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디자인을 이해하는데 10년이 걸렸습니다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을 하면서 괴로웠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내가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는 가치를 그럴싸하게 포장해야 한다거나 본질에 충실하지 않은 제품을 팔아야 할 때. 나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하는데 그 이상의 무언가를 더해 남들에게 권해야 할 때. 그럴 때마다 일에 대한 회의와 함께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내가 납득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는 없으니, 그 부분이 해소되지 않고서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영어로는 Visual Communication Design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화려하고 멋진 비주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것,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를 지닌 시각적 결과물을 만드는 일에 가깝습니다. 사실, 이런 내용을 알고 전공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요.
내가 다녔던 대전의 미술학원은 입시 학원이라기에는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였습니다. 그림 그리면서 듣고 싶은 음악을 크게 틀어놓기도 했고, 명절에도 그림 그려야 한다는 핑계로 선생님이 없는 학원에 애들끼리 나와서 신나게 놀면서 그림을 그렸으니까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서울에 와서 만난 친구들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자유롭게 살았는지 알게 됐습니다. 대다수의 친구들이 대학 입시를 위해 어떻게 그림을 그렸는지 듣다 보면 정말 깜짝 놀랍니다. 대전에서도 메인 스트림은 아닌, 변방의 미술학원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아요.
하긴, 그 변방을 선택한 것도 저였습니다. 미술학원이 친한 친구의 집과 매우 가까워서 금요일 저녁이면 학원을 마치고 친구네 집에 놀러 갈 수 있었거든요. 학원비가 다른 학원에 비해 저렴하기도 했고요. 돌이켜보면 입시 지옥은커녕 별다른 고민 없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그림만 그릴 수 있었던 즐거운 시기였습니다.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하겠다'의 각오를 가진 누군가에게는 한량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전공을 선택한 것도 이런 식입니다. 그림을 봐주던 원장 선생님에게 '시각디자인'과 '산업디자인'이 뭐가 다르냐고 물었습니다. 선생님이 마침 정물로 놓여있는 코카콜라 병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죠. '저 병을 만드는 게 산업디자인이라면 저 병에 붙은 로고를 만드는 게 시각디자인'이라고요. 오 그렇구나. 나는 병을 만드는 건 자신이 없으니 그럼 시각디자인과를 가야겠다고 그때 생각했습니다. 이렇듯, 인생의 (어쩌면) 중요한 일들을 별다른 배경지식 없이 이런 식으로 결정해 왔습니다.
대학에 입학해 서울에 처음 왔을 때, 듣도 보도 못한 신문물을 쓰나미처럼 겪다 보니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작은 전시 한 번 찾아다닌 적 없는 쪼랩이 한순간에 넓은 세상에 던져졌으니 말이에요. 그러니 무엇을 보고 겪어도 총체적인 경험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저에게는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내재된 의도를 파악할 여유 없이 시각적으로 멋진 것들에 압도당하고 화려한 그래픽 앞에 서면 맥을 못 추는 학생이었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전공을 선택했지만, 운 좋게도 '이런 디자인을 하고 싶다'라고 느낀 가슴 뛰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고
더 흥미롭게 하려면
디자이너가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디자인은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이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
이러한 관심이 없다면 그는 다만 테크니션에 불과하고
그런 테크니션은 얼마든지 많다.
대학 시절 가장 좋아했던 디자이너, 티보 칼맨의 말입니다. 이런 말들이 그 시절 노트 곳곳에 적혀 있습니다. 뭐가 됐든 나는 디자인으로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나 봅니다. 딱히 할 줄 아는 것은 없었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드높은 이상만큼은 가지고 있었죠.
(분명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래 놓고 정작 내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서있는 현실, 사회적 현상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화려한 그래픽에 압도당해 겉으로 보이는 스타일만 흉내 내는 학생이었다니까요. 그런 제가 어느 날 선배와 대화하던 중,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당시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넌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 선배에게 "전 그런 거 별로 관심 없어요"라고 대답했고, 선배는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럼.. 넌 뭘 디자인하려고...?"
말문이 막혔습니다. 선배는 답을 요구하지 않고 넘어가 주었지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은 가시지 않았어요.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면, 하고 싶다고만 할 게 아니라 지금 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관심과 애정 없이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할 수 있겠구나. 더 예민하게 안테나를 켜고 세상 일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구나. 자아실현한답시고 세상에 쓰레기를 더하는 일을 하게 될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의 방황은 졸업 이후에도 이어졌습니다. 나에게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일이란 무엇인가 정의 내리고 일을 시작했다면 지금과는 조금 달랐을 텐데 안타깝게도 이상과 현실의 격차가 너무 커 균형을 잡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는 싶지만 이상이 높으니 돈만으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요.
원장 선생님이 내게 말해줬던 시각디자인에 대한 정의, 대학에서 배운 디자인의 범위는 지금 내가 느끼는 것과 많이 다르긴 합니다. 나에게 영향을 준 디자인 거장들의 시대에는 아마 상황이 더 달랐겠지요. 하지만 디자인이 여전히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강력한 도구임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디자이너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디자인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느냐, 무엇을 달성하고자 하느냐가 결국 중요한 질문이겠죠. 그것이 Visual Design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Visual Communication Design이라고 길게 이름 붙인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우하우스 시절의 디자이너 모홀리 나기의 이 말에 나는 최근에 와서야 완전히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는 무엇일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디자인으로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기를 꿈꾸던 디자이너 지망생은 이제야 '어떤 관점과 태도로 살아가고자 하는지'가 디자인의 본질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것만 있다면 누구든 디자이너가 되는 시대라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디자인은 소통을 위한 것이고, 소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세상과 소통하려는 태도일 테니까요.