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항해일지
계속해서 허기가 졌다. 먹어도 먹어도 부족한 느낌이었다. 분명 배부르게 먹었는데 금세 허기가 찾아왔다. 물을 한 컵 들이켜고 신중히 그리고 여러 번 스스로를 달래야 했다. 이 허기가 어디에서 오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채울 수 있는지 몰라 자꾸만 쉬운 방법으로 들이키려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이 사실이 처음에는 안도였다가, 휴식이었다가, 방학이었다가, 부름이었다가, 실망이었다가, 원동력이었다가, 신호탄이 되었다. 퇴사를 한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 일상은 이어지고,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같은 맥락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고민 걱정하던 일들은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었고,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가고, 풀어갈 수 있는지 고민만 해서는 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고민은 필요하다. 하지만 선택지들이 생기고 나면, 그 앞에서 오랫동안 머문다고 해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답은 없으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보기를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을 때 밀고 나아가면 되는 것. 머리로는 간단히 이해되지만 쉽게 체화할 수는 없는 문장을 여러 번 눈으로 쓸어 넘긴다. 아무런 테두리가 없는 시간이란 눈물겹게 자유롭다가도, 다시 일어서서 스스로 테두리를 쌓아야만 하는 것이다.
삐그덕 삐그덕 째깍째깍 시간이 간다. 아니, 출렁이나 바람이 쏴아 지나가듯이 시간이 간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날들 사이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간들이 피어났다. 콘크리트를 비집고 간신히 고개를 내민 풀처럼 말이다. 아빠를 보고 온 다음날이었다. 눈치를 살피다가 별일 아니라는 듯, 나 회사 그만뒀어. 하고 말했다. 나의 뉘앙스는 집으로 오는 새로운 지름길을 찾았어, 어제 친구랑 싸웠어, 이 주 전쯤 코로나 걸렸었어. 정도로 정말 지나가는 사실 전달이었다. 하지만 그 지름길은 어디였고, 친구랑은 왜 싸웠고, 코로나에 걸려 몸상태가 어떠했고 하는 설명조차 덧붙이지 않았으니 아빠는 깜짝 놀라 물으셨다. 꽤 이전부터 정년퇴임의 햇수를 꼼꼼히 세어 나와 동생을 볼 때마다 되새겨 주셨기 때문이다. 처음엔 아빠의 연세가 벌써 그리 되었구나 싶다가, 점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인가 생각했다. 주변에서 결혼을 아버지의 정년 이전에 치르기 위해 일정을 당기는 경우를 보았으니 말이다. 정년 이후에는 돈을 벌지 못하니 우리가 더 챙겨드려야겠단 생각까지 닿았었는데 내가 퇴사를 결심하는 데엔 그 생각은 아주 깔끔히 잊혀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캄캄한 날들에 아빠의 당혹스러운 모습이 겹치니 몸이 무거워지는 듯했다. 엄마는 왜 나의 퇴사를 주변에 숨길까. 나는 홀가분하고도 자립적인 나의 선택이 뿌듯해 인스타에도 개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엄마는 친척들에게 괜히 얘기하지 말자며 입을 맞추길 원했다. 아마 내가 없는 어떤 자리에서 모르는 이들에게는 딸이 직장에 다닌다 이야기하시겠지.
당장 돈을 벌어 상황을 수습해야 하거나 아무 직장이라도 들어가 부모님을 안심시킬 당위까지는 없지만, 어쩐지 먹먹했다. 내 주변에서는 퇴사를 했다고 하니, 축하한다는 말과 부럽다는 눈빛을 받았는데. 세대차이인가 하고 넘겨볼까 싶다가도, 답답하고 원치 않던 일상에서 겨우 빠져나왔는데 다시금 조바심이 싹트는 것이다. 부모님은 결코 나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지만, 그들 앞에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은 마음과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걸까에 대한 고민이 섞여 탁한 먹물색의 물감만이 팔레트에 가득하다. 무겁고 슬프다. 다시 자신에게 집중하고자 하니 가벼워진 하루하루가 깃털처럼 날아가 버린다. 아무래도 이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가 보다. 그들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나의 속도만 고집하기엔 슬프고 그들의 속도를 따라가기엔 숨이 벅차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날들을 모쪼록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날들로 만들기 위해서. 그들의 시간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나의 가벼운 시간들이 날아가버리지 않도록. 서로 다른 무게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구나.
이 글은 계획 없이 퇴사 후 내가 느껴온 불안의 과정을 다시 돌이키면서 과거의 나와 현재를 통합하고자 하는 고리이다. 그러면서도 자신과, 연결된 사람들, 내일로 뻗어가고자 하는 디딤돌이며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건네는 한 겹의 망토이다.
시간이 더 지나 중심을 잡았느냐 답해 본다면, 역시나 아직도 흔들리며 중심 잡기 중이다. 그간 터득한 조금의 요령을 덧붙이자면 무게 중심은 나 자신에게 두되, 타인의 기대는 중심이 흔들릴 때마다 잡거나 기대고, 주변의 염려는 흘려보내는 것이 이롭다.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콘크리트 벽 같은 현실에 새로운 도전과 인식이 돋았고, 이전만큼 평온하고 안정된 상태는 아니지만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으며, 내내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