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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Aug 10. 2016

최선지심 vs 자격지심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37

일하는 엄마 특유의 자격지심이 있다. 


아이를 낳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양가 어른들께 번갈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아이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아이 맡길 곳이 없어 발 동동거리는 친구들에겐 부러운 풍경이다. 하지만 어찌 모든 걸 손에 쥘 수 있을까. 아이 곁을 늘상 지켜주지 못하는 엄마라는 자격지심은 3년이 지나도 어째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이가 커서 "그때 엄마 내 곁에 있지도 않았잖아!"라고 하면 어떡하지?

회사에서 "넌 애도 떼어놓고 일할거면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냐." 비아냥 들으면 어떡하지?

친구들이 "넌 그렇게까지 일하고 싶어? 애 생각은 안해?" 물어보면 어떡하지?


누구도 한 적 없는 소리를 모두가 한 것마냥 상상하게 된다. 내 어머니 시절의 편견에 내가 이리도 휘둘릴 줄 몰랐다. 


얼마 전부터 아이는 청산유수 못하는 말이 없어졌다. 자기 표현도, 주장도 강해졌다. 아빠가 조기 발라 올려준 숟가락을 먹기 싫다 던지기도 하고 자기랑 놀자며 식사 중이신 할머니 등 뒤에 올라타기도 한다. 어김없이 나의 자격지심이 고개를 든다. '할머니 손에 오야오야 커서 버릇없는 아이가 되버리면 어떡하지?' 모든 게 처음인 초보 엄마의 솔루션은 간단하다. 옳고 그른 걸 알려주는 호랑이 엄마가 되는 거다. 호랑이를 자처했던 할머니, 아빠가 차례차례 아이의 애교에 넉다운되는 걸 보며 나밖에 없다 생각했다. 부러 엄하게 굴었다. 아이가 물건을 던지거나 울며 짜증낼 때마다 '버릇'을 고치겠다며 '이놈!'했다.


좀처럼 아이에게 예외를 주려 하지 않는 내게 남편은 아이의 상처를 걱정했다. 그때마다 난 답답하단 표정으로 애가 버릇없게 자라면 책임질거냐 윽박질렀다. 



자격지심이 작은 사단을 냈다.


그 날, 낮잠 자는 아이의 옆에 누워 눈을 붙이고 있었다. 나른한 낮잠에 취해 있을 때, 별안간 내 얼굴에 강한 충격이 가해졌다. 미처 도망치지 못한 아이의 발이 여즉 베개 옆에 머물고 있었다. 순식간에 잠이 깼다. 


"이리 와. 누가 엄마 얼굴 밟으래!"


한참을 호되게 야단쳤다. 빠져 나가려 바둥거리는 아이의 팔다리를 꽉 잡고 눈물을 쏙 뺐다. 


"잘못했지? 원이가 잘못했지? 다신 안 그러겠다고 엄마랑 약속해."


빚 받아내는 사채업자가 된 것 마냥 잘못을 추궁했고, 기어이 약속을 받아냈다. 짧은 손가락을 걸고 나서도 한참을 아이는 꺼이 꺼이 울었다. 가뜩이나 혀짧은 말이 울음에 묻혀 웅얼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붙들고 있는 나도 붙잡힌 아이도 기진맥진했을 즈음, 아이가 간신히 말했다. 


“미안해 원이가 세게 걸었어.”


...


아이는 먼저 잠에서 깼다. 저 앞에서 자고 있는 엄마에게 오고 싶었다. 그래서 반갑게 걸었다. 침대는 땅처럼 평평하지 않았고, 걸음이 이상하게 걸어졌다. 그러다 엄마 얼굴 위로 발이 갔다.

 

잘못한 건 나였다. 


버릇 없어진 아이가 엄마의 얼굴을 밟았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버릇없어진 적도, 일부러 엄마의 얼굴을 밟은 적도 없는데. 그냥 세게 걸었을 뿐인데. 오해하게 한 건 내 자격지심이었다. 그 한마디를 뱉고 다시 울음이 터진 아이를 안고 스스로 물었다. 대체 누구를 위한 자격지심이었을까. 



자격지심이 할퀸건 딸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한텐 일보다 가정이고 아이야. 명심해."

친정엄마의 말에 난 족제비 눈을 떴다. 그건 엄마 시대 생각이라고 바득바득 대들었다. 


"우리 와이프 보니까 아무래도 애 세 살 때까진 옆에 끼고 있는게 좋더라구."

직장 상사의 진심어린 조언에 입을 닫았다. 


"육아휴직 좀 더 쓰는 건 어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남편의 의견에 '당신은 그냥 회사 다니고? 나만?' 하며 쏘아붙였다. 


"애랑 애착 형성 잘 안된 거 아냐?"

친구의 걱정에 '일단 니 애부터 낳아보고 이야기하자'며 못나게 대꾸했다. 


이리저리 울퉁불퉁하게 굴었다. 일리있는 그들의 말에 마음이 찔려서 그랬다. 아이의 곁에 있어주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내 몸은 하나다. 그럼 일을 그만둬야 하나? 그럼 시간과 마음을 듬뿍 딸에게 줄 수 있을테니 그로써 해결되는 문제일까.



하지만 난 일하고 싶다. 


사회인으로서 난 운이 참 좋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일도 아니고, 억만금을 주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고 싶지 않은, 내가 참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산다. 하지만 아이보다 먼저일 순 없다. 선택해야 한다면 아이다. 하지만 일을 그만두고 아이 곁에 24시간 붙어 있는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아니다. 일하는 엄마로서의 자격지심 대신 일 그만둔 엄마의 자격지심이 고개를 들거다. '일까지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기로 했는데...... 너무 대충 키우고 있는 걸까......' 결국 뿌리는 따로 있는거다. 


'자격지심'의 정의를 검색했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 


이 정의에 따르면 지금 나는 엄마로서 해낸 일을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고 있는 거다. 


가만, 아니지 아니지.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데. 배아파 아이를 낳고 잠 못 자며 먹이고 키운 3년. 늘 곁에 있어 주진 못했지만 어젯밤에 읽어준 동화책만 20권이라구. 하도 안고 춤을 춰서 손목이 나갈 지경인걸. 어제 저녁엔 어찌나 조기를 맛있게 구웠던지. 몇 마리 먹었더라, 3마리? 4마리?


 

한 수영 선수의 인터뷰가 내게 맞장구를 쳤다.



마침 Yuanhui FU이란 선수의 인터뷰가 눈에 들어왔다. 한창 진행 중인 리오 올림픽에 출전한 중국 국가대표. 그녀가 화제가 된 건 너무나도 유쾌했던 인터뷰 때문이었다. 


- 결승에 대비해 힘을 아껴뒀나요?

('결승전을 대비해서 페이스 조절을 좀 했구요.'라고 대답하겠지?')

"아뇨, 혼신의 힘을 다했는데요!"

- 결승에서도 좋은 결과 기대하나요?

('더 좋은 기록을 내서 메달을 따는 게 목표입니다.'라고 대답하겠지?)
"아뇨, 이미 너무 만족스러운데요!"


그녀는 '홍황의 힘' (洪荒之力, 우주를 뒤바꾸어 놓을 정도로 강력한 태고의 힘)이라 했다. 그래서 이미 너무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녀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준다. 저 표정, 저 표정이야말로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 느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그로써 행복을 느끼는 사람. 그런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 모든 게 완벽한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마음껏 기뻐하는 사람. 자격지심 대신 최선지심에 도취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아이도 마음껏 기뻐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랄 건 없겠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 나의 자부심은 '성적표'였다. 높은 등수와 성적을 받아와 엄마에게 내미는 게 큰 자랑이었다. 그 자랑이 어느 순간 자격지심이 되어버렸다. '더 잘해야 하는데, 더 높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난 자꾸 덜 기뻐졌다. 아이는 좀 더 기쁜 일 많은 삶을 살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나부터 자격지심에서 최선지심으로 갈아탈 때라고- 생각했다. 


우선, 우주를 뒤바꾸어 놓을 정도로 강력한 태고의 힘을 동원하여 맛있는 저녁을 준비할테다. 너무 맛있어서 차마 숟가락 던질 생각을 못하게, 할머니 등보다 더 달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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