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필요하다

백수의 항해일지

by 윤음

친구들을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하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과 지나왔던 감정들 사이에서 부여잡은 방향의 조각들을 보여줬다. 고민과 기쁨, 걱정과 행복, 배움과 시선을 나누고 끄덕이고 웃었다. 작은 것도 넘어가지 않고 들여다 봐주며 음식과 술을 나누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함께 왔던 우울은 어디론가 날아갔다. 잠든 사이 녹은 눈처럼 친구와 함께하는 사이에 우울이 돌아갔나 보다. 특별하지 않았음에도 그 시간이, 얇지만 도무지 걷어지지 않던 우울을 증발시켰다.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지내는 친구들을 조우하는 일은 달력 사이를 한참 누비는 일이면서도 겨우 몇 장짜리의 일이 돼버리는 일이라서, 그간의 소식으로 시간을 이어 본다. 속도는 잊고 서로의 발걸음을 헤아리는 시간. 모든 걸음은 앞으로, 앞으로. 하지만 어쩐지 내가 전하는 말들은 뒷걸음질만 같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길들을 살펴보고, 우회하고 다시 돌아와 고민에 빠진 모습. 길 잃은 듯하다가도 어차피 살아가며 해봐야 하는 일이라면 흔쾌히 헤맴을 받아들이는 연습의 시간. 그런 시간에 산다는 것은 퍽, 온전해지는 기분이다. 이 길 잃은 듯한 시간이 불안에 휩싸이지 않고 흐르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노를 젓지 않아 동력을 잃고 부유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사람이 필요하구나. 느꼈다. 나의 생각, 나의 상태, 나의 앞으로의 물음표를 달아줄 사람 말이다. 그동안은 물음표가 끊임없이 내 머리를 울려대서 퇴사를 했고,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 이제 주변이 조용해지니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다. 원래부터 시간이 걸릴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안락한 상태의 뇌와 몸이 쉽사리 답을 찾으려 애쓰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이 필요했다. 멍한 나에게 메아리치는 물음표를 달아줄 사람. 온기 있는 시선을 보내오고 내가 같은 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않도록 바라봐 줄 사람. 그동안 외로움이 날 쓰게 했고,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에 나는 쓸 수 있지만, 몸이 움직여야 할 때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는구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자. 사람들과 함께 하자.


나는 나 한 사람만을 책임지면 되었다. 그 깨달음이 책임감이라는 라벨의 두꺼운 외투를 벗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한 친구에게서 임신 소식을 듣게 되었다. 순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다 여러 감정이 스친 후 겨우 내뱉은 말은, "이.. 이모가 열심히 살게!!" 우습지만 정말이다. 열심히 삶을 살아내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사람은 많은 것을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지킬 것이 있는 것,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은 얼마나 큰 원동력이 되는지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어쩐지 멀고도 옅은 순간으로부터, 나는 우리 부모님이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이유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나니 코끝이 시큰해진다. 그렇다면 이제는 반대가 되어 나도 지키고 싶은 이들과 앞으로 지키게 될지 모르는 이들의 존재를 그려본다. 머리로 아는 것과 체감하게 되는 것은 보이는 것보다 사물이 멀리 있는 일이라서, 사실 쉽게 오지 않는 일이라서, 나는 이렇게 글로 닿으려 손을 뻗는다.





정신 차려!


가만히 있다가 자꾸 내 안에서 소리쳤다. 잠시 글에서 멀어졌다 멍하니 흘리는 시간이 생겨나고 아무래도 모르겠다 싶은 날들이 갔다. 그러면 내 안에서 소리치는 것이다. 정신 차려!

인생네컷과 같은 기념사진을 찍어 추억하는 일이 늘어나자 주변의 얼굴들이 물성을 가지고 남았다.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니 많은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사진들 사이에서 가장 나를 많이 바라보는 이는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은 어찌나 명징한 일인지.


나로서 온전하겠다. 좋은 영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고 나도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 그렇게 머리로 하는 다짐을 몸으로, 몸으로.


움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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