안고 혼자 제대로 집중할 자신이 없었다. 학원 상담 중에 구직자라면 국민취업지원제도를 통해 수강료를 더욱 할인받을 수 있다는 말에 신청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계속해서 센터나 학원 등에서 만나고 있는 모든 분들이 직업상담사로서 일하고 계신 분들이었다. 내가 그곳을 찾을 수 있도록 홍보를 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및 운영하고, 문의사항을 응대하고, 상담하는 것까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다채로운 업무를 소화하고 계셨다. 그러는 중 만나게 된 분들께 조심스레 향후 방향에 대한 질문들을 드렸다. 상담사님이 느끼는 직업상담사의 미래나 이후의 커리어패스 계획처럼 어쩌면 무례한 질문임에도 곰곰이 생각해 보시고 솔직하게 답변해 주셨다. 하지만 어쩐지 두루뭉술함은 걷힐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아예 1:1 진로 상담을 받았다. 알아 보니 찾아보면 지역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워크넷의 심리검사를 활용해 내가 생각한 직무의 필요 역량들을 비교해 주시고, 현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야기해 주셨다. 이후에 공부한 바로도 알 수 있듯이 상담사님이 나의 진로를 결정해 주시거나 제시해 주시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파악능력을 비롯해 검사를 활용해 이야기해 주시는 말씀들은 알알이 힘이 되었다. 상담사님 스스로 직업에 만족하는 자세를 엿보면서 선배 상담사님으로서 해주시는 말씀들은 와닿기에 충분했다. 덧붙이시길, 입직을 하고 이 분야에서 계속해 일을 하려면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갈 길이 멀었다. 그런데 갈 길이 멀다는 말은 언제부터 나를 웃음 짓게 했는지. 그걸 떠올리면 즐겁다가도 계속해서 미루는 내가 있는 건 아닐까 조금 두렵다. 하지만 나는 솔직해지는 것에 이전만큼 두렵지 않다. 천천히, 차근히, 그렇게 멈추지 말지어다. 갈 길이 멀 테니 말이다. 


 최대한 빠르게 자격증 취득하고 싶었으나 결국 6개월 이후의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조급한 마음을 부여잡고 인터넷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직업상담사 자격증은 가장 먼저 직업상담학을 배우기 시작하는데 다양한 학자들과 이론들이 나온다. 그러는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해석과 관점, 철학의 등장이 나를 설레게 했다. 인간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진리가 없다는 점에서 '나'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불안이 고요해지는 듯했다. 실체를 알게 되면 덜 무섭고, 덜 두려워진다. 더 수용할 수 있고, 더 인정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알게 된다는 것은 결국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나에게 누군가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사소한 것들까지 알게 된다는 것은 사랑하기에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인간에 대해, 나에 대해 더욱 이해할 수 있게 했으니 강의이자 공부였지만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명료하게 나를 다독였다. 특히나 이론마다 비판과 통합을 반복하며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필요로 하는 공부는 나를 가슴 뛰게 했다. 나를 활용해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 어쩌면 이 시간이 나를 위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실존주의를 공부하던 때가 기억에 남는다. 이론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요소는 '불안'이다. 인간은 태어났으니 불안하다. 인간은 끊임없이 불안하다. 인간은 불안하다는 생각으로 인해 불안하다. 나의 이런 불안함과 불온전함이 인간이어서 그렇다는 당연함과 자연스러움.  

"자연스러운 불안" 

이 깨달음 하나는 온갖 형태의 무시무시한 그림자들을 빛으로 비추었다.






 새가 낮게 비행했다. 땅에 닿을 듯한 날갯짓이었으나 새는 날아 맞은편으로 착지했다. 비상하고도 높은 비행이 필요한 것은 아니구나. 작고 낮은 날갯짓으로도 충분히 닿을 수 있다. 갈 길이 멀다. 날아오르는 시간이 더디더라도 오래, 아주 오래 높이 혹은 멀리 닿았으면 한다.


이전 07화 스스로 헤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