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자정 무렵 집이 몹시 흔들렸다.
먹은 것이 부실해 빈혈이 왔나.
거실에 있던 남편이 평소답지 않게 당황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지진인 걸 알았다.
진도 7.8. 해외 토픽에서나 듣던 그 숫자의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었다.
몇 차례 더 흔들렸다. 책상 모서리 책들은 쏟아진지 오래. 화장실 선반 화장품들도 날카로운 마찰음을 내며 떨어졌다. 떨어질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떨어질 때 쯤 우린 정신을 차렸다. 담요 몇 개, 기저귀와 식빵을 챙겨 뛰쳐 나갔다.
사실 무서운 건 지진이 아니었다.
일본 쓰나미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유난히 예쁘고 유난히 눈부셨던 이번 주말의 바다였다. 그 바다 앞에 있는 우리 집은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쓰나미를 피해 언덕배기로 차를 몰았다. 코골며 자는 아이를 안고 트위터에 접속했다. 뉴질랜드 정부는 발빠르게 현재 상황을 브리핑했다. 두 손 모았던 나의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곳 웰링턴에도 쓰나미 경보가 발령됐다.
뒤척이는 아이를 안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최악의 상상으로 그 밤을 꼬박 지샜다.
다행히 몇 차례 파도가 그리 힘세진 않았던 모양이다. 이른 아침,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트윗을 보고서야 우린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비관적이었다.
오늘 밤, 슈퍼문이 온다.
시속 140km 짜리 바람이 밤새 불거라 했다. 어젯밤 7.8보다 센 지진이 올거라고도 했다. 창문이 아닌 지붕이 날아갈 수도 있다는- 그런 종류의 소식만 종일 들려온다. 이 곳에서의 3년은 내 일생 가장 평온했지만 이 하루는 가장 두려운 날이다. 아이의 옷가지와 비상 식량을 채워 가방을 쌌다. 집안의 모든 창문에 테이프를 붙였다. 어김없이 마당에서 새들은 짹짹였고 바람은 선선했다. 하지만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폭풍 전야 같은 이 고요함이 너무 두렵다고.
하지만 사재기는 없었다.
필요한 물건들이 많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이미 물이며 우유, 테이프가 동났을 거란 불안감에 남편을 서둘러 내보냈다. 혹시 몰라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고 있는데 남편에게 메시지가 왔다. 모두 차분히 필요한 만큼을 카트에 담았다.
출근도 없었다. 남편 회사에선 이런 메시지를 페이스북 그룹에 올렸다.
"오늘 제일 우선은 가족입니다."
오늘만 몇 명에게 초대를 받았는지 모른다.
언덕에 사는 지인들은 해안에 사는 내게 덮어놓고 주소부터 찍어준다. 언제고 좋으니 바다가 불안하면 오란다. 그런 초대를 한 건 지인들만이 아니었다. 남편 회사 직원 커뮤니티엔 이런 글이 수없이 올라온다.
"우리 집엔 소파가 여러 개에요. 아이들도 환영해요. 언제든 연락하세요."
지난 밤, 우리를 웃게 한 이도 있었다.
간밤. 언덕배기에 차를 세운 채 트위터만 주시하고 있던 우리 부부의 귀에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와 마찬가지 신세인 차들 사이를 지나며 분주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난 저기 26번지 사는 사람인데요. 물이 필요하거나,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세요. 따뜻한 차도 있어요."
긴장한 표정으로 액정만 들여다보던 사람들이 그 말에 웃었다.
오늘 밤에 어떤 일이 있을 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름 모를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최악의 밤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내일 아침, 웃으며 다시 이 순간을 이야기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