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를 하며 자꾸만 고개를 숙여가는 나를 일으키기 위해 애썼다. 반복적으로 입사지원서류를 매만지고, 계속해서 공고를 뒤적였다. 깊은 숨과 함께 주먹에 힘을 주고, 계획을 세우고, 깊이 생각하기보단 일단 행동하고자 했다. 할 수 있는 것을 마주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떨어졌다는 감각을 지우고 아직 지원하지 않은 공고에 집중했다. 의기소침해진 나를 주변에 고백했다. 그럴 때면 다시 돌아오는 응원과 위로가 크건 작건 상관없이 '의기소침해진 나'를 인지한다는 점에서 괜찮아지곤 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썼다.
이 상태가 지속될 것 같은 불안의 섬 주변이었다. 안개는 자욱하고 주변은 어둑하다. 알 수 없는 새의 비명 같은 소리가 들리고, 습하고 눅눅한 공기가 느껴진다. 물 속이든 수풀이든 위험한 짐승이 당장에 튀어나올 것만 같다. 안개가 걷힐 때까지만, 어둠이 물러갈 때까지만 기다려볼까 싶기도 하다. 지금은 때가 아닌 듯하여 돌아갔다가 나중에 손전등이라도, 무기라도 들고 다시 와볼까 생각도 든다. 그럴 때 눈앞의 지도를 보는 것이다. <나에게 '일'이란> 이름의 지도이다. 글쎄 '일'이란 것이 평생에 목숨 바쳐 이뤄야 할 중요한 무언가라고 하기엔 세상에는 사랑이나 행복, 자유와 같은 더 높은 가치들이 존재한다. 그 가치에 닿게 하는 것이 '일'이라는 수단이겠다.
공고를 찾아 기업을 분석하고, 그에 맞춰 서류를 작성하고, 보완했다. 개인적인 검토뿐만 아니라 전문가의 점검도 받고, 지원하고자 하는 공고를 간추렸다. 취업의 문을 계속해 두드려야 한다는 것, 나의 강점을 살려 어필해야 한다는 것, 다양한 사이트에서 정보를 찾고,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야 한다는 것,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하다는 것. 뻔한 말이지만, 문자 그대로 인식하는 것과 그 안의 담긴 '느낌'을 인지하는 것은 다르다. 개인이나 집단 상담을 통해 휘청거리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지도를 붙들고 한 발 한 발걸음을 옮기던 차에 고대하던 면접의 기회가 왔다. 신기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지원한 다른 곳에서도 차례차례 연락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시간 간격을 두고 3곳의 면접을 보게 되었다.
가장 먼저 면접을 보게 된 A회사는 사실 집에서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면접의 경험이 없던 나에게 한줄기 희망과 같았다. 도착하니 친절하게 자리를 안내해 주시고 마실 것이 필요한지 물으시고, 이후 진행될 면접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긴장됐지만 면접 전 간단한 질문지를 작성하며 차분하게 대기할 수 있었다. 면접은 2명의 면접위원과 3명의 지원자로 구성되었고 간단한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진행되었다. 면접위원들은 긴장되는 분위기에서 지원자가 편안하게 답변할 수 있도록 질문의 의도를 설명해 주셨다. 편안하게 눈을 맞추고 지원자와 대화하듯 면접이 이루어져서 다른 사람들의 답변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생각하던 업무 환경과 실제 업무 환경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시며 앞으로 일하게 될 환경에서 필요한 역량과 태도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지원자를 배려하며 대화를 유도해 주셨고 질문과 답변은 적절하게 배분되었다. 이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보고 배우고 싶은 상사의 모습이었다.
두 번째로 면접 본 B회사는 한쪽 구석을 가리키며 대기하라고 하셨다. 마치 병원이나 은행과 같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근무하는 직원들은 지원자들의 대기 모습을 흘끔흘끔 살폈다. 면접에 대한 설명 없이 면접은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시작되었다. 면접은 4:4로 이뤄졌고 자기소개에서 부터 꼬리 질문이 이어졌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꼬리 질문으로 답변이 길어지니 마지막 지원자는 질문을 재차 확인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면접은 긴 시간 진행되었고 그에 따라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면접위원은 지속적으로 원하는 답을 요하는 질문들을 내던졌다. 지원자의 답변이 원하는 답이 아닐 시에는 질문의 의도를 되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원자의 경험을 평가절하하고 일처리는 빠른지, 멀티는 가능한지 확인하시니 어쩐지 추궁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면접 위원과 지원자들 모두 지난한 회의를 마친 듯한 피로에 쌓여 겨우 면접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세 번째로 C회사는 면접 대기실로 안내를 해주시고, 팜플랫과 함께 시설과 시간 안내를 주셨다. 면접은 5:2로 진행되었고 면접위원이 5였으므로 꽤나 긴장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앞선 두 번의 면접보다 기본적 형식의 면접이 진행되었다. 최대한 면접 위원들과 눈을 맞추고 답변하고 싶었으나 면접장이 어둡고 위원들이 많아 경직된 탓에 다소 아쉬운 답변들을 했던 것 같다. 5명의 위원들이 한 질문씩, 생각보다도 금세 면접이 종료되었다. 면접장을 나오고 나서는 옆 지원자와 무사히 외나무다리를 건너온 동지가 되어 격려의 인사를 나누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안내해 주셨던 분이 미소를 건네며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주신 것이 어렴풋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받았던 질문들을 되뇌며 '아, 이 말을 할걸..' 하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운이 좋게도 나는 세 곳 모두 합격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미 눈치챘을지 모르겠다. 나는 C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3곳 중 택 1이 아니었다. 시간적 간격이 있었으니 A 다음 B, 그리고 C. 순차적인 선택을 지나왔다. A는 분명 긍정적인 느낌을 주었지만 현실적으로 출퇴근 시간과 주변 인프라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상세한 현업의 설명을 들음으로써 업무를 짐작하고 대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나열하신 어려움 중에 나의 직업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 부분을 고려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B회사는 면접을 보고 나오면서부터 한숨을 깊게 쉬었고, 합격 연락을 받았을 때도 난처했다. 나름의 정중한 거절 의사를 보였음에도 "열심히 하겠다면서? 그럼 이렇게 먼저 전화한 의미가 없잖아."라는 말을 들었다.
면접을 통해 단편적 일지 모르지만 그 사람에 관한 수많은 정보를 읽어내며 우리 회사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대입해 본다. 회사뿐만 아니라 지원자도 회사를 선택하는 사회이다. 면접은 면접 위원뿐만 아니라 지원자도 회사를 파악하는 자리이다. 우리는 합이 맞는다, 주파수가 통한다, 코드가 맞는다는 표현을 쓴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단연 사람 사이에서만 통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회사, 집단, 사람의 분위기는 분명하게 무언가를 담아낸다.
누가 취업은 주차장의 자리 찾기라고 했던가. 초조해진 마음을 다잡으며 마음을 다스리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로 눈을 돌린다. 의기소침해진 자신에게 기회가 올 것임을 믿고 달래고, 다시 달랜다. 그렇게 쥐어낸 나의 현재다. 사실 나도 확신을 가지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막상 출근한 회사에서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맞닥뜨리고 견뎌내야 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나와 맞는 직업이란, 평생에 가도 찾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런데 삶의 의미도 '찾기'가 아니라 '만들어가기'로 매듭짓지 않았던가. (이전글_삶의 의미를 찾아 Love Dive) 나와 맞는 일이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직장 생활은 사회적 가면을 써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가장무도회를 즐기듯, 나의 사회적 페르소나가 잘 기능할 수 있는 환경을 향해가는 것이 직업선택의 본질이겠다.
이로써 백수의 항해일지는 마무리이다. 생각보다 금방 새로운 항해를 떠날지도 모르고, 이곳에 정착해 터를 잡을지도 모르겠다. 자유롭지만 막막했고 헤맸으나 괜찮았다. 어디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괴로움과 행복을 오갔다. 모험 떠나봤으니 다음엔 더욱 먼 여행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험을 거름 삼아 더욱 뻗어갈 수 있음에 기쁘다. 모험가는 모험을 추천하는 자는 아니다. 백수의 항해일지 처음 글인 "계획 없이 퇴사해도 행복할 수 있어요?"의 질문이 다시 보인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기꺼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이 질문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권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만의 지도를 그리는 일은 꼭 필요하다. 내가 불안의 섬에서 <나에게 '일'이란> 이름의 지도를 붙들었던 것처럼.
모든 이들의 항해일지와 지도그리기를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