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59
후쿠오카를 여행하다 우연히 이름모를 도서관에 닿았다.
일본어 한 자 모르면서 그 한 켠에서 오래 머물렀다. 수많은 책과 서재, 창문과 빛이 주는 묘한 분위기가 날 홀렸다.
삐걱이는 나무 계단을 밟고 내려오며 내내 생각했다. 이런 서재를 갖고 싶다고.
1.
다 읽은 책만 모아놓은 책장을 갖고 싶다.
이 책은 진심으로 읽어 마지막 장까지 다다랐으니
특별히 대접해주는 '다읽음책꽂이'.
커피쿠폰 모으는 것 마냥 이 책장 채우고싶어
욕심날 그런 특별한 책장.
2.
다 같이 둘러앉아
맘대로 딴짓할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이 좋겠다.
책을 읽을수도 그림을 그릴 수도 있어야겠다.
딸아이가 지루해할테니 보드게임같은 것도.
3.
멋스러운 커피 머신 한 대와
각자의 애정과 추억이 묻은 머그잔들.
커피를 내리는 그 소리와 향이 좋다.
여름엔 달그락 거리는 얼음 몇 알과 아.아를.
겨울엔 김 모락모락 라떼나 핫초코같은.
4.
연말 어느 날을 정해 매년 모이는 건?
유치찬란하겠지만 서로에게 편지를 써도 좋겠다.
그 해 여러번 밑줄 그으며 읽은 문장을 선물해도 좋겠다.
그 당연한 하루가 우리 가족의 사진첩에 담긴다면 좋겠다.
5.
이 공간에 우리만의 이름이 있어야겠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우리만의 암호같은.
남편은 유치하다며 고개를 젓겠지만
딸이 하자는 걸 마다할 사람이 아니다.
6.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되어서도
읽고픈 책, 끼적이고픈 글이 많다면.
아이의 아이들에게
이야기 졸라 듣고 싶은 할머니는 참 멋질텐데.
7.
주인공은 책이지믄 풍경이 있다면 좋겠다.
그걸 담을 유리창은 커야겠지. 샷시는 나무색.
그 밖엔 초록색이 많아야 보는 맛이 있을거야.
8.
와이파이는 없어야겠다.
9.
음악은 그 날 읽는 책과 가장 잘 어울리는 걸로
그 시대의 인공지능이 추천해주겠지.
그래도 그 인공지능이 오래된 LP플레이어 모양이라면.
10.
이 곳에 둘러앉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날 아침 메뉴나 용돈 인상에 대한 불만같은
작은 일로 투정하고 있다면 좋겠다.
갖고 싶은 공간을 생각하고
생각해낸 공간을 검색했다.
일단 아파트는 안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