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항해일지
하루하루 머리와 몸이 사투를 벌였다. 더 잘까 싶은데 일어나긴 해야겠고, 귀찮은데 나가지 말고 집에 있을까. 넷플릭스, 침대, 휴대폰. 하나같이 말없이 나를 이끌고, 이끌리는 대로 하루를 보내고 나면 기분이 언짢았다. 초반에는 언제 눈떠도 상관없고, 집 밖을 나서지 않아도 되는 날이 더 많으며, 언제 먹고 자던 상관이 없어진 날들이 반갑고 개운하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영 생산성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어지니 침울해지고야 말았다. 그렇게 유유자적한 시간이 가져다주는 안정은 지속될수록 우울과 초조로 물들기 일쑤였다. 누군가와 얘기하고, 움직이고 싶었다. 출근할 때는 모든 게 지긋지긋하기만 하고 언제쯤이면 이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나 갈망했는데 막상 내려와 앉으니 슬슬 좀이 쑤신달까. 내가 부지런하거나 외향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이 자유를 줄곧 만끽하다가, 자유란 규제가 있어야 값진 것인가 하는 감각이 어렴풋해졌기 때문이다. 배고플 때 먹는 밥이 맛있고, 바라다가 얻은 것이 귀하기 마련이니까. 다시 쳇바퀴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까진 아니어도 일어나 걷고 싶어졌다. 조금은 뛰어볼까 하는 마음도 생겼다. 실제로 날이 좋아져 산책을 나가고 조금씩 뛰어보는 날도 생겼다.
학교를 다닐 때, 중간고사 기간이면 벚꽃이 가장 흐드러지게 피었다. 볕도 어찌나 좋은지 바깥에 앉아 햇빛을 쬐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정도였다. 그럴 때면 언젠가 이 시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만을 꿈꿨다. 아름다운 시간을 만끽하지 못하는 현실이 울적하고 답답했다. 어른들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설명해주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줄 서기와 시험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목표와 이유, 동기와 당위. 명확하지 않음은 나를 가두는 울타리였다. 그런데 이제 울타리를 벗어나 목표와 동기를 만들어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의 이유를 붙이고 의미를 쌓아가는 것부터 시작이라 함은 물 없이 모래성을 쌓는 일. 손에 쥔 종이비행기가 거센 바람에 날아가기를 기다리는 일. 오랜 가뭄에 기우제를 지내는 일. 일필휘지의 날을 기다리는 일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깨달았다. 의미는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이제 뭘 하지, 나는 뭘 하고 싶지, 나는 뭘 잘하지, 어디로 가고 싶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물음표가 헤엄쳤다. 책을 읽고, 주위를 둘러보고, 유튜브나 인터넷을 찾아보며 그에 대한 대답을 조물조물 만들어갔다. 서툴고 엉성하지만 조금씩 살을 붙여갔다. 무엇인가 팟! 하고 떠오르는 법은 없었다. 오히려 찾아볼수록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알게 된 건, 아무리 앉아서 찾아봐도 현실과는 또 차이가 있겠지, 결국 해보지 않고는 제대로 알 수 없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생각만으로는 만들거나 이룰 수 없었다. 생각도 글로 써야 뚜렷해지고, 말로 꺼내봐야 정리가 된다.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내가 해온 것들, '행동'이구나를 깨달았다. 생각만으로 내일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가 알지 못하는 직업의 세계는 무궁무진할 텐데. 접근 가능한 것들 조차 알아보면 좌초됐다. 기어이 뛰어들지 않고서야 아무것도 손에 쥘 수 없는 것이다. 어지러운 머릿속을 비우고자 산책을 나서기 위해 어느 길을 걸을까, 어떤 카페를 가볼까,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를까 하고 생각했다. 선택지가 많으니 고민하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느라 안 그래도 시끄러운 머릿속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지금에 와 돌이켜보니 목적을 가진 산책이란 모순이었다. 산책의 사전정의는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이다. 단지 그뿐인데 여기에 목적과 효용을 덧붙이려 애썼다. 이처럼 나는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의미와 목적을 덧붙이려 애를 써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답이 없는 일을 두고 답에 가까워지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것이었나. 인간의 존재 의미는 저마다 다르고 정의 내릴 수 없지만, 정의하고자 하는 노력이 불필요하는 것은 아니기에 이 시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되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돌고 돌아온 답은 이제는 뭐든 해야 했다. 일단 몸을 움직여야 했다.
이력서와 자소서를 쓰고 괜찮다고 생각되는 공고를 찾아 지원해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아니 웬걸. 지원한 회사에 면접을 볼 생각, 붙으면 집에서 어떻게 다닐지까지 고민했는데 세상에 그런 김칫국이 없었던 것이다. 이후에는 괜찮아 보이는 공고면 클릭해 지원서를 넣었다. 김칫국은 아주 차가웠고 배불렀다. 퇴사 전, 밖은 많이 춥나..? 염려했는데 그렇다. 과연 밖은 추웠다. 그런들 어떠하리. 원래 겨울은 추운 법이다. 내 인생의 계절에 겨울이 온 것일 뿐.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주 열심히 겨울을 나 주겠다.
해봐야 한다. 일으켜야 한다. 나가야 한다.
나의 답을 만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