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항해일지
퇴사는 나에게 용기였다. 주변의 기대에 응할 수 있는 안정적인 배에서 사회의 바다로 맨몸으로 뛰어드는 일이었다. 꽤 길었던 고민의 시간 동안 쌓인 것은 주체성이었다. 그 시간이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주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내린 결정에 대한 튼튼한 뿌리가 되었다. 그래서 이후의 직업선택은 보다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단순히 할 수 있는 일에서 벗어나 내가 어떤 것을 업으로 하여 발전시키고 싶은지 생각했다. 애초에 퇴사의 이유에도 지속 및 발전 가능성의 희미함이 컸다. 나는 오래도록 일을 하고 싶었다. 나중에 4050대가 되어서도 꾸준하게 자신을 성장시키면서 할 수 있는 일을 꿈꿨다.
내가 해왔던 선택들과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헤아리는 일은 나의 가치관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나는 어떤 것에 가장 가치를 두고 있나. 어떻게 사는 것이 그 가치를 확립시켜 나가는 것일까.
언제나 나를 움직이고 내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것은 사람이었다. 나를 버틸 수 있게 하고, 힘들고 어려운 시간에도, 어둡고 지치는 시간에도 항상 남는 것은 사람이라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때,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때는 어김없이 행복했다. 결국에 남는 것은 사람들이니 결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출근길, 붐비는 버스 안에서 신발끈이 풀어진 사람을 보았다. 마침 앞에 앉아있던 나는 허리를 숙여 그의 신발끈을 묶어주고 싶다는 생각했다. 하지만 낯선 이의 신발끈을 묶어주는 일이 오지랖을 부리는 듯해 그저 바라만 보았다. 서비스 직의 특성일 수 있지만, 타인의 안녕을 바라는 일은 나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공항에서 일을 했던 나는 이용객들이 불편 없이 공항을 이용하고 무사히 출도착을 하는 것이 직무 태도의 기저였다. 당시에 사귀던 애인과 대화하던 중 알게 된 것은 모든 사람이 이런 마음을 갖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도 관계없는 타인의 일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함께 여행을 갔던 언니는 그것을 두고 긍휼한 마음을 가진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 사람을 돕는 일. 사람들의 안녕을 바라는 일. 그것이 내가 가고 싶은 갈래 중 하나였다.
여기까지 떠올렸지만 내가 좋아하고 발전시키고 싶은 항목들과의 직업을 연결 짓기란 쉽지 않았다. 문득 나는 직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직업이 있다던데. 직업에 대한 이해와 범주화가 고르지 못하다는 답답함이 일상에 먹구름 드리웠다. 그러던 중 '직업상담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다. 가지고 있던 막연함을 풀어줄 것 같다는 반가움이 움텄다. 지금까지 쌓아온 서비스 역량과 상담사의 필요 역량, 타인을 도울 때 느끼는 보람, 언어적 예민함과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 직업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며 점점 내가 원하던 가치들과 짝지어지는 듯했다. 커리어패스와 발전가능성이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직업적 성장이 곧 개인의 성장과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에 더할 나위 없어 보였다. 요즘에는 현직자가 말하는 현황이나 브이로그 등 관련 영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단점이나 생각과 다른 점들까지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었다. 불안한 시선이나 단점들에도 나에게 있어 놓치고 싶지 않은 요소들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든 다 좋기만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잘 견디는 사람이기도 해서 장점이 분명하고 그를 인지할 수 있다면 해볼 만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더 이상 생각만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단계였다.
생각은 나를 깊이 있게 할지 언정, 나를 구성하는 것은 행동이다. 행동을 촉발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의지도 필요하겠지만, 선언하고 주변에 이야기함으로써 책임감과 분명함을 가질 수 있었다. 관련 자격증 커리큘럼들을 찾아보고 직접 상담도 받아보면서, 보다 구체적인 방향을 구축해 갔다. 특히나 상담사님이 이루고자 하는 분야의 실무자임에 좀 더 자극이 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도 다양한 갈래의 길을 만났다. 직업상담사가 되기 위해서는 자격증이 필요한데 자격증을 취득하는 방법부터 갈래가 나뉘었고, 이후 취업하게 되는 형태에 대한 고민도 따라왔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듯 드디어 해보고 싶은 일의 가닥을 잡는가 했더니 앞서는 마음만큼 따라주는 일이 없었다. 다시 생각이 많아졌다.
이번엔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그에 앞서 또 심히 흔들리고 다양한 요소들을 재배열하며 걱정을 앞세우기 시작했다. 깊게 고민하다가 "나라는 사람, 이런 사람이었지." 하고 너털웃음이 났다. 이 문장 하나가 선택의 마지막 단계였다.
일단, 해보자. 그 과정에 다른 갈래를 마주한다면 다시 그때 깊이 고민하고 고민하는 나를 보며 웃고 그 선택에 응원을 보내야지.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손에 쥐어낸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