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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Aug 09. 2016

일하느라, 열심히 일하느라.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36

내 사춘기는 '미친'기에 가까웠다. 


오랜시간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어떤 날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가슴을 치며 짐승처럼 울었다. 엄마는 파래진 얼굴로 따라 울었다. 참 불행했다. 


할머니와 같이 살기 시작한 건 열 살 무렵이었다. 아들과 손자만 당신의 상에 앉히던 분이셨다. 뭐 하나 달고 태어나지 않은 죄가 그리 컸다. 고사리 손으로 손녀가 만들어온 사탕 목걸이를 방구석에 던지셨다. 딸은 아무 짝에도 소용없다며 거실 전화기에 대고 한참을 떠드셨다. 쓸데없는 기집년이라며 엄마를 헐뜯으셨다. 딸 없던 할머니는 단 한 명의 여자도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받으려 동동거리던 발이 지칠 바로 그 무렵, 여러 가지 불행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그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는 모든 불행의 뿌리를 내 할머니라 단정지어버렸다. 눈에 독기가 서렸다. 날세워 바라본 건 할머니만이 아니었다. 인기척에 할머니가 버선발로 달려 나가는 유일한 존재, 아빠를 원망했다. 일에만 파묻혀 나와 엄마의 눈물에 침묵하는 아빠에게도 마음을 닫았다. 스물 아홉 겨울, 결혼이란 걸 하며 그 울타리를 나섰다. 



딸이 태어나며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할머니는 내가 딸을 품고 있었을 때 세상을 떠나셨다. 사이가 좋지도 않았던 손녀 주제에 목놓아 울었다. 한 마디 사과도, 화해도 없이 떠난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원망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양가 첫 핏줄인 내 딸은 넘치게 사랑받았다. 작은 아이를 사이에 두고 서로 안아보려 아이처럼 다투셨다. 내가 못 받은 사랑을 아이가 몰아 받는다는 생각에 백억 쯤 물려준 것마냥 뿌듯했다. 간혹 불행의 몇몇 순간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아이가 받고 있는 사랑이 아이가 그런 불행을 피해갈 수 있는 우대권이 될거란 생각에 감사했다. 존재만으로 사랑받는 다는 느낌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을까. 모두가 딸에게 각별했지만 내 눈에 가장 튀어보인 건 아빠였다. 



아빠는 손녀의 아주 작은 불편에도 반응했다. 


내 딸이 태어날 즈음, 아빠는 거의 집에 계셨다. 양수가 터진 날 태우고 병원으로 달린 것도, 가장 많은 장난감을 실어 나른 것도 아빠였다. 우는 손녀 앞에선 어찌 할 바를 모르셔서. 웃는 손녀 앞에선 그 사랑스러움이 너무 커서 발을 동동거리셨다. 손녀의 아주 작은 불편, 아주 작은 옹알이에도 호들갑을 떠는 아빠를 보며 엄마와 깔깔대며 웃었다. 하지만 물어보고 싶었다. 왜 그 시절 나와 엄마의 불행엔 그리 무디셨냐고. 시간에 묻혔다고 생각했던 그 상처가 아직 거기 있었던 모양이다. 



퇴직날의 텅빈 새벽, 아빠가 조용히 앉아 계셨다.


아빠의 퇴직날. 서른 다섯 해를 다닌 직장에서 나오는 날이다. 허전해 하시는 모습이 안쓰러워 그 며칠 집의 공기가 묵직했다. 어두운 새벽, 아빠는 텅빈 거실에 홀로 앉아 계셨다. 마지막 출근날도 아빠는 어김없이 부지런했다. 


아빠는 상자의 반도 채우지 못한 짐을 찾아오셨다. 가족들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아빠는 좀처럼 하지 않던 옛날 이야기를 하셨다. 대리 시절 출장 이야기, 과장 시절 진급 이야기. 전장에서 돌아온 장수가 무용담을 늘어놓듯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렇게 바쁘게 일하느라 니들이랑은 추억이 잘 없다."


왁자지껄했던 식탁이 쓸쓸해졌다. 


"아냐. 아빠 정도면 가족에게 충실했지 뭐. "


안쓰런 마음에 반쯤은 빈말을 했다. 오늘만큼은 아빠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아빠 정도면 잘 한 거라고, 아빤 참 좋은 아빠라고 한참을 추켜세웠다. 조용히 듣고 있던 아빠가 다시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들며 말씀하셨다. 


 “아니야. 아빤 니들 곁에 못있어줬어. 일하느라. 열심히 일하느라.”  


말주변이 제법 좋은 오빠도 아빠의 말을 받지 못했다. 난 아무 그릇이나 들고 일어나버렸다. 냉장고에서 처음 보는 반찬을 아무렇게나 꺼내 담았다. 밥이 참 달았다. 



아빠는 정말 그 때의 내 불행을 몰랐던 거다.


할머니가 더 중요해 내 불행을 모른척 한 게 아니라, 우리 식구 먹여 살리는데 정신이 팔려 내 불행을 못 보셨던 거다. 그 시간을 돌이킬 수도, 보상할 필요도 없었다. 알고도 모른 척 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 실수했다 이야기 들었으니 된거다. 


33년 묵은 불행 하나가 매듭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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