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 Jun 04. 2017

사랑스러운 사람 노무현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54



노무현 그 분을 참 좋아했다.


그가 삶으로 쓴 드라마에 환호했다. 확신과 진심이 가득한 그의 말과 글이 참 좋았다. 그래서 그의 인생 드라마가 비극으로 끝나던 날을 여즉 기억한다.


난 학교 앞 샌드위치 집에서 햄치즈샌드위치를 포장하던 참이었다. 근교 나들이를 할 생각에 잔뜩 들떠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지인에게 전화를 거셨다. 대통령이 죽었다고 했다. 설명할 수 없는 상실감이 강하게 온몸을 휘감았다. 내가 좋아한 그의 인생 드라마는 비극으로 끝났다. 내가 좋아한 그의 글은 몇 줄 유서로 연재를 마쳤다. 영원히.


8년이 흘렀고 학생이었던 난 아이 엄마가 되었다. 그의 친구가 대통령이 되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볼 용기가 난 건 사실 그 때문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 그를 잃은 상실감에서 아주 조금 놓여난 수많은 이들 중 하나가 나였다.


영화관 공기은 참 생소했다.


또래 젊은이들로 가득 했던 여느 영화관이 아니었다. 엄마 아빠 손잡고 온 아이들이 많았다. 알록달록 등산복을 입고 오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많으셨다. 아이들은 팝콘이 떨어졌다며 연신 엄마를 불러댔다. 엄마는 아이 수발을 드느라 자꾸 일어났다. 높게 쪼매묶은 엄마의 파마머리는 자주 스크린을 가렸다. 어르신들은 영화를 보시며 친구분들과 노인정 마냥 대화를 하셨다.

"에휴, 저렇게 갈지 누가 알았겄어."


그런데 말이다.


스크린을 가린 파마머리가, 아이들의 팝콘타령이, 할머니들의 목청 큰 추임새가 참 좋았다. 전혀 시끄럽지 않았고 전혀 걸리적거리지 않았다. 이들과 한 공간에서 같이 웃고 같이 훌쩍거릴 수 있단 사실이 위로가 됐다. 그의 삶도 나의 선택도 지지받는 기분이었다.


사실 노무현은 나에게 우리에게 그런 존재가 아니던가. 잘 나가는 변호사였고 국회의원이었으며 대통령이었지만 우리는 그에게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 냄새를 맡았다.


영화 속에서 유시민도 그렇게 얘기했다. 그는 무척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고. 뭐든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었다고. 영화의 큰 줄기를 이루는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그를 이기게 한 것도 그를 사랑한 노사모였다. 거센 빗줄기를 마다않은 수많은 시민들은 가족을 잃은 것처럼 울었다. 그는 우리에게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궁금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사랑스럽게 만들었을까. 영화 중반을 지나며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노무현과 함께하다 감옥살이까지 한

안희정의 인터뷰를 들으니 알겠더라.


노무현이 변호한

부림사건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알겠더라.


노무현을 태우고 다닌

운전기사의 이야기를 들으니 알겠더라.


노무현에게 붙어 정보를 수집해온

국정원 직원의 이야기를 들으니 알겠더라.


그를 사랑스럽게 만든 건

그가 너무 많은 이들을 먼저 사랑해서란 걸.


자신을 돕다 검찰조사를 받게 된 안희정과 그의 가족들이 안쓰러워 위험을 무릅쓰고 '안희정은 내 동업자입니다.'라고 대놓고 이야기했다. 선을 긋고 꼬리를 자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운전기사의 신혼여행에 새차를 내주었다. 경주 신혼여행지까지 운전도 도맡았다. 며칠의 휴가, 얼마의 금일봉으로 성의를 표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을 담당하던 국정원 직원이 시위대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르자 나서서 시위대를 설득했다. "이 사람은 내 친구"라고 했다. 그냥 모른 척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을 진심으로 위했고 사랑했기 때문에 그랬다. 사랑은 우리가 먼저 한 게 아니었단 걸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된다.


아주 오래 전 읽은 삼국지 유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유비는 모든 세를 잃고 시골 촌부처럼 살고 있었다. 조조가 그의 동태를 살피려 왔다. 마침 마을에 큰 가뭄이 들어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이를 보며 유비는 데굴데굴 구르며 서럽게 울었다. 그걸 보며 조조는 생각했다.


"만약 저게 민심을 얻으려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라면 유비 저자는 정말 무서운 자이다. 하지만 그저 마음에서 우러러 나와 저리하는 것이라면 나는 저 자를 이길 방도가 없다."


지난 8년 동안 우린 그가 참 사랑 많은 대통령이었음을 느꼈다. 그였다면 차가운 바닷물에서 삼백명을 저리 죽게 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였다면 초로의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을 때 누구보다 마음 아파할 것을 알았다. 그래서 8년의 시간을 돌고 돌아 죽은 노무현이 이겼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의 지지자가 그런 말을 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약속은 차마 못하겠지만 대신 아이들에게 옳은 세상을 알려주며 살겠다고. 나도 꼭 같은 마음이었다.


아이가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축복받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이젠 좀 다른 바람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많은 사람을 먼저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변호사 노무현이 돈 한 푼 되지 않는 소송에서 고문 피해자들을 위했고 남편 노무현이 빨갱이 장인 논란 앞에서 부인 권양숙을 위했다. 친구로서 안희정을 위했다. 그래서 8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노무현을 위해 아낌없이 눈물을 쏟는다.


사랑하는 삶, 그래서 사랑받는 삶.

아주 많은 사람들을 서로 사랑하게 만드는 삶.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엄마는 행복한 엄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